내가 가장 흠모하는 인물 요셉이 활동했던 이집트 왕조의 시기는 성경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 삶의 흔적을 찾아 연구하는 고고학 연구와 주로 기록을 바탕으로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의 견해는 크게 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BC 1991년~1802년경 세누스레트 2세 또는 세누스레트 3세 파라오가 다스렸던 시기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BC 1650년~1550년경 서아시아계 통치자들이 이집트를 지배한 히크소스 시기라는 주장이다.
자기 형들에 의해 이집트에 팔려 간 요셉은 이러저러한 힘든 일을 겪다가, 감옥에 있을 때 왕의 꿈을 해석하게 되었다. 왕은 그의 건의에 따라 그에게 “7년 풍년 동안 곡식을 곳간에 저장하라”고 명령한다. 풍년이 끝나고 가뭄이 시작되자, 요셉은 저장된 곡식을 공정하게 분배했다. 그 곡식은 이집트 백성뿐 아니라 이방인들까지 살렸다.
이 이야기는 주로 하나님이 요셉에게 주신 지혜와 권세라는 축복을 이야기할 때 많이 인용된다. 그러나 에너지 안보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도 어떤 면에서 7년 가뭄과 닮았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 에너지 위기, 지정학적 긴장…. 어느 하나 내일을 예측하기 어렵게 하지 않는 것이 없다. 세계는 자원을 ‘무기’로 사용하고 있으며, 에너지는 이제 국가와 사회와 개인의 생존과 직결된 전략 자산이 되었다. 2022년 2월에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에너지 문제는 우리 곁으로 다가와 잠시 고통을 주다가 다시 회복의 사이클을 타는 그런 경제 이슈가 아니다. 에너지 이슈는 기술, 안보, 생태, 경제정의까지 얽힌 다차원적 문제다. 소바쿨이라는 학자는 이에 대해 “에너지 정의(正義)는 자원의 접근성뿐만 아니라, 자원 분배의 정의로움, 그 절차의 공정성, 그리고 생태계 보존까지 포함된다”고 강조한다. 이 문장으로 요셉이 보여준 저장, 공급 안정화, 공정한 분배를 동시에 이룬 리더십도 설명 가능하다.
에너지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그것을 돈으로 보고, 누군가는 권력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진정한 성숙을 추구한다면, ‘에너지는 생명을 지키는 수단, 공동체를 위한 도구’로 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곡식 창고는 생명을 살리는 곳이 아니라 담을 쌓는 수단이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요셉처럼 현실을 읽는 눈이 필요하다.
또한, 우주를 창조하신 분께 그 눈(현상에 대한 바른 관찰)과 마음(현상에 대한 바른 이해), 지혜(현실 대처와 미래 대비)와 능력(실행할 수 있는 정치력과 경제력)을 구해야 한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길을 내시고, 혼란 가운데 질서를 주시는 분. 그분께서 주시는 통찰과 용기야말로 오늘 우리가 직면한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 아닐까.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창4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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