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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교계일반

"빼앗긴 자유"

이미지_pixabay

 카페에 가면 수십 개의 메뉴가 나열되어 있다. “손님 주문 하시겠어요?”라고 하면 잠시 우물쭈물하다 결국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선택한다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다.  

  왜 그럴까? 선택은 소중한 자유이지만 그 자유를 행사하는 데는 상당한 교육과 에너지가 담긴다. 또한 선택에는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다.

  세계 1차대전 이후에 독일에는 자유의 법이 만들어졌다. 소위 “바이마르헌법”이다. 민주적 정치체제와 기본권 보장이 막강하게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 이후에 그러한 자유와 선택이 얼마나 중요하고 그에 따르는 책임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자 독일 국민들은 선택에 피곤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누가 나의 선택을 대신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들이 팽배해졌다. 

  독재자가 등장하기 딱 좋은 여건이 형성된 것이다. 바로 그런 순간에 나치 정당의 당수 히틀러가 등장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이런 비정상적인 리더를 “카리스마”가 넘친다고 했다. 엄청난 댓가를 지불한 후에 독일은 “선동을 구분하는 법”을 어릴 때부터 가르친다.

  언제부터인가 시위 문화가 자리 잡았다. 온 오프라인 영역에서 깃발이 나부낀다. 건전한 시위로 발전해 가기를 바란다. 근래에는 양쪽 진영의 깃발 아래 사람들이 광장에 모인다. 미디어는 실시간으로 보도하며 세를 과시한다. 반복적인 미디어와 함께 가슴 뛰게 하는 노래를 들려준다. 그러다보니 선동을 분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 

  내가 선택할 자유를 선동하는 이들에게 빼앗겨버린다. 그러면 얼마나 편한가? 독일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 편안함이 테러와 살인과 폭력적인 상황을 낳게 되었고 독일은 두고두고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이 되었다. 

  분별하고 선택하는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이것이 과연 그런 것인가 공부도 하고 살펴봐야 한다. 깃발 아래 있으면 자기가 투사가 된 듯한 착각을 한다. 그것은 언제까지나 착각일 뿐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고 피조물을 다스릴 왕의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이다.

  “부활신앙은 왕의 포지션을 회복하는 것이다.”

    왕의 길을 걸으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 리라 하시니라”(창1:28)

최성만 목사(울산오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