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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교계일반

"희년의 성취로 사는 부활의 신앙"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생명과도 같습니다. 부활은 피할 수 없는 좌절이요 절망인 죽음에 대한 승리의 선언이며, 주님의 몸 된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승리에 참여하는 소망의 보증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즉각적인 유익들을 열었습니다. 먼저는 주님의 죽음에 대한 승리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획득하신 의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고, 둘째는 그리스도의 능력에 의해 우리 또한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의 부활은 우리의 영광스러운 몸의 부활에 대한 보증으로 변치 않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들에게 첫 열매되신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에 대한 확실한 보증이요 담보물이 됩니다. 죽음은 몸과 영혼의 분리로 육체의 썩어짐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서 몸이 다시 살 것을(고전15장) 기대하게 하셨습니다. 회복된 몸과 새롭게 된 땅과 하늘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날이 되면 우리의 몸이 썩지 않을 새롭게 된 몸을 가질 뿐 아니라 새롭게 된 하늘과 땅, 질서 안에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은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이루어진 일에 대해서와 이루어질 일에 대해서 증거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비록 썩을 것이 지배하는 듯 보이고, 어둠의 세력과 폭력의 권세가 힘을 발휘하고 선한 이들을 압제하는 듯 보여도, 성도들은 만물이 부활하신 주님의 통치아래 있음을 고백하면서 살아갑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세상의 제도와 다른 하나님나라를 살며, 희년의 질서와 삶을 요구 받았듯이 오늘 교회와 성도들은 부활에 참여한 구별된 사람들로 하나님의 통치와 질서 속에 살아가기를 요구받습니다. 부활과 희년은 성경의 구속사적 흐름에서 중요한 주제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중심으로 이 둘의 관계를 조망할 수 있습니다. 

  희년은 구약시대 해방과 회복의 제도를 담고 있습니다. 희년(禧年, Jubilee)은 레위기 25장에서 규정된 하나님의 법으로, 50년마다 시행되는 특별한 해방과 회복의 해였습니다. 희년의 주요 내용(레 25:8~17)에서는 첫째, 자유가 선포가 있습니다. 모든 노예가 해방되었습니다(레 25:10). 또한 토지 반환이 있습니다. 땅은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분여해 주신 원래 소유자에게 땅이 돌아가게 하셨습니다(레 25:13). 더불어 하나님나라의 경제적 회복을 담고 있습니다. 부채가 탕감되고 경제적 재분배가 이루어졌습니다. 희년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회복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전인적 해방을 상징합니다. 희년제도를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죄로 인한 불의와 억압에서의 자유, 그리고 공동체적 정의를 이루도록 명령하셨습니다.

  희년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성취되어 졌습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4:16~21에서 이사야 61장의 말씀을 인용하며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님은 이 선언을 통해 자신의 사역이 희년의 궁극적 실현임을 밝히셨습니다. 주님의 희년선포는 단순한 경제적 회복이 아니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의 해방, 즉 메시아적 구원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부활을 통한 희년을 성취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희년의 진정한 성취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활은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해방을 의미합니다. 부활을 통해 죄의 삯인 사망이 정복되었으며(고전 15:54~57), 믿는 자들은 생명의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창조의 시작된 것입니다. 부활은 하나님 나라의 새 질서(새 창조)의 선포이며, 희년의 이상이 현실로 나타난 것입니다(롬 8:19~23). 사회적·영적 희년의 실현입니다. 초대교회는 부활 신앙을 기반으로 공동체적 희년 정신을 실천하였습니다(행 2:44~45, 4:32~35).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 초대교회의 모습은 희년의 성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언약적 관점에서 보자면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창조-타락-구속-완성의 틀로 볼 수 있습니다. 희년과 부활은 이 언약적 구속 역사 안에서 연결됩니다. 구약의 희년은 신약에서 완성될 구속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희년적 자유와 회복의 최종 성취이며,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의미합니다. 종말론적 관점에서 볼 때, 희년은 단지 과거의 제도가 아니라, 장차 올 하나님 나라의 원형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될 영원한 희년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계 21:1-4). 성도들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희년의 삶을 살고 있으며, 종말에 그 완성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와 소망 가운데 부활의 신앙에 참여하며 살아갑니다. 

  성도들은 더 이상 죽음의 두려움에 떨지 않습니다. 비록 죽음이 두려운 일이고 엄존하는 현실적 문제이지만, 주님의 부활로 성도의 죽음은 하나님나라로 들어가는 관문이며,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영원한 안식의 성취의 누림 가운데 들어가는 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은 극복되었으며, 성도들은 이 땅에서 이를 누리면서 살아가고, 마지막 날에 완성된 부활체를 가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 소망은 미래에만 머물지 않고 오늘을 바꾸는 능력이며, 현실의 삶을 새롭게 살게 하는 능력입니다. 

  성도들은 영적 자유와 해방의 실천에 참여하게 됩니다. 부활 신앙을 통해 죄와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난 자유를 누려갑니다. 희년 정신을 따라 억압받는 자들을 자유케 하는 사역, 즉 사회적 정의, 경제적 공의 실천을 감당하며 살아갑니다. 초대교회는 부활의 기쁨을 나누는 공동체였습니다. 경제적인 나눔뿐 아니라 가난하고 주린 이들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기를 기뻐한 교회였습니다. 부활은 무엇보다 종말론적인 전망을 우리에게 줍니다. 부활의 소망은 미래에 완전하게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를 지금, 이곳에서 실천하며 살아가게 만듭니다. 소망은 단순히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오늘을 살게 하는 힘입니다. 

  우리가 보는 현재의 세상은 불의의 힘이 크고 강력해 보입니다. 죽음과 사망이 여전히 왕 노릇하는 듯 보입니다. 힘 있는 자가 약자들을 유린하고, 악이 선을 넘어서는 듯 부조리로 가득해 보입니다. 성도들은 죽음을 이긴 주님께 속한 사람들로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관영하는 불의와 불평등을 넘어서서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실천하고 애써가야 합니다. 적을 만들고 분열하고 원수 맺는 세상의 정신 대신 사랑하고, 원수마저 품고 사랑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정의와 평화를 애쓰고 증거 해야 합니다. 

  희년과 부활은 하나님의 구속 계획 속에서 연결된 사건입니다. 희년은 하나님의 정의와 해방을 나타내는 예표였습니다. 주님은 회당에서 희년의 성취를 선포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희년의 궁극적 성취로서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의 해방을 의미합니다. 부활의 신앙을 가진 성도들은 희년 정신을 따라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며,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선적으로 교회적 교통 가운데 머물러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고 이를 즐거워하는 사람들입니다. 

  부활에 참여한다는 것은 단순한 역사적 제도로써 희년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실현이라는 종말론적 희망의 약속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통치 아래 새 날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하늘의 질서를 이 땅에 실현하면서 살아갑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살아계신 구주의 돌보심 아래 살아갑니다. 부활의 신앙은 우리에게 모든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주의 나라가 임하기를 고대하며, 슬픔이 기숙하는 이 땅에서도 소망 중에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며 찬양하는 삶이 되게 합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날마다 뵈옵습니다. 아멘. 

  이종인 목사  (울산언약교회 담임, 울산대학교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