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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문화/교회음악

교회음악으로 섬기기(6)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2:8) 사진_픽사베이

  교회음악으로 섬기기 실제로 찬양을 드리는 주체는 회중(성도들)이라 할 수 있다. 찬양인도자나 찬양단(팀)은 스스로가 예배자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찬양을 드리는 자들이기도 하지만, 그와 함께 회중이 입을 열어 찬양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역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찬양사역의 역할이 무색하게 회중들은 그저 보여 지는 것과 들려지는 것에 대한 평가와 비판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그저 구경꾼으로 자리할 때가 있다. 꼭 일반회중이 아니라 찬양단으로 사역을 하고 있거나 성가대(찬양대)를 통해 교회음악으로 섬기는 성도들 조차도 예배의 상황에 따라서는 회중으로서의 모습을 동일하게 갖게 된다. 

  이렇게 회중의 자리에서 노래를 하다보면 보이는 자리에서 사역하는 모습과 달리 회중석에서는 일반 회중들과 같이 매우 소극적으로 변해 있는 모습들이 드러남을 경험하게 된다. 주변 성도들에게 들려지는 목소리의 크기가 신경이 쓰이고, 높은 음을 내다가 왜곡된 소리로 민망해지게 될까봐 큰소리로 노래하기가 두려워진다. 그러다 보니 고음 구간의 노래를 부를 때는 자연스럽게 옥타브를 낮추어 부른다거나 주변성도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가성으로 노래하고, 때로는 입만 벙긋대며 립싱크로 순간을 모면하고자 하는 모습들을 누구 할 것 없이 많이 경험 했을 것이다. 잘 모르는 곡이나 새로운 곡을 부르게 될 때는 더욱 심해진다. 

  악보없이 화면으로 보여지는 가사만 보면서 찬양단의 목소리에 전적으로 의지해 노래를 불러야 하는 상황은 말할 수 없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모르는 노래들이 반복될수록 예민해지고 불만스러워지는 모습들도 나타나는데, 결국 이러한 요인들은 노래하는 것에 소극적이 되게 하고, 때로는 입을 닫아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큰 소리로 노래하라는 인도자의 외침은 혼나는 듯 불편한 심기를 생성하고, 손뼉을 치라거나 손을 들게 하는 강요는 얼굴을 굳게 하며, 강제로 일어나 노래하게 하는 상황은 참을 수 없이 힘든 내면의 갈등을 초래하기도 한다. 얼굴은 굳어져 있고 마음은 닫혔으며, 은혜의 자리에 있으나 찬양으로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는 모습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성도들과 동일한 불만의 상황을 나누며 한숨을 쉬기도 하고, 때로는 회개를 하며 자책을 하기도 한다. 자리는 점점 뒤쪽으로 물러나 가급적 구석자리 를 선호하게 되어가고, 할 수 있다면 찬양시간이 끝날 즈음 시간을 잘 계산해서 들어가려하며, 머쓱함에 시선은 주보를 완독하게 하는 집중력을 발휘한다. 

  이 외에도 마음이 불편한 가운데 예배의 자리에 와 있게 되면, 주어진 상황과 무관하게 본인 스스로가 이미 마음과 입을 닫고 감추어지지 않는 예민함이 드러나는 모습으로 있게 될 때가 있다. 일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것들에서 생각이 자유롭지 못하고, 또는 말다툼이나 대화의 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인한 불편함, 다른 성도와의 관계에서 주어진 예민함과 긴장감 등 여러 가지 개인적인 환경에서 주어진 많은 스트레스와 생각들이 결국 우리의 입술을 무겁게 하고 마음을 켜켜이 묶어 열리지 않게 할 때가 있다.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아주 사사롭게는 무의미한 생각에 매이거나 집 청소 내지는 다하지 못한 잔소리의 뒷부분을 상상하며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나를 포함한 회중 된 우리는 이러한 일들이 분명 잘못된 것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매번, 매순간 반복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앞서 말함과 같이 간헐적으로 매우 가끔씩 일수도 있다. (그렇지 않은 성도들은 참으로 감사한 모습이며, 늘 그러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사는 자의 삶이기를 진심으로 축복한다.) 

  잘못인 줄 알면서도 늘 반복되고 변화하지 못하는 것은 이러한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교만하고 위선적인 모습이 되는 것인지에 대한 심각한 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왕 되신 하나님을,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친히 몸 버려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주님을 이기적인 우리의 생각과 위선이 철저히 주님의 존귀하심을 기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입술로는 만왕의 왕이라 칭송하면서 우리의 행위는 인간끼리의 관계보다 못한 모습으로 주님을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하여 예배가운데 보여지는 내 모습을 떠올려 보아야 한다. 생명을 드려도 부족한 죄인 된 우리가 구속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 것에 감사하며 드리는 찬양이 한낱 인간 앞에서 부르는 노래보다 진정성이 없고 정성이 없다면 이것은 그 저 죄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부르는 노래가 주님 앞에 드려지는 찬양이 되려면, 단 한 가지 오직 주님께만 집중하는 것이다. 내 삶이 어떠하든지, 지난 시간들과 현재 처해진 상황이 어떠하든지 그 무엇도,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찬양하는 이 시간을 훼방할 수 없도록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온전히 주님께 집중하며, 정성을 다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하심을 드러내고자 애쓰고 성령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도우심을 구하며 예배자의 모습으로 서는 것이 바로 우리가 이 땅에 서 삶을 살고 누리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 되기를 기대하고 소망하는 성도들에게서는 감출 수 없는 표정과 표현이 드러나게 된다. 사람들을 의식하기보다 주님 앞에서의 모습을 생각하고, 지난 시간의 고민과 힘듦 보다 현재의 은혜를 감사함으로 찬양하게 되며, 슬픔과 서러움이 소망과 기쁨으로 변화되어 주님의 영화로우심을 온몸과 마음을 다해 경배하는 모습으로 드러나게 된다. 손을 들고 소리를 높여 찬양하는 모습이나 서서 춤을 추며 뜀을 뛰어도 어색하지 않고,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이 교회를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하게 하여 감동과 기쁨으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르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이 약하거나 없다 해도, 우리는 좌절감으로 주저앉지 말아야하며 주님오시는 그 순간까지 끊임없이 기도하며 노력하고 훈련해야 한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 예배하는 자를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찾으신다는 말씀은 예배자가 되는 것은 우리의 몫인 것이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예배하는 모습이 변하여, 부르는 노래가 찬양이 되고, 주님의 기쁨이 되기를 진심으로 구하며 간절히 소망한다.  

 

김성규 찬양사(교회음악감독, CM뮤직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