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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교계일반

한국 복음주의 교회의 근본적 필연적 사명(3)

 

복음주의 교회의 필연적 사명  (the necessaryl mission)

 

  그렇다면 복음주의 교회의 필연적 사명은 무엇인가? 본질과 필연을 정확히 구분할 수는 없으나 본질적 사명에 충실할 때 나머지 사명은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 본질적 사명이 상황과 상관없이 견지되어야 할 사명이라면 필연적 사명은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라는 면에서 본질적 사명과 구별된다.

  복음주의 교회의 첫 번째 필연적 사명은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을 교회의 성도들이 살아내도록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근본주의 교회가 성과 속 교회와 세상을 나누는 이원론적 영성으로 성스러운 교회에서는 신앙생활을 하지만 속된 세상 속에서는 세상 방식으로 살거나 매우 소극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묵인 내지 권장한다면, 복음주의 교회는 성도들로 하여금 세상 속에서 어떻게 자신들이 믿는 바를 살아낼 것인지를 격려하고 도전하고 후원한다.

  복음주의 교회에서는 상황과 유리된 성경 지식이 논해지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어떻게 구체적인 삶의 정황 속에 녹여 낼 것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토론 실험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별히 각 개인이 처한 상황 즉 학교, 가정, 직장에서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살아가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좋은 역할 모델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지성뿐 아니라 감성과 의지까지 포함한 전인격으로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예수를 따르는 것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복음주의 교회의 필연적인 사명이다.

  총체적 복음을 세상 속에서 살아내기 위해서는 더욱 깊은 복음주의 영성이 필요하다. 복음주의의 미래에 영성 추구와 성숙은 필수 불가결하나 일반적으로 복음주의가 그에 걸맞은 영성을 계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그러나 복음주의 교회가 지평을 넓혀서 교회사 속에서 이미 복음을 기반으로 영성 수련을 해왔던 전통에서 배우고 20세기와 함께 시작되었던 오순절주의의 체험적 신앙을 비평적으로 수용 발전시킨다면 복음주의에 걸맞은 영성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복음과 그 영성에 기초하여 성도가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복음을 살아내게 하는 것은 복음주의 교회의 중차대한 사명이다.

  두 번째로 복음주의 교회는 한국 상황에서 총체적 복음이 어떻게 총체적 선교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지 고민하여 대안을 만들고 실천해야 한다. 각 개인들이 삶의 현장에서 복음의 총체성을 살아내도록 도울 뿐 아니라 교회가 우리 사회 속에서 공동체로서 어떤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여 대안을 창출해야 한다. 교회가 직면해야 할 다양한 영역을 파악하고 각 영역에 대한 관심과 기도가 선행될 때 기초적인 교육과 학습이 가능하며 이어서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실천을 넘어선 공동체적 실천이 뒤따라올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사회, 문화, 통일, 생태적인 선교와 해외 선교가 분리되지 않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이와 같은 통합적 선교를 어떻게 가능하게 하며 어떻게 한 공동체 안에서 협업과 분업을 할 것인지 가 구체화될 것이다.

  이와 같이 다양한 영역의 총체적 선교는 두 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초기 단계에서는 사회봉사(social service)가 주축을 이루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필연적으로 제도와 구조의 문제를 다룰 사회 활동(social action)이 더해질 것이다. 희생과 열정을 넘어서서 사회 전반을 이해하여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이를 사회 제도 속에 구현하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그러나 이는 복음주의 교회의 중요한 사명이다. 더군다나 한국 교회는 당분간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게 될 신자유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보편적 틀 안에 한국 사회라는 특수성을 지닌 채 존재한다. 따라서 이같은 복합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안을 찾는 것은 한국 복음주의 교회의 피할 수 없는 사명이다.

  세 번째로 이와 같은 사명에 충실하다 보면 ‘선한 일(good works)’을 위한 복음주의 교회의 연대가 필요하다. 이것은 교회가 정치 집단화되는 것과는 다르다. 개교회가 감당할 수 있는 총체적 선교가 있지만 더 큰 단위 더 넓은 차원에서 연대의 필요성이 제기될 수 있다. 이러한 연대는 복음 전도로부터 해외 선교를 비롯해서 잘못된 공공 정책으로 인한 반정부 시위나 대안적 제도 입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복음주의 교회들은 교제(fellowship)의 차원을 넘고 개교회주의와 각 교단의 배타성을 넘어 이슈에 대해 서로 협력해야 한다. 다만 이러한 연대는 복음 복음주의 총체적 선교 이슈 선정 등에 동의가 이루어질 때 가능한 것이어서 필요성은 크나 구체적인 방법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주의 교회가 건강한 교회론을 세워나간다면 복음주의 교회 간의 건강한 연대는 가능할 것이다. 특별히 근본주의적인 교회들 사회의 지탄을 받는 교회들 과잉 대표성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정치집단화한 기관들이 한국 교회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복음주의 교회들의 건강한 연대는 시대적 요청이라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복음주의권을 넘어서 사안에 따라 다른 집단과 연대하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현대사회는 다양한 집단이 모여서 이룬 사회고 복음주의 교회는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집단 중 하나다. 따라서 유사한 입장과 동일한 목적을 가진 사안에 대해서 다양한 그룹들과 연대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이는 순기능적 지성과 총체적 복음을 믿는 복음주의 교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사안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복음주의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훼손당하지 않는다면 기독교 내의 다양한 그룹뿐 아니라 기독교를 넘어서 범종교적인 단체나 시민사회단체 정부와의 연대도 필요하며 가능하다. 의제 설정과 우선순위 조정 등은 복음주의 교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연대가 모든 면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혈맹이 될 수는 없다. 이는 사안 자체가 전체 사회를 위한 전략적 제휴의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가 상황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위한 학습, 토론, 소통, 담론 형성의 경험이 일천하기 때문에 섣부른 연대는 불필요한 대가를 지불할 가능성이 많다는 점이다. 그러나 종교와 신념의 자유가 헌법적 가치로 보장되는 사회의 책임성 있는 단위로서의 교회는 사회로부터 요구받는 역할이 있다. 따라서 복음이 가지는 총체성을 신실하게 지지하는 복음주의 교회는 그 대가를 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