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에는 구약성경이 많이 인용되었다. 예수님도 신명기와 시편을 사랑하신 듯하다. 신명기는 하나님의 법을 기록한 것이며, 시편은 그 법을 묵상할 때 터져 나오는 감정을 노래한 것이다. 그러므로 찬양은 묵상에서 흘러나온다. 그분의 말을 담으니 그분을 향한 노래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신앙은 “행하는 싸움”이 아니라 “담는 싸움”이다. 비록 우리가 질그릇 일지라도 보배로운 예수님을 담으면 보배로운 그릇이 되는 것이다. 내가 담은 것이 밖으로 열매 되어 나오는 것이다. 그것이 찬양이다. Being(존재)에서 Doing(행함)이 나오는 것이다.(눅6:43)
예수님께서 자기를 해하려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내 말에 너희가 거하면 너희가 내 제자가 되고,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할 것이다”(요8:31-32)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시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우리 아버지가 아브라함이고, 우리가 그의 자손이어서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는데 우리를 자유케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라고 반문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주 흥미로운 말씀을 이어가신다. “뭐? 너희가 아브라함 자손이라고? 아브라함이 너희 아버지라고….?” “내가 너희 진짜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려줄까?” “너희 아버지는 원수 마귀야, 너희 아비는 처음부터 살인한자고, 거짓의 아비야”(요8:44)
“처음부터 살인한 자가 너희 아버지이기 때문에 너희가 지금 나를 자꾸 죽이려고 하는거야”(요8:40)라고 하셨다. 자기의 존재는 마귀의 자녀인데 아브라함 자손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신 것이다.
가끔 뉴스를 보면 “바지사장”이란 말이 나온다. 리스크(위험)가 큰 사업일수록 나쁜 사장이 자기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바지사장을 세우는 것이다. 즉, 사장은 사장인데 진짜 사장이 아니고 무늬만 사장인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바지사장이 결제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에 있는 진짜 사장 폭력배들이 결제하고 있는 것이다.
진리를 해하려고 하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네 입으로 말하니깐 네가 사장인 줄 알지? 착각하지 마라. 너는 바지사장이야. 너는 네 뒤에 네 아비가 시키는 것을 말하고 행동하는 거야”라고 정확하게 그 존재를 말씀하신 것이다.
독일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다양한 영역의 일들을 학습시킨다. 특히 그중에 특이할 만한 것은 “선동을 분별하는 법”을 배운다. 수많은 선동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자기의 공동체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어떤 말들의 배후에 있는 진짜 사장이 누구인지? 진짜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분별해 내는 힘을 키워서 두 번 다시 히틀러와 같은 이들에 의해서 선동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중요하게 가르친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영적 전쟁은 “말들과 말씀”의 전쟁이다. 에덴에서부터 속삭인 사단의 말은 호시탐탐 성도와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은밀히 쏟아내고 있다.
예를 들면 “하나의 절대적인 진리가 아닌, 다양한 종교적 진리가 존재하며 우리는 모든 종교의 진리를 서로 존중하고 이해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가 대표적이다. 얼마나 매력적으로 들리는가? 매력적이고 매우 포용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그들에게 큰소리로 물어보시라. “그대는 아버지가 한 분이어서 불편하신가요?” 배후의 영의 살피고 분별해서 말씀과 성령으로 결박해야 승리할 수 있다. 우리는 날마다 깨어 말들을 분별해서 무엇을 담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세상의 말들(words)’이 내게 들어오면 길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그 말씀(The Word)’을 담으면 가야 할 길이 명확해진다. 새 포도주를 담으면 새 부대가 되어 새 길을 걷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눅5:38) “변하지 않는 하나님 말씀을 담으면 수시로 변하는 세상의 만 가지를 대응”할 수 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사40:8)
햇빛을 보면서 어둠을 탓할 수는 없지 않는가? 빛 되신 말씀은 품고 살아가는 자들은 환경에 눌리지 않는다. 어둠은 빛이 임하면 번개같이 사라지는 법이다. 승리의 비결은 담는 것에 의해 결정난다.
질그릇인 자신을 묵상하면 풋풋한 흙냄새 외에 그 무엇이 나오겠는가? 내 안에 계신 보배로운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능력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다.
그 이름 외에는 답이 없다!
백문일답!!
최성만 목사(울산오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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