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다. 그 옆에는 “나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도와주세요(I’m Blind. Please Help)”라고 쓰인 팻말이 놓여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주위를 지나가지만 관심이 없다. 그때 한 여자가 지나가다가 그 소경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팻말의 글을 다시 바꿔 적는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동전과 지폐가 그 걸인 앞에 가득히 쌓인다.
이 광경을 지켜본 한 노신사가 그 여자를 붙들고 물어본다. “뭐라고 쓰셨습니까?” 그때 그 여자는 “같은 뜻이지만 다른 말로 썼습니다.”라 대답을 한다. 그 여자가 고쳐놓은 팻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름다운 날이네요. 그러나 저는 그것을 볼 수 없어요.(It’s a beautiful Day, and I Can’t See It )”
지금 우리 사회는 말이 너무 거칠어서 상처투성이다. 상대방을 죽이고 싶은 악마의 말처럼 험악해져 있다. 탄핵이란 말이 뇌리에 박히면서 도대체 탄핵이란 말을 언제 쓰는 것인가? 탄핵이란 사전적 의미를 보니 대통령, 국무총리, 법관 등 고위 공직자가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했을 때 의회의 소추 및 법적 절차를 통해 강제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한 나라의 지도자들을 의회의 다수로 이렇게도 무자비하게 탄핵한다면 나라는 무슨 꼴이 나겠는가? 계엄을 선포하는 것도 신중해야하지만 그렇게 하도록 유도하는 일은 더욱 나쁜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을 체포하려고 총알을 맞으면서도 그 일을 하라는 말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최고의 지도자들이 모인 기관들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은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한다. 언제 우리 사회에 국민들의 심금을 울려주는 희망적이고 좋은 말을 들을 수 있을 는지~~~
부산의 대형교회 중 하나인 모 교회에 대한 소식을 들으니 은퇴하신 장로님들이 시무장로님들 보다 입김이 세어서 교회의 행정적인 일들에 너무 많이 간섭하여 후임 목회자를 모시기가 어렵다는 말을 듣는다. 한평생 교회를 섬기고 이제 남은 생을 하나님과 독대하며 성숙한 어른으로 남아서 교회에 덕을 세우는 일을 해야 할 텐데 도대체 어떻게 보내고 계시는지 그 교회가 참 궁금하기도 하다.
하루는 예수님이 감람산으로 가다가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들이 나아온다. 그들을 가르치시는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기를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는 돌로 치라 명하였는데 당신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예수님이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고는 일어나더니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셨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던 여자만 남았다. 예수님이 일어나 여자 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그때 그 여자가 ‘없나이다.’ 하니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하십니다. 따뜻한 예수님의 말 한마디가 그 여인을 살린 것이다.
사람들은 말을 통해 죽이려고 하지만 예수님은 언제나 살리려고 하신다. 이처럼 좋은 말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칭찬하면 고래도 춤을 춘다고 했는데 사람들에게 칭찬하는 말은 역사를 바꿀 수도 있다. 이제 파릇파릇 새싹들이 돋아날텐데 우리의 마음속에도 좋은 말 따뜻한 말을 가지고 병든 우리의 사회를 치유하는 물결이 일어나면 좋겠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골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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