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오정 시리즈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사오정이 입사시험을 치르기만 하면 불합격이다. 그런데 그에 비해 손오공은 입사시험을 치기만 하면 합격이다. 그래서 사오정이 손오공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너는 입사시험을 치를 때 마다 합격을 하고 나는 매번 떨어지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 묻는다. 그랬더니 손오공이 “나를 따라와서 내가 면접시험을 치를 때 어떻게 하는지를 지켜보고 있다가 내가 하는 대로 따라 하라”고 했다. 사오정은 손오공의 면접시험 자리에 따라갔다.
면접관이 손오공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축구선수는 누구입니까?” 손오공은“예전에는 차범근이었지만 지금은 손흥민입니다.” 그러자 면접관이 씩 웃으면서 두 번째 질문을 한다. 박찬호 선수의 등번호는 몇 번입니까?” “61번입니다.” 그러자 면접관이 “스포츠에 대하여 조예가 매우 깊으시군요.” 그러면서 다음 질문을 한다. “UFO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손오공이 빙그레 웃으면서 “과학적으로 아직 검증된 바가 없기 때문에 정확한 의견을 말씀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면접관은 아주 신중한 대답이라고 하며 합격을 시켜주었다. 의기양양해진 손오공은 사오정에게 말했다. “잘 봤지, 잘 배웠지?” 그러자 사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수 배웠으니 자기도 그대로 해 보겠다고 했다.
드디어 사오정이 입사 면접을 보러 갔다.
사오정은 손오공이 가르쳐 준 대로 외우고 또 외워 완벽하게 준비해서 면접관을 만났다. 면접관이 첫 질문을 한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사오정은 주저 없이 대답을 했다. “예전에는 차범근이었지만 지금은 손흥민입니다.” 깜짝 놀란 면접관이 다시 물었다. “나이가 몇 살입니까?” “예, 61살입니다.” 면접관이 어이가 없어서 또 물었다. “당신, 귀는 제대로 들립니까?” 그러자 사오정이 말했다. “과학적으로 아직 검증된 바 없기 때문에 정확한 의견을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참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이야기다. 남의 행동을 그대로 비판 없이 모방하는 현대인의 어리석은 모습을 풍자한 듯하다. 아무런 생각 없이 맹목적으로 세상을 따라가는 우리들의 모습과도 같다. 만물의 찌끼 같은 인간이 광활하고 무한하며 끝이 없는 영원의 세계를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 바늘귀 속으로 허블 망원경을 가지고 우주를 관찰하면 9천억 개의 별들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티끌같이 한순간에 날아갈 인생들이 온갖 사상과 이념에 빠져 공허한 세상을 그려내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고 변함없이 일하고 계신다.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주어진 여건 속에서 잘 살아가면 되지만 인간의 삶이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젊은 시절에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잘난 척하고 교만하게 살아가지만 그 언젠가 인생의 종말이 오면 두 손을 들고 항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사순절을 맞이하면서 빌라도는 참 어리석은 자였음을 생각하게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으로 잘못된 선택을 해 영원에서 사라지는 불행한 인간이 되고 만 것이다. 마가복음 15장에 보면 예수님을 재판할 때 빌라도가 자기에게 끌려온 예수를 보고 묻기를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하자 예수는 입을 벌려 “네 말이 옳도다.”라고 대답 하셨다. 이때 명절이 되면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전례가 있는데 민란을 꾸미고 그 반란 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는 자가 있었다. 빌라도가 예수와 바라바를 놓고 누구를 놓아주기를 원하느냐고 묻는다. 수많은 군중이 예수를 죽이고 바라바를 놓아달라는 요구를 하자 사실 빌라도는 예수를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넘겨준 줄을 알았다. 그의 아내가 예수의 일로 잠을 설쳤고, 예수는 의로운 사람이니 심판하지 말아 달라고 사람까지 보내 빌라도에게 당부했지만 결국 그는 군중의 만족을 주기 위해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를 못 박히도록 넘겨주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군중의 목소리에 판결이 굽어지고, 거짓을 진리로 바꾸고, 힘의 논리로 세상을 제압하려는 어리석은 선택 앞에 놓여있다.
오래전에 “순간의 선택이 십 년을 좌우한다.”는 광고가 있었다. 지금 우리는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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