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복음주의 교회의 근본적 사명(the essential mission)
그렇다면 한국적 복음주의 교회의 사명은 무엇인가? 여기에는 근본적인 사명(the essential mission)과 근본적 사명으로 말미암은 필연적 사명(the necessary mission)이 있다.
먼저, 근본적 사명은 복음을 말, 행위, 전인격적 삶을 통해 지켜내고 살아내는 사명을 뜻한다. 이것은 복음주의의 뿌리와 연관된다. 이를 위해서 첫 번째로 복음주의 교회는 복음을 바로 이해해야 하는 본질적 사명을 갖는다. ‘복음’이 무엇이고 복음이 어떻게 사람을 살리는지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필요하다. 복음이 증언하는 예수에 대한 이해와 그의 가르침에 대한 강조가 따라오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더 나아가 복음과 복음의 주인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유일한 증거를 담고 있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아래에서 살아가는 것은 근본적인 사명이다.
그러나 복음이 가지는 단순성을 강조하다가 복음의 심오함과 총체성을 놓치는 것은 복음주의가 갖는 건강하고 순기능적 지성의 역할을 무시하는 것이며 결국 이는 복음 자체의 적실성과 영향력을 감소시킨다. 복음을 우리의 상황에서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 시대의 언어와 사상으로 성경의 권위와 예수의 유일성과 구속적 사역의 의미와 예수께서 가르친 하나님나라 사상을 바로 이해해야 한다. 지난 이천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예수를 이야기해왔지만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이 증거하는 예수를 이해하고 그 예수가 전한 복음을 믿고 구원을 얻었음을 확신하고 시대 상황 속에서 예수와 그의 하나님나라복음을 따르려했던 사람들이다. 예수와 복음에 대한 헌신은 앞서 간략히 논의한 상황에 대한 해석에 따라 다른 모양을 양산하기 때문에 예수와 복음에 대한 이해 역시 상황을 떠날 수는 없다.
두 번째로 복음주의 교회는 복음과 예수를 전하는 본질적 사명을 갖는다. 정치사회적 상황에 대한 이해와 문제 제기 동료 시민과 이웃 더 나아가 자연 생태계에 대한 폭넓은 관심을 갖고 있는 ‘자칭’ 복음주의자들이 더 이상 자신의 말로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다. 비록 회심의 주체적 몫이 성령님께 있으나 이들과 이들의 교회에서 회심이 빈번하게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이들의 빈약한 시도나 무관심에 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오히려 복음이 자주 전해지고 회심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곳은 근본주의적 성향이 강한 교회와 개인이다.
한국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 전도와 반지성적 태도가 거의 동일시되는 경험을 했다 할지라도 이제는 삶과 인격을 기반으로 하고 과정 중심적이며 총체적인 복음 전도를 발전시켜야 한다. 더 이상 우리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잃어버린 양’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는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왔다”고 선언한 그들의 주인인 예수를 따르는 자들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뒤섞여 있는 상황 속에서 절대적이며 유일한 진리인 예수와 그의 복음을 어떻게 설명하고 살아내서 사람들이 회심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인가는 복음주의자와 복음주의 교회의 과제다. 우리 시대 사조 속에서 가장 적실한 전도 방법론을 찾아내려는 노력과 함께 예수와 그의 복음을 말과 삶으로 전하는 일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세 번째로 복음주의 교회는 복음이 만들어내는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본질적인 사명을 갖는다. 공동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복음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부분이다. 복음을 통해 회심할 때 이 회심은 한 개인의 회심을 넘어 공동체로의 회심이다. 그래서 성경은 공동체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 공동체는 부가적인 중요성 밖에는 갖지 못하는 것 같다. 개인주의가 가진 장점이 있긴 하지만 신앙의 양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 그 원인이다.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 드러내는 기본단위로서 복음의 총체성을 이해할 때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교회로 불리는 조직은 많이 있다. 문제는 교단의 전통과 현대 마케팅적 조직 원리에 따른 교회 조직은 있으나 복음이 만들어낸 공동체를 드러내는 교회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복음주의 교회는 그들이 믿는 바에 걸맞은 교회론을 신학적으로 정립할 뿐 아니라 실제로 공동체적 삶이 가능한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발전시켜나가야 할 근본적 사명을 가지고 있다.
복음주의 교회는 성경의 권위 아래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는가에서 시작해 어떻게 갈등과 차이를 해소하며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일치를 이룰 수 있는지 어떻게 말과 혀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지를 드러내는 공동체를 만들어내야 한다. 특별히 공동체를 갈구하지만 물질주의와 개인주의의 결합으로 인해 공동체가 전반적으로 해체되는 상황에서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 보여주지 못한다면 개개인이 믿고 전파하는 복음의 영향력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예수께서 전하신 복음은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대안적 공동체를 형성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복음과 예수를 자신의 시대 상황 속에서 이해하고 따르며 전인격적인 방법으로 전하고 복음에 걸맞은 공동체를 이루는 이 본질적인 사명에 매진하고 있다면 그들을 복음주의자 또는 복음주의 교회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현재 모습 속에서 이런 복음주의자나 복음주의 교회를 찾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복음도 예수도 복음 전도도 교회도 있으나 피상성과 신학의 부재 그리고 상황에서 유리된 비실제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본질적 사명이 실행되지 않는다면 이들에게 복음이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모습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본질적 사명이라는 뿌리를 갖지 못하면 필연적 사명이라 할 수 있는 줄기는 메말라 가고 건강한 열매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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