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제국의 단기간 급격한 팽창은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두 가지 맥락으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는 동로마(비잔티움)제국과 페르시아(사산 제국)의 300여 년(337~628년)에 걸친 전쟁으로 사막 지역에서 발원한 이슬람에 관심을 둘 만한 여력이 없었다. 두 제국의 전쟁이 지속된 이유는 종교적 대립(기독교 vs 조로아스터교)과 경제적으로는 중요한 교역로인 시리아/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차지하려 했다. 전쟁으로 인해 두 제국의 국력이 약화 되고, 노동력 부족, 빈곤층 양산 등으로 사회적 경제적 불안정은 이슬람 세력의 태동과 확산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또한 두 제국의 전쟁으로 인해 교역로가 막혀, 상인들이 새로운 아라비아반도 서쪽 메디나/메카를 경유하는 새로운 교역로를 개발했는데, 이로 인해 이슬람 도시들이 부강하게 되어 추후 군사력을 유지할 수 있는 재원 충당이 되었다.
둘째는 541년부터 약 50년간 창궐한 페스트였다. 동로마제국 인구의 약 30%, 페르시아(사산왕조)도 약 20%의 인구가 사망했다는 추정이 있다. 7세기경 페스트를 겪은 후의 동로마의 인구는 2,500만 명, 페르시아는 2,000만 명으로 추정되고, 페스트의 피해가 미미했던 아라비아반도 인구는 약 100만 명 정도로 추정한다. 이러한 적은 인구의 이슬람은 정복지의 자치를 허용하고, 낮은 세금으로 대중의 호응을 얻고 사회적 안정을 도모했다.
여기서 이슬람의 창시자인 무함마드의 생애를 간략히 살펴보면, 570년에 메카에서 출생하여 25세에 재력 있는 카디자(40세)와 결혼했는데, 당시 무함마드는 아내 카디자 사업체의 성실한 직원이었다. 카디자는 무함마드를 재정적으로 전폭 지지했고, 무함마드는 40살(610년)에 헤라 동굴에서 천사의 계시받아 알라(신)를 포교하는 이슬람의 예언자로 활동했다. 무함마드가 알라 유일신과 사회적 평등을 주장하자 다신교를 믿는 메카 종교인들에게 박해받아 622년에 추종자들과 450km 떨어진 메디나로 이주(헤지라)했다. 무함마드는 메디나에서 다양한 부족을 통합하여 이슬람 공동체(국가 형태)를 형성하였고, 630년에 쫓겨났던 메카를 정복하고, 나머지 아라비아반도 대부분은 평화적으로 동맹과 투항을 받아 통합을 이루었고, 632년에 사망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아라비아 부족들은 생계형 용병으로 ‘동로마와 페르시아’ 두 제국에서 주로 국경방어 전투에 참여했다. 그런데 이들은 초기 이슬람 확장에 있어서, 이슬람의 유능한 전사로 합류하여 용병으로 있던 나라와의 전쟁에서 큰 역할을 했다. 이슬람은 636년 ‘이라크 지역’을 점령했고, 637년에는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장악했다. 이슬람은 642년 니하반드 전투에서 승리하여 ‘사산 제국의 주요 도시’를 함락했고, 651년에는 사산 제국(페르시아)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이슬람 영토로 편입시켰다.
이슬람은 페르시아 점령 후, 동진하여 중앙아시아와 당나라와 인도까지 영향력을 넓혀 실크로드 무역로를 장악했다. 특히 이슬람(아바스왕조)과 당나라와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다툰 탈라스 전투(751년)에서 이슬람이 크게 승리하여 이슬람 문화와 당나라 문화가 실크로드를 통해 상호 전파되었다.
이슬람의 동로마 지역 점령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이슬람은 636년 야르무크 전투에서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을 장악했고, 637년에는 예루살렘을 평화적으로 점령했다. 642년에는 동로마의 곡창지대였던 이집트를 점령하여 동로마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이슬람은 계속 서진하여 700년대 초 카르타고 등 지중해 북아프리카 지역을 점령했고, 711년에 이베리아반도(스페인)를 침공하여 718년에는 이베리아반도 대부분을 정복했다. 이베리아반도를 점령한 이슬람은 732년 피렌체 산맥을 넘어 프랑크(프랑스/독일 지역)를 공격했으나, 프랑크왕국의 카를 마르텔이 이슬람을 격파하여 이슬람의 유럽 확장에 제동을 걸었다.
이슬람의 정복 전쟁은 종교 전쟁이었고, 정복지가 선교지가 되고 현재까지도 정복지 대부분에서 이슬람 종교가 고착되었다. 이슬람의 정복지역 정책은 평등성을 강조하며, 정복지 주민이 인두세만 내면 개종할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인두세를 내지 않고 세금혜택과 사회적 위치를 높이려 자발적으로 개종하는 사례도 많았다. 특히 동로마제국의 정통 기독교에 박해받던 기독교 이단 교파들(네스토리우스파/도나투스파 등)은 동로마보다 이슬람의 통치를 더 수용하고 환영했다. 이처럼 이슬람 제국의 정복지는 선교지가 되었으나 강제적인 개종이 아니라 사회적/경제적/종교적 관용 정책을 펼치면서 정복지 주민들에게 이슬람의 종교와 문화가 스며들게 하였다.
참고로 네스토리우스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분리된 존재로 보았으며, 도나투스파는 배교한 성직자의 성례를 무효로 간주하여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정리하면서, 한 유튜브 영상에서 무슬림 MZ세대가 성경에 ‘삼위일체’라는 말이 없다고 하는 질문을 하는 영상을 보면서, 이슬람의 MZ세대에 대해 생각해봤다. 중동 기독교 전문가인 듀에인 알렉산더 밀러 박사는 무슬림들은 이슬람의 폭력성/여성 혐오/인권 무시 등으로 이슬람을 떠나고 있고, 이슬람 회의론자들이 기독교에 매력을 느낀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확신’이었다고 한다. 밀러 박사는 1960년부터 2010년까지 전 세계에서 1,000만 명의 무슬림이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했다고 연구 논문에서 발표했다.
확인해보니, 사우디아라비아/이란/파키스탄 이외의 나라들은 인터넷/유튜브 시청이 가능하다고 한다.
백문백답을 해도 예수 그리스도가 인생의 ‘답’이듯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MZ 무슬림에게 잘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자료를 아랍어나 영어로 잘 만들어서 인터넷과 영상 선교에 더 집중한다면, 이슬람의 젊은 세대와 다음 세대들이 예수님을 바로 알아 예수를 구주로 믿는 이슬람 MZ세대가 쏟아져 나오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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