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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교계일반

“Active에서 Acts로”

  이마에 또 하나의 나잇살이 늘었다. 성형외과를 빈번히 들락거려도 나이를 물어보면 “거의 다 적중”이다. 제법 인성이 괜찮은 사람이라도 만나면 5~6살 정도 나이를 깎아서 대답해 준다. “너무 젊어 보이시네요~”

  나이가 드니 근력도 빠지고, 아내의 잔소리도 무섭게 여겨진다. 아름다움과 매력도 사라지고 늘 깜빡거려 기력이나 총명도 쇠퇴해 간다. 특별히 맛있는 것도 없어진다. 어느 날 밤 잠자리에 누웠더니 덜컥 두려움이 생긴다. 

  맷돌은 약해지고 창문은 희미하고 작은 새소리에도 잠을 설친다. 음악하던 여자들은 소리 끗발이 쇠약해진다. 난감해졌다. 다윗과 솔로몬의 이야기다. 골리앗을 이겼던 다윗이 아닌가? 아버지의 양을 목양할 때 사자과 곰과도 싸웠던 그였다. 그런 그도 나이 듦에 아찔한 것이었을까? 그의 기도는 처절하다. 

  “늙을 때에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나를 떠나지 마소서”(시 71:9)

  골리앗을 물리친 영웅이며 누구와도 견줄 사람이 없는 다윗이다. 그런 그도 나이 드니 버림받음, 쇠약함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온 것이다. 시간의 위기 앞에 당황했던 다윗은 정말 노년이 되었을 때 시23편을 노래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시23:1)

  자신을 양과 동일시 하며 자신의 삶을 목자의 손에 이끌려 살아가는 수동태 인생으로 묘사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새해마다 표어가 거창하다. 좋은 일이다. 목표점이 있으면 달려갈 길이 명확해진다. 그러나 열매는 내가 달려가서 얻는지는 것이 아니라 영접할 때 획득 되어지는 축복이다. ‘액티브한 삶(자기행전)’이 아니라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길을 걷는 ‘Acts(성령행전)’가 열매 맺는 삶이다.

  주신 기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땅을 찾아 헤매던 단지파는 사라지고 말았다. 요단강 동편의 푸른 초장을 바라보고 약속의 땅으로 가기를 주저했던 두 지판 반은 훗날 오히려 정복당하여 사라졌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은 아침마다 새롭고 무궁하시다. 이른 비와 늦은 비처럼 매일 같이 우리 위에 임하신다. 하지만 은혜가 소낙비처럼 내려도 뒤집힌 잔 안에는 한방울의 물도 담기지 않는다.  목자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의 빈잔을 올려다 드리면 넘치도록 부어주신다. 오! 주님 나는 마음이 가난한 자입니다. 나의 빈잔을 채워 주옵소서

  광야에서 처음 하늘 양식 만나를 만났을 때 무척이나 기뻤다. 하루 분량만 거두라는 규정을 어기고 더 많이 가져올 정도로 제법 매력적인 음식이었다. 그러다가 어느새 “우리가 이 하챦은 음식을 싫어하노라”(민21:5)라고 불평했다. 목자가 주신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한 것이다. 울타리를 넘어가고자 한다. 탐욕의 그림자가 찾아왔다. 탐욕은 우리의 시선을 교란 시킨다. 하나님을 바라보던 시선을 타인을 향한다. 갖지 못하여 비난하고 빼앗기 위하여 강도의 굴혈에서 모의를 꾸민다. “하나님나라를 위하여”라는 모토로 위장하여 자신의 가증스러운 욕심을 표출한다. 이 모든 저주의 사슬을 끝내는 길은 목자의 손을 통해 주어진 것에 무한히 감사하는 것이다. 

사진_이용희블로그에서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하였으며, 나의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주께서 나를 택하셨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시 71:6) 

  모태에서는 모든 것이 수동적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결국 인생은 수동태이다. 수동태 인생의 파워는 받아들이는 능력과 비례한다.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위태한 길로…. 

모두 영접하면 궁극적으로 아버지 집에 영원히 거하게 될 것이다.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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