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무능을 거의 죄악시 한다. 무능한 직원은 좌천되거나 쫓겨난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능한 자를 통하여 유능한 자를 부끄럽게 하셨다. 은혜를 아는 자들은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
바울은 디도 목사에게 부탁한다.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딛3:9)
한마디로 스펙를 자랑하는 이들을 피하라는 것이다. 무익하고 헛된 변론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 변론이 왜 생기는가? 눈물의 은혜가 사라지면 남는 것이 변론과 모순뿐이다. 울산에서 자동차 판매를 아주 잘하시는 집사님 한 분이 계시다. 그분은 마주 앉으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노하우가 뭐냐고 묻는단다. 은혜를 뭘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하늘 영광 버리고 사람들의 이야기 안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을 성육신이라고 한다. 한때 우리나라에 교황이 방문하자 신문에서 “성하(聖下)”하셨다고 했다. 성스러운 분이 이 땅에 오신 분은 예수님뿐이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사관이 없어 말 구유에서 나셨다. 평범한 목수의 아들로 사셨다. 공생애 기간은 모욕과 침 뱉음과 수치를 당하셨다. 그와 함께했던 제자 유다로부터 배신을 당하였고 따르는 모든 제자는 다시 갈릴리로 내려갔다. 열두 영이나 더 되는 천사를 호령할 수도 있었지만 오직 보내신 이의 뜻대로 순종하셨다.(히5:8)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신 것이다.
메시야의 족보를 묵상하면 뚜렷이 드러나는 신학적 논고는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이다.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을,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세라가 아니라 베레스를…. 언제나 차자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오시는 길을 이끄셨다.
세상 사람들의 상식을 따라 메시야가 오신 것이 아니다. 여리고성이 무너질 때에 자신과 온 가족이 구원받았던 기생 라합, 이방인으로서 도덕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시어머니와 함께 힘든 삶을 살았던 룻도 보아스를 만나 메시야의 조상이 되었다. 유다의 며느리 다말은 시아버지와 부적절한 관계를 통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 베레스가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다. 충성스러운 신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통하여 태어난 솔로몬, 정혼하였지만 성령으로 잉태한 요셉의 아내 마리아…. 이해할 수도 없는, 이해하기도 어려운 인간의 이성의 틀을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 오직 은혜로 된 것이다.
올해도 여전히 성탄 트리가 거실에서부터 교회 입구 그리고 도심 곳곳마다 셋팅 될 것이다. 더 환한 십자가, 더 밝고 빛난 장식들, 아주 잘 보이는 길목에 가면 틀림없이 그 성탄트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필리핀 세부에 가면 “시눌룩 페스티벌(Sinulog Festival)”을 한다. 그 축제는 세부를 지키는 수호성인으로 여겨지는 아기 예수(산토 니뇨, Santo Nino)를 기념하는 축제이며 축제의 이름인 ‘시눌룩’은 아기 예수를 기념하는 민속춤을 의미한다. 황금으로 된 아기 예수에게 찬란한 옷을 입히고 사람들은 춤추며 줄지어 따라간다.
갑자기 성탄 트리가 말을 건다. “올해는 내 몸에 어떤 옷을 입힐거니?” 말을 걸어오는 성탄트리에게 대답할 말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2:7)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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