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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발행인칼럼

"발자국 자국마다 은혜뿐"

   내 나이 이제 일흔이 되었습니다.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니 발자국마다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군대를 마치고 집에 오니 아버지가 나를 위해 문전옥답을 1,740평이나 등기이전을 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결혼해도 내내 같이 살자고 하셨습니다. 나는 할아버지 말씀대로 마음먹고 새마을 지도자가 되기로 꿈을 꿨습니다. 농촌계몽운동을 하고 우리 마을을 예수 믿는 마을로 만들려고 작정했습니다. 그때부터는 더 열심히 살았습니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이 있으면 앞장서서 달려가서 도와주었습니다. 특히 장례식이 있으면 상여를 매고 봉분을 만드는 일도 적극적으로 했습니다. 지게를 진 내 모습에 어른들의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수요일 저녁예배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모든 것을 정리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26살이 되자 우리교회 전도사님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 27살에 결혼을 하고 딸과 아들을 낳아 기르면서 신학교를 다녔습니다. 다른 사람은 20대 초반에 대학을 다니는데 나는 20대 후반에 비로소 대학을 입학한 것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교회가 나를 교육전도사로 임명하여 준 것입니다. 적은 사례비지만 성미가 있어서 그나마 근근이 생활은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등록금이 없어서 환등기를 팔러 다니기도 하고, 아내가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며 삶은 참으로 고달팠습니다. 

  개척교회를 섬기면서 지하에서 살고 있던 어느 날 저녁, 밥을 먹으려 하는데 길을 가던 사람이 들이닥쳤습니다. 그러고는 막무가내 밥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식구들 먹을 밥도 부족한데 길손이 찾아왔으니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그냥 돌려보낼 수 없어 들어오라 하고는 누룽지를 삶아 주었습니다. 그도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단숨에 누룽지 한 사발을 먹고는 다시 길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위기요 배고픔이요 돈 걱정인 그때 그 시절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늘 기도하고 감사함으로 기적 같은 시간을 보내온 삶이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냉장고에 먹을 것이 가득합니다. 쌀은 남아돌고 집안 이곳저곳에 먹을 것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나의 마음에는 감사가  줄어들고 오히려 불평이 늘어갑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봅니다. 

  남매가 장성해 제 짝을 찾았습니다. 먼저 결혼한 딸에게는 정말 씩씩하고 잘생긴 아들을 주셔서 우리 가정에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5년 전에 결혼한 아들 집에서 며느리가 임신했다는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얼마나 반갑고 감사한지. 양가의 부모들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드디어 지난 9월 12일에 예쁜 공주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누구나 집 안에 있는 일이지만 지금은 결혼도 잘 하지 않고 자녀도 잘 낳지를 않는 현실에서 자녀 출산은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며칠 전 아내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왔습니다. 그날 아침 나는 조찬모임이 있어 시내에 갔다 오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당신 친구들이 우리 집에 오랜만에 오는데 내가 뭘 사가면 좋겠소?” 했더니 “수산물 시장에서 들러 갈치를 사 오면 좋겠어요.”라고 했습니다. 만 삼천 원짜리 갈치 세 마리를 골랐습니다. 갈치 장사꾼과 흥정도 잘 되어 세 마리 3만 5천 원을 주고 샀습니다. 집에 와서는 3만 원을 주었다고 하얀 거짓말(?)을 했습니다. 좋은 물건을 싸게 잘 샀다는 걸 아내한테 뽐내고 싶었습니다. 아내가 활짝 웃으며 너무도 잘 사 왔다고 했습니다.

  며칠 있으면 호주 뉴질랜드 선교를 가야 합니다. 경비가 부족하여 심히 고민하는 줄을 하나님이 아시고 아내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여보, 이번 선교경비의 반을 제가 보태 드릴게요.” 아내 말에 나는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갈치 세 마리에 선교비 이백만 원을 도움받게 해 주셨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걸음걸음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사람을 붙여 주시고 필요한 물질을 주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남은 일이 있다면 목회를 잘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후임 목사님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가 충만하여 이 교회를 잘 이어가기를 소망할 뿐입니다. 한 교회를 30년 동안 섬기게 하시고 큰 어려움 없이 지내 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일뿐입니다. 

  이제는 세례요한처럼 소리로 살다가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으로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나의 모습은 등 뒤로 사라지고 예수님만 나타나시길 소원합니다. 후임 목사님의 사역에 밑거름으로 남아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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