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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교계일반

"가을이 무르익다"

  ‘주여, 지난여름은 무척 더웠습니다’라고 릴케의 싯귀를 흉내 내어 고백하고 싶었던 그 무더운 지난여름 기억은 사라지고 어김없이 가을은 찾아왔습니다. 공기가 달라지고 하늘이 높아지고 그 높은 하늘을 수놓은 흰구름까지 삼라만상이 가을이란 새 계절을 맞이합니다. 여느 해처럼 은행의 잎이 노오랗게 물들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단풍나무의 잎이 새빨개질 것도 같지 않은 가을이지만 떠나보낼 준비를 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창밖의 큰 느티나무 잎들은 단풍이라기보다는 갈색의 낙엽으로 변했습니다. 그것도 골고루 물이 드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물을 들이는 시대를 닮아 브릿지를 넣은 것 같습니다. 지난여름의 혹독한 더위에 시달린 흔적을 보여주는 나뭇잎들도 가지에서 떠나갈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비록 울긋불긋한 잎새의 아름다운 이별이 아니라도 우리 모두 가을을 떠나보낼 채비를 서서히 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가을은, 다음 계절을 위해 떠나보내기 전에, 우리의 시인 김현승 님과 함께 기도하고 싶은 계절이기도 합니다.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가을은 시인을 비롯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기도하고 싶은 계절인 동시에 오곡백과를 주신 분께 감사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태고적부터 동서양 어디든지 추수 감사의 잔치는 펼쳐졌습니다. 마을마다 집집마다 익어가는 열매를 보면서, 밭에는 무우와 배추가 김장을 위해 준비되고, 발걸음을 옮겨 동네 밖 들판으로 나오면 거기에 펼쳐진 무르익은 풍성한 수확을 바라볼 때, 너무나 자연스런 인류의 반응이 감사였을 것입니다.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국교회가 지키는 추수감사절은 우리나라의 수확의 절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전통적인 북아메리카의 휴일로 미국의 경우 11월 넷째 목요일에, 캐나다에서는 10월 둘째 월요일에 기념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가 서로 다른 것은 추수의 시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언제 지키는 것이 이상적일까요? 가장 쉬운 방법은 총회로 하여금 결정하고 지역교회들은 그대로 따라가면 됩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총회가 결정하는 것보다는 각 노회 단위나 개 교회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라도 생각합니다. 사실 농사짓는 지역에서는 계절에 맞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할 수 있지만, 울산을 비롯해서 월급을 받아서 사는 사람이 많다면 10월 중 하순 정도도 지역교회 당회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신학적인 이슈도 아닌데 총회로 돌리지 마시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면 어떨까요? 그래야 12월 성탄절을 맞아 대부분의 교회가 절기헌금을 하는 데 시간적 간격이 생기는 목회적인 유익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뿐만 아니라 ‘가을에는 감사하게 하소서’를 넘어서 ‘가을에는 생각하게 하소서’ 성경에 근거해서, 그리고 상식에 근거해서 생각하는 성도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매일 성경을 읽고 생각하는 동시에, ‘독서의 계절’ 가을에는 좋은 책들을 읽고 생각하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모임들이 울산에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정근두 울산교회 원로목사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