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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문화/이종인 목사와 이 달의 책

"청라언덕에 세워진 복음의 기지"

  대구의 몽마르트로 알려진 곳입니다. 대구 지하철 2호선, 서문시장역에서 내리면 곧바로 청라언덕길로 이어집니다. 대구에 복음이 전파된 초기 선교사들이 붉은 벽돌집을 짓고 머물렀던 복음의 기지입니다. 여러 해 전에 대구에 사시는 목사님의 안내로 약령시장에 자리 잡은 대구제일교회와 청라언덕에 고즈넉이 자리 잡은 선교사들이 머물렀던 공간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일제강점기로 접어드는 엄혹한 시절에 하나님은 이곳에 안의와(아담스), 부해리(브루엔), 배위량(베어드), 장인차(존슨)과 같은 선교사들을 보내셔서 비록 공간은 일본의 지배 아래 있었지만, 복음으로 영혼은 자유로운 하나님나라를 꿈꾸게 하셨습니다. 근대교육의 꿈이 계성학교와 신명여학교를 통해 시작되었고, 3.8운동이 이 학교들로부터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조국의 독립된 미래를 꿈꾸게 하였습니다. 

양신혜, 『아담스와 함께 걷는 청라언덕』 (안산 : 크리스천르네상스, 2024)

    저자 양신혜 교수님은 본인의 학교 선배님이자 대학원 선생님이기도 합니다. 본인보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1년 선배이면서, 백석대학원 조직신학 박사과정에 있을 때에 강의 교수님으로 한 학기 만났습니다. 이때의 만남 이후로 몸은 멀지만 따뜻한 지지와 격려의 관계를 유지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저자는 총신대학과 서강대에서 종교학을 전공했고, 독일 베를린 홈볼트 대학에서 칼빈의 성경의 권위와 해석으로 신학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대신대학과 칼빈대학에서 교회사를 가르쳤고, 현재는 총신대학 겸임교수와 교리교사 양육을 우한 ‘교리학교’를 통해 한국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본서는 안경말(자전거)을 타고 복음을 전했던 선교사들의 걸음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 「약령시장걷기」로 외항선교지였던 인천이나 부산과 달리 내륙선교의 거점으로 대구를 정하게 되는 전도여행의 과정을 그린 ‘영남제일관’과 해마다 봄과 가을에 대규모로 열리는 대구의 ‘약령시장’에 전개된 복음행전을 볼 수 있습니다. 선교사들을 통해서 전달된 문명으로 피아노를 옮기는 고단한 과정이나 사과개량으로 대구경북능금이 유명해진 기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구에 불어 닥친 1907년의 대부흥 운동은 평양의 장대현 교회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뽕나무 골목’에서는 산에서 모든 나무를 지게에 싣고 뽕나무 골목을 지나다 선교사의 얼굴에 상처를 입힌 사건으로 선교사들의 겸손과 사랑의 태도에 감복하여 변화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대구제일교회’는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변화는 조선사회를 지탱했던 양반과 상놈의 계급구조를 허물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 되는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모습을 다룹니다. ‘계산 성당’에서는 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많이 다른 천주교와 개신교회의 차이와 알력들을 다룹니다. 천주교는 개신교보다 먼저 조선 땅에 들어와 박해이 피를 이미 뿌렸고, 프랑스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선교사역을 전개 중이었고, 개신교 선교사들은 주로 북미지역에서 파송되었습니다. 천주교 선교사들이 권력과 힘을 이용해 천주교인들을 교정하기보다 옹호하는 정의롭지 못한 행위들을 비판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2부 「청라언덕 걷기」에서 ‘청라언덕’은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의 건강을 위해 쾌적한 분리공간의 필요 때문이었습니다. 대구에서 선교사역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을 3S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수시설이 없어 어디에서나 진동하는 고약한 냄새(smell)와 아궁이에서 연소되지 않은 생나무들로 인해 마을을 가득메우는 연기(smoke), 짖어대는 개와 여인네들의 다듬이질과 굿판에서 들려오는 굿하는 소리(sound)로 고통받았습니다. 소음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고, 전망이 트인 곳을 구입하여 주택과 정원, 병원과 학교를 세울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습니다. ‘계성중학교’에서 을사늑약(1905)으로 일본에 속박되어 가는 조선에 희망의 등불을 세우는 마음으로 계성학교가 설립되는 과정과 역사적 과업에 눈을 뜬 학생들의 저항운동을 차분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챔니스 주택’은 장인차 선교사를 통해 미국약방으로 시작해 근대 의료의 중심 동산병원이 세워지는 이야기입니다. 의료선교사의 치료는 질병치유를 넘어 전인격적 돌봄이었고, 복음전달의 목적을 성실히 수행하였습니다. 애락원(愛樂園)은 한센병 치료센터로 매독과 더불어 어린 스님환자까지 극진히 돌보고 치료하였습니다. 선교사들은 육체적 질병만을 치료하는 병원이 아니라 영혼을 돌보는 기독교나라를 꿈꾸었습니다. ‘스윗즈 주택’에서는 안위와의 선교기금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안의와선교사의 손과 발이 되었던 영혼의 파트너 조사 김재수는 통역사의 역할 뿐 아니라 복음의 배우는 학생으로 목회자로 성장하였고, 선교사 없이 홀로 순회전도를 다니며 영혼을 돌보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자립자치자전이라는 네비우스 선교정책을 안의와선교사도 인정했지만,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단, 은퇴할 즈음에 선교기금을 조성하여 복음사역을 지속적으로 지탱되어 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신명고등학교’는 대구 땅에서의 영성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복음에 목말라하는 한국 여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선교사 부인들의 몫이었습니다. 안의와 선교사 부인 넬리 딕과 장인차 선교사의 아내 이디스 파커, 부해 선교사의 부인 부마태의 사역이야기가 담겼습니다. 선교사 가정은 하나님의 법에 따라 살아가는 믿음의 가정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어린자녀들을 위한 주일학교와 사경회를 통해 여성들에게는 한글학습의 기회조차 부여되지 못했던 여건들이 개선되어 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도부인들이 등장했고, 복음을 학생들에게 성실하게 가르쳐 후세대를 양성해 나갔습니다. 의료선교사 존슨의 부인이 만들어 운영하던 바느질 반을 신명여자 소학교로 개편하여 1907년에 동산위에 설립하였습니다. 신명여학교는 대구 근대여성교육의 장이었고, 나라를 위해 거리로 나서는 근대 여성의 본이 되었습니다. ‘은혜의 정원’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이역만리 먼 곳에서 생명을 다해 헌신하며 살았던 선교사들과 가족들의 무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넬리 딕의 묘비명의 아름다운 시패가 가슴을 울렁이게 만듭니다. 

“그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잠들어 있을 뿐이다.”

She is not dead but sleepth.

  하나님만 바라보며 서울의 정동지역을 순례자로 걸음 했던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언더우드와 함께 걷는 정동』에 이어 「안경말 시리즈」두 번째 책으로 본서는 대구에 전파된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전편에서도 그러했던 저자의 소박하고 친절한 안내로 100년 전의 과거로 우리를 소환시킵니다. 치열했던 한국교회사 이야기가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는지 저자의 필력에 감사하게 됩니다. 흑백이지만 옛 시절의 사진들이 촘촘하게 담겨있어 그 시절을 보다 선명하게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복음사역과 치열하게 세워간 교회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말을 타다 낙마하여 다치고, 유산으로 자녀를 잃고, 질병으로 이른 때에 주님의 부름을 받음에도 생명 다해 수고한 이들의 땀에 고마움을 느끼게 합니다. 교회를 세워가되 성경에 기초하여 분명하게 세워간 그들의 수고에 고마움을 가집니다. 교인의 자격으로 최소 6개월 이상의 학습기간과 삶의 변화로, 조상숭배 금지와 정기적 예배참석, 성경 읽는 법을 배우는 일을 살피고 입교를 원하는 사람들의 신앙을 꼼꼼히 점검한 모습에서 우리 시대의 가벼워진 교회현실을 반성하게 만듭니다. 독서의 계절, 가을로 접어드는 10월에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