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계/교계일반

제자도_기독교의 생존 방식 <한국교회의 제자훈련에 대한 반성적 고찰과 대안2> “예수를 닮아가기”

예수를 닮아가기

 

  예수를 닮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가 오셔서 우리 인간을 위해서 행하신 가장 중요한 사역의 의미를 분명히 새기는 것과, 그가 처음부터 가르치셨던 가르침을 이해하고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전자를 “예수의 복음 위에 서기”라고 한다면, 후자는 “예수의 하나님나라를 살아내기”라고 할 수 있다. 제자훈련이 집중해야 할 내용은 바로 이 복음의 본질에 관련된 것이다.

  먼저 예수의 복음 위에 서는 것이 예수를 닮아가는 제자도의 출발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일의 핵심은 그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이라는 말은 다시 강조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만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속에서 회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엡 2:4)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더 이상 진노의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온전히 용납하여 주신 존재가 된다. 새로운 정체감(엡 2:4-5)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더 이상 자기가 주인이 되어 세상을 따라 살지 않고 부활의 능력을 힘입어, 선한 일을 행하며 살도록 부르심을 입는다. 새로운 사명감(엡 2:10)을 가지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홀로 살아왔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가족 안에 속한 새로운 작품이 되고, 새로운 소속감(엡 2:10, 11-22)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예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정체감, 새로운 사명감, 그리고 새로운 소속감을 가지게 된 이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이 놀라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엡 2:8-9)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시작이고 예수를 닮는 일의 첫 걸음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곧 복음의 기초 위에서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예수를 닮아간다.

  예수의 십자가에 감격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가르침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예수의 중심 가르침은 “하나님나라”이다. 이 하나님나라의 요체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이다. 그리스도인들은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자신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드러내길 원한다. 외형적으로 신앙생활에 할애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 뿐 아니라, 내면적으로 자신의 동기를 살피는 성찰에까지 나아가 예수를 닮아가는 일이 전 인격을 통해 일어난다. 결국 예수를 닮아가는 것은 실제적인 나의 삶의 터전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가정생활, 학교와 직장 생활, 더 나아가서 우리가 시민으로 살고 있는 사회, 경제, 정치, 문화적인 영역과 우리 모든 피조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생태계 속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나의 내면으로부터 시작해서 생태계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내가 예수를 닮을까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나라가 이미 임하여 하나님의 다스림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예수의 하나님나라를 믿는 사람들은 온전하게 임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살아간다.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따라 사는 이유는 그의 다스림이 이미 임하였다는 믿음, 곧 하나님나라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미 당도하였다는 믿음 때문이다. 비록 세상이 완전히 심판받고 회복되지 않았지만, 그래서 이미 임한 하나님나라는 세상과 함께 존재하지만, 머지않아 하나님나라가 완성될 것을 굳게 믿고, 인내를 가지고 소망한다. 

  만일 오늘날 한국교회의 제자훈련이 실패하고 있다면, 이 예수님의 가르침인 하나님 나라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가 복음과 구원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만, 하나님나라가 없는 복음만을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나라에 대한 가르침이 없는 복음은 감히 반쪽 짜리 복음이라고 부를 수 있고, 이는 필연적으로 복음의 왜곡으로 이어진다. 제자훈련이 실패하는 근본 원인은 방법이나 프로그램의 문제가 아니라 그 내용에 대한 무지와 무시에 있다.

  이렇게 예수를 닮아가는 것은 평생의 여정이다. 한 두달의 학습이나, 몇몇 책을 읽거나, 한 두 개의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런 것들이 예수를 닮아가는 일에 도움이 되겠지만, 예수를 닮아가는 것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예수를 닮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끝나지 않는, 영광스런 생애의 과업이다. 

  존 스토트는 그의 마지막 책, “제자도”에서 급진적 제자도의 8가지 특징을 들면서, 마지막 두 장은 “의존”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이야기한다. 나이 80이 넘어 이 책을 서술하면서, 그는 한 인생을 마감하는 과정 속에서도 여전히 예수를 닮아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예수를 닮는다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그의 사랑을 누리며 살면서(=복음의 기초 위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이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드러나게 하며, 온전한 회복을 기다리는 것(=하나님나라를 살아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도이며, 이를 위한 훈련이 제자훈련입니다”

  제자도나 제자훈련은 우리 평생, 나의 삶의 터전에서, 각각이 다른 조건을 가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힘입어, 그의 아들을 본받아 가는 우리 인생의 전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훈련을 주도하는 목회자나 지도자가 스스로 예수를 닮아가는 일을 멈추어버렸다면, 이미 그가 하는 제자훈련은 본질을 상실한 것이고, 이런 제자훈련 프로그램은 그 한계가 처음부터 노정된 것이다. 

  한국교회의 제자훈련의 실패의 원인 중 가장 큰 요인은 제자훈련을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여기고, 제자훈련자 스스로가 예수를 닮아가는 치열한 여정에서 자신을 제외시킨 데에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