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만한 바리새인의 기도에서 마귀의 전략이 보인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눅18:11)
나와 다른 사람들은 토색, 불의, 간음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그들은 또한 세리와 동급이다. 마귀들의 전략은 우리를 규정하고 나쁜 것과 묶어서 하나로 보는 것이다. 그렇게 마귀가 공격하면 꼼짝 못 한다. 왜냐하면 그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팩트다.
가장 잔인한 사람은 팩트로 공격하는 사람이다. “너는 거짓말 했쟎아”, “너는 지난번에 공부 열심히 한다고 해놓고는 당구장 갔쟎아”, “당신은 내가 출산할 때 회사에서 회식한다고 늦게 왔잖아.” 모두 맞는 말이다. 맞는 말로 공격하니깐 평생토록 기를 못 펴고 사는 것이다. 왜냐? 모든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내가 출산할 때 회사에서 회식가고 2차 노래방까지 갔는데 그게 사실이기 때문에 나는 영원토록 나쁜 놈이다.
마귀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그래서 너는 “나쁜 놈이야”, “구제불 능이야”, “뭐 네가 장로라고?”, “뭐 당신이 집사라고”....나쁜놈과 구제불능인 사람과 나를 묶어 버렸다. 대응할 힘이 없다. 왜냐하면 그게 팩트이기 때문이다.
탕자 형님은 팩트로 공격한다.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눅15:30) 할 말이 없다. 왜냐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랑은 상대로 하여금 변명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둔다. 그런데 조폭은 예, 아니오로만 대답해! 라고 한다. 법정에서도 네 아니오 라고 대답하라고 한다. 근자에는 청문회에서도 “네, 아니오”라고 만 하세요 한다. 탕자 형님의 그림자가 보인다.
“그 상황에 대해서 변명하거나 우리가 수정할 사항이 있으면 말씀해 보세요.”라고 해야 진정한 청문회다. 나쁜 바리새인의 기도는 그때 그곳에서만 있는데 아니다. 법정에서도, 청문회장에서도, 목사의 설교에서도....
모든 신학의 결론은
“사람은 소망이 없다.”
“하나님만 유일한 소망이시다”이다.
모든 기대와 소망을 사람에게서 끊으라. 시선을 주님께만 고정시켜라. 그러면 당신 주변의 모든 사람이 비로소 살아난다.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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