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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특별기고

서로 다른 길로 간 형제 “아그립바와 아리스도불로”

    “권력인가, 신앙의 계승인가”

  사도행전을 25장을 보면, 아그립바왕과 버니게가 총독 베스도와 바울을 심문하는 내용이 나온다. 로마의 총독이 버젓이 존재하는데 왕이 나온다? 어느 나라(지역)의 왕인지가 너무 궁금했다.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유물을 손질하듯 소중한 마음으로 정리해 봤다.

  사도행전 25장의 아그립바왕은 헤롯의 증손자로, ‘헤롯 아그립바 2세’라고 불린다. 2세가 있다면 1세는 누구인가? 그렇다, 헤롯 아그립바 2세의 아버지가 ‘헤롯 아그립바 1세’이다. 아그립바 1세는 사도행전 12장에 등장한다. 『(행 12:23) 헤롯(아그립바 1세)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아그립바 1세는 신약성서 이해의 변곡점이 되는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A.D 44년에 급성 맹장염으로 사망했으니 성경에서 아그립바1세(헤롯)가 벌레에 먹혀 죽었다는 기록과 일치한다. 아그립바 1세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실마리를 풀기 위해 그의 행적을 살펴보자. 

  아그립바 1세의 아버지인 아리스토불루스는 반역죄로 모함당해, 그의 아버지이자 아그립바 1세의 할아버지인 헤롯대왕에 의해 친형 알렉산더와 함께 처형되었다(BC 7년). 아리스토불루스를 모함한 이는 다름 아닌 그의 장모 살로메(헤롯대왕의 여동생)였다. 장모 살로메는 아리스토불루스의 어머니(미리암1세)도 ‘미리암이 헤롯대왕의 음식을 독약을 탔다’고 모함하여 죽게 했다(BC 29년). 즉 헤롯 아그립바 1세는 할아버지의 손에 아버지와 할머니를 잃고, 불우한 유년기를 보내야 했다.

 사랑했던 아들을 처형한 헤롯대왕은 손자들을 불쌍히 여겨 로마로 유학을 보냈다. 그(손자)들은 ①헤롯 아그립바 1세, ②헤롯 칼키스, ③아리스토불로, ④헤로디아이다.    

  아그립바 1세는 로마 생활 중, 칼리굴라가 티베리우스 황제를 비방하다 곤경에 처하자, 자기가 비방한 자라고 말하고, 칼리굴라를 대신하여 옥살이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그립바 1세와 칼리굴라는 친교를 다지게 되었고, 칼리굴라가 로마의 다음 황제가 되면서(37년), 아그립바 1세의 행운이 시작되었다. 황제 칼리굴라는 아그립바 1세를 즉시 석방하고, 빌립 2세의 사망(34년) 후 시리아 속주로 잠시 편입되었던, 갈릴리 북동부를 즉시 아그립바 1세에게 승계시켰다(37년). 그것도 분봉왕이 아닌 왕으로 승격시켰다. 아그립바 1세에게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인가?

 이 사건은 유대 왕을 꿈꾸던 헤롯 안티파스(안디바)와 헤로디아에게는 충격이었다. 안티파스는 여전히 분봉왕 신분이었고, 유대 왕이 되어보려고, 티베리우스 황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 디베랴(티베리우스)를 건설하는 등 많은 공을 들이고 있었다. 헤로디아도 야망을 위해 빌립 1세와 이혼하고 안티파스와 정략적인 결혼을 했고, 이를 비난하는 세례 요한을 참수한 잔인한 여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안티파스의 조카이자 헤로디아의 오빠인, 아그립바 1세가 갈릴리 북동부 지역의 왕으로 등극한 것이다.

  안티파스와 헤로디아는 자신들도 왕이 되고 싶은 욕심에 칼리굴라 황제를 찾아가 아그립바 1세를 모함하였으나, 오히려 그들은 아그립바 1세의 절친인 칼리굴라 황제에 의해 프랑스 리옹에 유배당했다. 두 사람의 불의한 욕망은 결국 그들의 인생을 비참하게 끝나게 했다.

  정리하면, 아그립바 1세는 갈릴리 동북쪽을 37년에 승계받고, 39년에는 안티파스 분봉왕의 유배로 갈릴리 지역을 승계받았다. 게다가 칼리굴라(37-41)의 계승자인 클라우디우스(41-54) 황제는 41년에 재임하면서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까지 아그립바 1세에게 승계시켰다. 2년마다 승계를 받은 아그립바 1세는 단숨에 유대 전역을 통치하는 왕이 되었다. 이 또한 아그립바 1세에게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인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권력을 잡는 데 사용하며 하나님의 뜻과 역행하다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형_아그립바”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아그립바 1세의 교만은 사도행전 12장 21-22절에서 읽을 수 있다. 『(행 12:21,22) 헤롯(아그립바 1세)이 연설하니, 백성들이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또한 아그립바 1세는 제자 야고보를 칼로 죽인 장본인이다(행 12:2). 교만한 아그립바 1세는 하나님의 징계로 유대 통치 3년 만에 급사하여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게 된다(44년). 아그립바 1세의 사망 당시, 아들 아그립바 2세의 나이는 겨우 17세에 불과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아그립바 2세에게 왕위를 계승시키려 했으나, 로마 원로원의 반대로 로마는 다시 총독을 파견하여 유대를 다스리게 되었다. 그래서 바울 때 총독이 벨릭스(52-60)와 베스도(60-62)였다.

  아그립바 1세의 자녀들도 모두 로마 유학파였다. 그들은 ①아그립바 2세, ②버니게, ③미리암네, ④드루실라이다. 버니게는 삼촌 헤롯 칼키스(갈릴리 북동쪽 분봉왕)와 결혼했는데, 분봉왕 칼키스가 48년에 사망했고, 로마는 아그립바 2세에게 그 지역을 승계시켰다. 아그립바 2세는 홀로 된 여동생 버니게를 오누이 관계를 넘어설 정도로 각별하게 챙겼다. 그러므로 아그립바 2세와 버니게가 함께 베스도 총독을 방문하여 사도 바울을 심문하는 자리에 있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드루실라는 로마 출신 유대 총독 벨릭스의 아내가 되었다. 성경은 『(행 24:24) 벨릭스가 그 아내 유다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이라 말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드루실라가 바로 아그립바 2세의 여동생 드루실라다.

  끝으로 한가지 살펴볼 것은 아그립바 1세의 형제인 아리스도불로이다. 유대 왕이었던 아그립바 1세와 아리스토불로는 형제지간으로, 같이 로마에서 유학했다. 형 아그립바 1세는 세속의 권력을 쫓아 유대로 돌아와 왕이 되었다가 급사했고, 동생 아리스도불로는 하나님을 만나 로마교회의 평신도로 남은 것으로 본다. 

  “하나님을 만나 세상권력을 버리고 예수님과 함께 가는 길을 택한 동생_아리스도불로”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롬16:10) 

  바울은 60년경 기록한 로마서에서 그를 언급한다. 현대어 성경의 표현이 더 선명하다. 『(롬 16:10) 주님을 위해 숱한 고생을 겪은 아벨레와 아리스도불로의 가족들에게도 문안해 주십시오』 개역 성경에는 ‘숱한 고생을 겪은’을 ‘인정함을 받은’으로 표현하고 있다. 필자가 느끼는 행간의 의미는, ‘아리스도불로의 가족들’이라는 내용이다. 권력 승계받는 대신 신앙을 계승하고자 했던 아리스도불로의 결단과 그것을 지지하고 응원한 아내와 자녀들. 가정과 가족은 신앙의 그루터기와 같다. 오늘날의 개인주의와 물질주의에 빠진 기성 세대와 이기주의와 쾌락주의로 달려가는 자녀 세대가 연상된다. 아그립바와 아리스토불로를 묵상하면서, 믿음의 가장으로서, 아리스토불로가 걸어간 신앙의 길에 경외감을 갖는다. 무명용사의 무위가 나라를 지켰듯이, 무명용사의 신앙이 하나님 나라를 지킬 것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