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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특별기고

믿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그것은 실체가 없다. 평생을 달려가며 잡으려 발버둥 쳐도 오히려 신기루처럼 사라지기 일쑤다. 인류 역사이래 단 한 사람도 뒤따라 가보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삶에 있어 너무나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숱한 날 속에 자신을 다그치며 절대고독 속에서 손을 맞잡고 무릎을 꿇었어도 명확한 쾌를 얻지 못한 이가 어쩜 더 많을지도 모른다. 

  어떤 것보다 더 추상적이다. 자아와 마주 보고 살아도 그 깊이를 다 헤아릴 수 없다. 다독이며 추슬러도 금방 토라지고 뛰쳐나가는 날이 더 많다. 발도 없지만, 저 무한한 속도를 인간의 가속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다. 어느 날 마침내 도달했다 싶으면 가차 없이 더 높은 곳에 가 있는 그것.

  깊은 통찰과 내면의 성숙으로서야 무너지지 않는 거대하고 견고한 장성 같다. 바라볼수록 우러를수록 목관 악기의 그윽한 울림처럼 영원의 내면을 지녔다고나 할까. 밀면 밀수록 제 힘은 더욱 반비례해서 쉽사리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이쪽이 열렸다 싶어 밀치면, 어느새 저쪽으로 달아나고 없는 천하의 요술쟁이다. 

  매우 감각적이고 뛰어난 지능을 가진 게 분명하다. 우주적 영원불멸의 생명체를 가졌다. 아무리 두들겨도 부서지지 않는다. 그럴수록 고무공처럼 말랑하고 쫀득하며 부드럽게 우리를 현혹한다. 참으로 버릴 수도, 그렇다고 못 본 척 내 칠 수도 없는 아이러니다. 이것은 옮음의 보편성을 지향하며 신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관계 설정에 위치하고 있다. 부정할 수 없는 참 진리를 그대로 노출하며 자신의 영역이 확고부동하다. 누구에게나 각자 삶의 방식이 있고 그 가치를 인정한다. 우리는 보이는 것에 이미 익숙해 있어서 안 보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하여, 날마다 보이지 않는 그것에 눈을 치켜뜨고 더 간절히 찾아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린 날, 새벽 종소리에 억지로 눈을 부비며 좁은 밭둑길을 걸어 예배당으로 갔다. 별똥별이 긴 꼬리를 감추며 떨어질 때 그윽하고 울컥했던 기억이 어찌나 선명한지. 다 돌아간 텅 빈 바닥 맨 뒷자리에 앉아 창문으로 쏟아지던 햇살을 맞으며 울었다. 마치 계시처럼 가슴팍으로 오지게 꽂히던 전이를 품고 예까지 왔다. 그것이 그의 본체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성장하면 할수록 더 모호하고 애매했다. 내 이성으로는 다함 없는 가치를 지녔지만, 관계 설정을 다시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어쩌면 꿈과 욕망, 아니다, 솔직히 사후의 보험쯤으로 욕심의 주머니에 쟁여둔 것은 아니었을까. 차라리 몰랐으면 몰라도 이미 동행의 50여 년이면 친할 법도 하련만…. 왜 이다지도 멀고도 아득한가. 손을 뻗어 닿으면 한없이 따뜻하고 온화하다가도 때론 냉혹하리만치 두려울 때가 있다. 모든 이유가 내 탓이련만 그걸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하루아침에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기분으로 씁쓸할 때가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돌아서자. 그래, 이게 무엇이라고 이리도 자신을 옭아 옥죄었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덮어버리고 새길을 찾아 나서자며 떠나도 보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 죄책감에 몸서리치고 뒤죽박죽인 채 일상의 상심이 더 분노로 가득 차 올라왔다.

  물론, 그는 최상의 가치를 지닌 것임에 틀림없다. 부정할 수 없는 매력과 아름다운 가치를 품고 있다. 세상이 가지지 못한 무한한 향기를 소유한 채 말이다. 그래서 많은 이가 떠났다가도 잊을 수 없어 돌아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불변의 진리임을 알기에 뿌리치지 못한다. 받아들이는 건 자유의 몫이지만, 한 번 맛보면 감미로움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먼 타국으로 여행 중에 ‘우쉬굴리’라는 마을에 있는 컴컴한 기도처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이 있다. 거기서 한 줄기 빛이 희미하게 새어 들어오는 제단 앞에서 오래도록 흐느껴 우는 한 여인을 보았다. 어떤 사연을 가졌을까. 무슨 간절함이 있어 저토록 제 소리를 거두며 울고 있을까. 만감이 교차했다. 사람이라면 간절한 마음의 지향점이 도달할 곳은 같은 것임을 희미하게 알 것도 같았다.

  옳고 그름의 두 가치가 상충한다면 조금은 옳다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여 보고 싶다. 확신이 진실임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진리임을 수긍하게 된다. 그것을 찾아 평생을 달려가도 아깝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망설임도 두려움도 사치라고 단언하며 조용히 무릎을 꿇는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8:32)

 

이서원 집사(우정교회,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