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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교계일반

“촌철 강단_느헤미야 4장15~23절”

지광선 목사(내일교회 담임)

  아닥사스다 왕의 도움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느헤미야는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기에 심혈을 기울이며 성벽을 52일 만에 수축하는 일을 마쳤다. 이때 호른 사람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가  성벽을 재건을 방해하고 성전이 건축되는 것을 막고자 느헤미야를 겁박하며 예루살렘에 쳐들어올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그 계획을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은혜로 미리 알아차리게 된다.

  그때 느헤미야는 더 이상의 성전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백성들의 절반은 일하게 하고 나머지 절반은 산발랏과 도비야로부터 성전을 지키기 위해 칼을 차거나 창을 잡거나 방패를 들게 하고 짐 나르는 자들에게는 한 손에 병기를 잡게 하기도 하고 건축하는 자들은 허리에 칼을 차게 하고 나팔수를 곁에 두고 심지어는 공사기간 내내 동이 틀 때부터 별이 뜰 때까지 창을 잡게 했으며 옷을 벗지도 않았으며 물을 길으러 가는 사람들까지 무장을 하게 하는 초긴장 상태의 방어 전략을 유지하게 한다. 이는 무너진 성전을 지키고자 했던 느헤미야의 고육지책이었으며 목숨을 건 투쟁이었다. 이는 오늘날로 말하면 세상의 도전으로부터 교회를 지키고자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교회의 강단은 힘이 있어야 한다. 

  원래는 “촌철살인” 이라는 사자성어의 뜻은 “아주 작은 쇠부치 한 조각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로 짧은 말 한 마디로 사람을 제압하거나 감동시키는 말을 의미한다. 작금의 한국교회의 강단은 언제부터인가 기복적이고 사람들에게 우호적이며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모호한 말씀을 성도들의 기호에 맞게 전하는 강단이 되어버린 것이 사실이다. 목회자들이 오직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설교만 골라서 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4:1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렘23:29) 
  “너희는 듣든지 아니 듣든지 내 말대로 고할지니라”(겔2:7)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한 바 있다. 즉 예리한 칼이 되고 방망이가 되는 말씀을 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의 강단에서 쏟아지는 설교들은 그렇지않다. 세상에서 제일 나쁜 설교가 어떤 설교일까? 그것은 바로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설교, 모든 성도가 다 듣기에 좋은 말씀, 누가 들어도 부담 없는 설교라 생각한다. 다윗을 책망했던 나단, 아합왕 앞에서 당당했던 엘리야, 거짓 선지자들을 고발했던 예레미야, 헤롯 왕의 부도덕함을 질타했던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 했던 세례요한과 같은 강단 있는 촌철살인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이 시대의 강단이 촌철강단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1) 극히 좌경화 되어가고 있는 이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거침없이 선포되어야 하고 2) 지금 이 시대는 유물론과 무신론이 팽배해져 있고,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한 절대진리를 거부하며, 인권 프레임으로 성혁명 성문화를 일반화시키려는 이론과 사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도전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인 아픔과 위기앞에서 교회 강단은 예리한 칼날과 같은 말씀들로 증거 되어야 하며 3) 진리앞에서 벙어리가 되어가는 설교자들의 침묵이 강단을 어둡게 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침묵은 금’이라는 말이 있지만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니라”(잠25:11)는 말씀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강단에서 목회자들이 해야 할 말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할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진짜 침묵이라는 사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혹자는 말하기를 “침묵은 악의 편이다”라는 말을 한 바 있다. 우리가 서 있는 이 강단은 두 강단 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는 ‘산 강단’이고 또 다른 강단은 ‘죽은 강단’ 이다. 

사도 바울은 말한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1:10)

  사람을 기쁘게 하는 강단은 이미 죽은 강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서는 강단이 아니다. 우리가 서는 그 강단이 촌철강단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