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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선교와 전도

빈 들을 채우는 안목(眼目)

   친구가 가게를 연지 1년여가 지났다. 그동안 육체적 피로와 손님에 대한 여러 가지 일에 힘들었지만 용케 잘하고 있다. 그가 만들어낸 여러 가지 음식을 보면 가격이 헐하다는 감이 없지 않다. 늘 아침마다 멀리 있는 농산물시장에 가서 직접 과일을 고르거나 좋은 식자재를 사 오는 정성이 대단하다. 손님에게도 문 앞까지 나가서 배웅한다. 이제 차츰 단골손님도 생겨서 고객의 발걸음이 이어지지만, 매일 손익분기점을 넘기가 빠듯하단다. 

  사실이지 장사는 이문을 쫓아가는 일이다. 다 퍼주고 무엇을 남기겠나. 그런데도 아직은 제 뜻을 굽히지 않을 태세다. 노란 망고의 속살처럼 부드러운 심성과, 말차의 깊은 맛이 어울려 하나의 하모니를 이루는 음식들을 보며 가게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세상에 손해 보는 장사가 어딨나” “남는 게 있으니 하겠지.” 흔히들 하는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앞으로 벌어 뒤로 새는 것 같다. 부자 되기는 거리가 먼 소박한 심성에서 오는 여유로움에 스스로 위안으로 삼는 건 아닌지 두고 볼 일이다.

  조나라에 여불위라는 장사꾼이 있었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싸게 사들여 비싸게 되팔아 집에 천금을 쌓아 둘 만큼 부자였다. 어느 날 그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농사를 지으면 몇 배를 남길 수 있습니까?” “열 배를 남길 수 있겠지.” “보석상을 하면 몇 배를 남길 수 있을까요?” “백 배는 남길 수 있다.” “그럼, 사람에게 투자하면 몇 배를 남길 수 있습니까?” “그건 차마 계산이 안 되는구나!” 그길로 여불위는 사람을 찾아 나섰고 마침내 그는 훗날 진시황제의 중부(仲父)가 되는 권력의 최정점에 오르게 되었다. 물론 거기까지 가는 길에는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겠지만, 그가 사람을 알아보고 전 재산을 쏟아부은 안목만은 최고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손해 보는 장사에 물 붓듯이 투자를 계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오랜 시간을 두고 끝까지 믿고 가는 일 또한 어지간한 의지와 믿음 없이는 어렵다. 돈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무너지기가 쉽다. 목표와 비전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는 매우 중요한 가치다. 친구는 말했다. 순이익이 얼마가 되더라도 한 푼도 사적으로 쓰지 않고 조지아 내에 있는 아제르바이잔 민족의 어린 영혼들과 그곳에서 힘들게 사역하고 있는 O형제를 위해 보내겠다고.

  손해는 내 것이 더 나가서 비워지는 상태를 말한다. 사람들은 이익이 있는 곳으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남들보다 더 벌려고 하고, 남들보다 더 높은 곳을 차지하려고 한다. 우리가 욕심부리지 않아도 될만한 곳에서도 어떤 이들은 더욱 기세를 올리며 달려들거나 더 쌓으려고 발버둥 치며 아우성이다.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습성이 이미 우리 속에 깊이 내재 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너무 지나치게 원가를 따지고 원칙에 기인하다 보면 자칫 놓치기 쉬운 건 사람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벗어나 먼 미래를 향한 작고 소박한 디딤돌 하나 놓는 마음을 가지면 얼마나 좋으랴.

  내 친구를 보며 비움으로써 채워지는 이익이 여기에 있음을 알았다. 배달 기사가 오면 단 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시원한 음료를 내어 대접한다. 식사 시간이 훌쩍 넘어 땀으로 얼룩진 젊은 청년 기사가 오면 빵 하나라도 내어주며 그 자리에서 꼭 먹고 가게 한다. 이웃 사랑이 멀리 있는 게 아니다. 힘겨운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의 의식을 친구는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금전적으로는 힘겹지만, 베풀고 나누는 달란트를 우리의 상식과 이해 기준으로는 측량하기 어렵겠다. 웃으며 그는 말했다. 

변방의 2,170m 산봉우리의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교회, 저 먼 땅 조지아(Georgia)에 아제르바이잔 민족을 위한 예배당이 세워지길 꿈꾸며 (사진=이서원)

“저 먼 타국에 십자가의 불빛이 타오르는 날을 기대하면 마냥 즐겁고 설렌다.”라고       

  저 황량한 광야의 빈 들에 무슨 꽃이 피고 기적이 일어나겠냐. 모두가 고개 흔들고 무모한 짓이라고 말릴 때, 누군가는 물길을 내고 헌신하여 황무지를 옥토로 바꾸는 일이 기적이 아니라 친구의 상식임을 나는 알고 있다. 모두가 동쪽으로 갈 때, 단 한 사람이 서쪽으로 향한다고 해서 누가 삿대질할 수 있으랴. 그곳에 세상이 품지 못한 비전이 있다면 결단코 멈추지 마라. 친구여!       

이서원 시인(우정교회 집사)

  

  옥동에 위치한 카페 위앤씨는 선교사 파송을 목적으로 세워졌다. 현재 조지아, 파키스탄, 북인도에 선교사를 파송, 후원하고 있으며, 먼 땅 조지아(Georgia)에 지상교회 건축을 위해 땅 매입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 보리”라는 선교사명이 카페의 비전이다.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