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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문화/이종인 목사와 이 달의 책

개인주의 시대 친밀한 관계를 고민하다.

데일 S. 큐엔,  『i세계의 섹스를 넘어서』 장혜영 역(서울:새물결플러스,2022)

  우리는 성혁명 이후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1960년대 베트남 반전운동을 했던 젊은이들을 주축으로 해서 평화운동과 함께 성적 자유에 대한 강렬한 운동이 들불처럼 미국 사회에 번져갔습니다. 전통적으로 가족이 출산과 양육을 위한 이상적인 제도라는 생각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지만, 성혁명 이후 결혼이 성관계에서 가지는 독점적 지위가 상실되고 말았습니다. 성관계를 결정짓는 것은 더 이상 언약(covenant)이 아니라 동의(consent)가 되었습니다. 많은 남여가 결혼대신 동거를 선택하고 있고, 성적 관계를 위한 구속이나 울타리로서의 결혼의 의미도 퇴색되고 이혼도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되어버렸습니다.

“성혁명 이후 결혼이 성관계에서 가지는 독점적 지위가 상실되고 말았다.”

  개인주의 시대, i세계라고 부를 수 있는 성혁명 이후의 젊은 세대들은 이혼과 재혼에 대한 법적 제한이 사라지면서 가족의 본질은 심각하게 변화했습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로 국한되었던 성관계의 도덕적 제한이 없어지면서 성도덕에 있어 극적인 해체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2006년에 40%에 달하는 아이들이 결혼하지 않는 부모 사이에 태어났고, 영국의 경우 2008년 사회태도조사에서 66%의 사람들이 결혼과 동거간의 사회적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비혼률의 증가와 0.6명이라는 출산율 저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실정입니다. 미국과 유럽뿐 아니라 대한민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젊은이들의 성적태도 역시 탈근대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고, i세대에 속해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자기행복을 위해 무엇이든 자유롭게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 요지.”

  i세계의 세 가지 금기사항이 있습니다. 첫째, 누구도 다른 사람이 행하는 삶의 선택이나 행위를 비판할 수 없다는 것. 둘째, 누구도 다른 사람들을 강제하거나 해를 끼치는 방식으로 행동할 수 없으며, 셋째, 누구도 상대방의 동의 없이 그 사람과 성관계를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자기행복을 위해 무엇이든 자유롭게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전통적인 도덕이나 규례는 지나간 옛것이 되었으며,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것은 i세계의 적(敵)으로 간주합니다. 

  저자 테일 S. 큐엔은 내슈아 임마누엘 언약교회를 섬기고 있는 목사이자, 뉴햄프셔주에 있는 성 안셀무스 대학에서 정치학을 강의하는 교수입니다. 본서를 통해 사회와 국가의 기초가 되는 가정과 인간관계, 무엇보다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시대적 변화를 탐색하고 있습니다. 그는 본서에서 인식론의 역사를 고찰하면서 고대와 중세, 근대까지 수천 년간 변함없이 이어져 온 전통적 세계를 t세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t세계에서 빚어진 가정과 사회, 국가단위의 질서 속에서 빚어진 어두운 면들, 계급과 차별, 공동체 안에서 포기되어 했던 개인적 자유에 대해 저항하고, 전통도덕에서 규정하는 성(性)을 거절하는 성혁명 이후의 후기근대세계를 i세계로 명명합니다. 

  흄의 관찰은 계시와 이성의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정의와 선, 도덕은 이성이나 과학으로 검증될 수 없기에 불가지론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현대는 니체의 결론을 수용하여 인간의 삶과 관계의 의미에 대한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설명을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인하게 되었습니다. 남는 것은 결국 주관적인 자기결정, 자기정체성을 스스로 결정하는 ‘권력에의 의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벤담의 행복주의와 밀의 공리주의에서 도덕적 행위는 즐거움을 최대화하고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교리를 제시합니다. i세계는 세 가지 자유를 차지하려고 분투합니다. ‘자연으로부터의 자유!’, ‘권위로부터의 자유!’, ‘필요로부터의 자유!’

“i세계는 전통적 관계에서 누리던 안전과 보호,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i세계에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전의 t세계에서 빈번하게 일어났던 억압과 차별, 계급주의를 극복하고 개인에 대한 존중을 이끌어낸 점은 중요한 공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i세계는 전통적인 관계인 가정과 공동체에서 제공할 수 있는 안전과 보호, 책임과 더불어 발생하는 풍성한 의미들을 상실하게 만들었습니다. 필연적으로 외로움과 고독의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성적 자유라는 특권을 누리며 개인의 취향에 맞는 여러 파트너들을 찾을 수 있겠으나 t세계에서 언약관계 속에서 누렸던 안정감은 얻지 못할 것입니다. 성에 대한 혁명적 자유가 사랑과 친밀감을 약속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은 친밀감을 위한 도구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i세계는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매력적인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감각적 쾌락과 개인적 선택의 자유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는 깊이 있고 만족스러운 실존을 제공하지는 못합니다. 저자는 I세계 대신 r세계, 즉 관계적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r세계야 말로 우리의 영혼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친밀하게 사랑할 능력을 개발함으로써 가장 큰 성취가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r세계는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과 이웃에게 자신을 열 때 비로소 사랑에 닿을 수 있고, i세계의 양적 추구에서 얻지 못하는 질적 친밀감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i세계의 자기중심은 자기정체성에 대한 혼동과 삶의 무의미속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자기 쾌락을 위한 자유는 참된 자유라기보다 욕망의 노예가 되는 길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한 자유가 진실 된 자유이며, 하나님의 형상이며 몸으로 존재하는 교회와 사회공동체 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뚜렷하게 보게 되고, 충일한 삶의 의미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길이라 말합니다. 

"자기쾌락의 늪에 빠진 세대에 위로와 관계의 지혜를 제시하는 빛나는 책”

  본서는 목사로서의 감수성과 영적 통찰, 정치학 교수로서 세계역사와 철학, 세계관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습니다. t세계, i세계 , r세계로의 재치 있는 구별은 혼미하게 느껴졌던 우리시대의 사유와 정신을 과거전통의 방식과 비교할 수 있게 하고, 말씀에서 멀어져 신음하는 우리세대의 고통을 잘 드러냅니다. 우리세대가 겪고 있는 성적 방황과 고통에서 벗어나 인간의 가장 깊은 갈망을 만족케 하시는 유일한 위로자 되시는 하나님께로 이끄는 길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자기쾌락의 늪에 빠진 지독하게 외로운 세대에서 벗어나 공동체적 위로와 관계의 지혜를 제시하는 빛나는 책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