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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교계일반

하나님나라와 복음의 이혼을 넘어서서4 <하나님 나라가 복음이 되는 이유>

김형국 목사_하나님나라복음DNA 대표목사, 신학박사

 

3. 하나님나라와 복음

가) 하나님나라가 복음이 되는 이유

  하나님나라의 복음(눅 4:43; 16:16) 또는 천국 복음 (마 4:23; 9:35; 24:14[비교, 막 13:10 복음])이라는 말은 실제로 예수께서 쓰신 표현이다. 예수의 중심사상이 축약되었다고 볼 수 있는 막 1:15에서도 하나님나라와 복음이 함께 나타난다. 하나님나라와 복음은 예수에게 있어서, 또한 초대 교회에 있어서 불가분의 메시지였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하나님나라가 복음이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구약 전체에서 “주의 날”, “그 날”, 또는 “그 때”에 일어나는 가장 두드러진 일은 심판이다(예를 들어 사 13:9). 하나님나라가 도래하게 되었을 때, 이 도래를 이끌고 오실 메시야, 또는 주의 종이 나타나실 때, 악인들은 정죄를 받고, 열방들, 특히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 하였던 나라들은 심판을 받는다. 하나님나라의 소식은 사실 대부분이 사람들과 민족에게 복음이 아니라, 심판의 메시지이다. 그런데 이 하나님나라의 메시지를 심판이 아니라 복음이라고 선포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면 심판을 면하고,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선포했다(막 1:15; 마 3:3; 눅 5:32; 13:5). 이 회개는 단순히 죄를 자백하고 결단을 하는 것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사복음서가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예수의 죽으심의 의미를 받아들일 때 유효한 것이다. 

  예수 자신의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함이라는 설명(마 20:28; 막 10:45), 하나님 나라 비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한 알의 씨앗이 떨어져 죽는 것에 대한 강조(마 13장), 예수의 살과 피에 대한 마지막 밤의 가르침(마 26:26-30; 막 14:22-26; 눅 22:15-20), 사도 요한이 증언한 영원한 양식이 되는 예수의 살과 피에 대한 예수의 설교(요 6장) 등은 예수의 죽음의 의미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 예수의 죽음, 십자가에서 나타난 그의 사랑이 하나님나라가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는 복음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심판 아래 있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받아들이고 의지하지 않으면, 그들은 “이미 심판을 받은 것”(요 3:18-19)이 된다. 하나님나라의 소식이 모든 사람에게 심판의 메시지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복음이 되는 것이다.

나) 이방인들을 향한 보편적인 복음

  구약의 전통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유대인들에게 집중하여 사역하셨던 예수와 그의 청중들은 인격적인 하나님의 다스림, 회개와 메시야의 나라에 들어감 등이 자연스러운 개념이었다. 그래서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이 유대인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에는 큰 문화적 장벽이 없었을 것이다. 다만 예수가 보여준 메시야상이 그들이 기다리던 모양의 정치적 메시야가 아니었던 것이 문제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난 이후에야, 제자들은 구약의 메시야 예언과 관련된 말씀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했고, 이미 임한 하나님나라의 소식이 그들에게 복음이 되어 회심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그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방인들의 경우는 이와 달랐다. 이들에게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설명은 쉽지 않았다. 초대교회가 처음에는 고넬료와 같이 유대교에 익숙한 이 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유대인의 회당을 사역의 근거지로 삼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행13:5, 14; 14:1; 17:1; 18:4; 19:8).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유대교적 배경이 전혀 없는 사람들(행 17:16-34; 24:10-24; 26:1-32; 28:31)과 지역에도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한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나라 사상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이를 비유대교적 또는 헬라적 상황에서도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표현들을 사용하여 가르치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가 구원을 설명하기 위해서 가져온 다양한 신학적 용어는 하나님나라가 어떻게 복음이 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바울은 물론 속죄(propitiation)와 같이 유대교적인 배경에서 온 개념도 사용하였지만, (바울은) 비유대인들에게 익숙한 다양한 이미지와 개념을 통해서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설명한다. 

  법정 이미지에서 의롭게 됨(justification), 노예 시장 의 이미지 구속(redemption), 로마 시대의 풍습에서 양자 됨(adoption), 일반적인 관계에서 사용되는 화목(reconciliation) 등을 사용하여, 비유대인들에게 예수가 가르친 하나님나라를 설명한 것이다. 이러한 개념들을 통해서 사도 바울은 어떻게 죄가 많은, 정죄 받은, 죄의 노예로 팔려 간, 고아와 같았던, 깨어진 관계를 가졌던 사람들, 즉, 죄로 인해 곤경에 빠진 보편적 인류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설명하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속죄, 의롭게 됨, 구속, 양자됨, 화목 등의 다양한 단어로 묘사되는 구원의 실제를 사도바울은 삼중의 시제로 설명하고 있다. 구원을 이미 받은 실체로 설명(엡 2:8; 딛 3:5)하기도 하는 바울은 구원이 아직 이르지 않은 미래에 받을 것이라는 소망을 피력 하기도 했고(딤후 4:18; 롬 10:13; 고전 3:15), 더 나아가 현재 구원이 ‘이루어지고 있다’거나 ‘이루어나가라’는 현재형의 구원도 표현한다(고전 1:18; 빌 2:12). 

  이는 혹자들이 주장하듯 사도 바울이 일관되지 못한 가르침을 펼치고 있다기 보다는, 그가 하나님나라의 종말론적 이중 구조의 틀 속에서 구원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미 임한 하나님나라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고, 그들은 앞으로 올 온전한 하나님나라를 대망하기에 마지막에 나타나기로 한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나라 백성은 이 세대 속에 살면서 오는 세대를 기다리며 현재의 삶 속에서 구원을 이루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과거, 현재, 미래의 세 가지 시제를 통해 하나님나라를 설명하는 모습은 바울의 서신서에서는 여기저기에서 흩어져 나타나지만, 사도 베드로의 경우에는 그의 첫 번째 서신 첫째 장에서 이 세 가지 시제를 모두 표현하고 있다(1:3, 5, 9). 

  이렇게 예수님의 하나님나라 가르침에 기초한 구원에 대한 이해는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보편적인 것이었으며, 신약의 저자들 중 가장 많은 저작을 남긴 사도 바울은 예수가 가져온 하나님나라의 메시지가 어떻게 복음이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을 이방인 세계 속에서의 그의 사명으로 여기며 사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