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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세상사는 이야기

"할머니 주지 목사가 아니라 새끼 목사입니다."

 

  사람들은 추억을 먹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추억이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이러한 추억들을 공유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서로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해 주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다. 특히 추억의 순간을 열심히 기억해 내며 행복한 얼굴로 신나게 설명하는 것을 듣는 것도 즐겁고, 자신의 소중한 추억을 나누는 것도 큰 행복이다.

  이런 측면에서 목회하는 목사들은 소중한 추억들을 나누는 시간이 있다. 바로 심방이다. 간혹 성도들이 심방은 목사나 교역자가 성도의 가정을 방문해서 예배를 드리거나 기도하면서 복을 빌어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가정을 오픈해서 예배를 드리고, 음식을 대접하기도 한다. 어떤 측면에서는 한국교회의 좋은 전통이다. 

  하지만 심방의 참된 목적은 교역자가 성도들의 가정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복을 빌어 주고, 식사하는 것보다 더 우선하는 것은 이 시간을 통해 그 가정과 성도의 영적인 형편을 살피는 데 있다.(행 20:28) 성도들의 영적 형편을 잘 살펴 목양(벧전 5:2) 하는 데 활용한다. 또 영적인 형편을 살펴 혹시 교리와 신앙생활의 잘못된 부분이 드러나면 교정해 주기도 하고, 성도들이 바른 믿음으로 주안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해 주는 시간이 되기에(딛 1:9) 영적인 형편을 잘 살피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데 있다. (엡 4:12)  

  심방하면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한 추억이 생각난다. 90년도 말,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있는 “일산 00 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할 때이다. 필자가 섬겼던 교회는 그 당시 사이즈가 있는 큰 교회라 1교구에서 9교구까지 있었다. 여느 주일에 우리 교구에 한 가정이 등록하여서 새 가족 심방을 갔다.

  우리는 새 가족이 사는 아파트에 도착해서 초인종을 눌렸다. ‘딩동딩동’ ‘누구세요’ ‘교회에서 심방 왔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에 현관문이 열렸다. 나는 젊은 부부가 등록하였기에 그들이 심방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연세가 지긋하신 한 할머니가 문을 열어 주셨다. 직감적으로 ‘시어머니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밝은 모습으로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할머니” 문을 열어 주신 할머니도 활짝 웃으시면서 두 손을 합장하며 우리를 맞아주셨다. 우리는 집으로 들어가 거실에 앉으면서 다시 한번 정중하게 할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저는 이 지역을 담당하는 목사입니다. 그리고 이분은 전도사님이십니다.” 인사를 받으신 할머니는 입술을 지그시 깨무시다가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젊으신 분이 큰 교회 주지 목사님이시군요. 참으로 훌륭합니다. “할머니의 “주지 목사”라는 말에 그만 호탕하게 한바탕 웃었다. 

  나는 할머니께 대답했다. “할머니 저는 주지 목사가 아니고요. 담임목사를 도와주는 새끼 목사(부목사)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할머니의 웃음보가 터졌다. 초면이었지만 서로가 한참을 웃고, 화기애애한 시간이 지났다. 

  나는 대화를 하면서 왜 할머니가 ‘주지 목사’라는 호칭을 사용하였는지 그 배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동안 할머니는 오랫동안 절에 다니신 불교 신자였다. 그래서 인사를 할 때 자연스럽게 합장하고, 또 ‘주지’라는 호칭을 사용하신 것이다. 할머니가 예수를 믿게 된 동기는 며느리 삶 때문이다. 

  예수 믿는 며느리가 집에 들어올 때는 종교 문제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지혜로운 며느리 덕분에 기독교로 개종하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할머니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예수 믿는 며느리를 칭찬하셨는데 이 이야기를 듣는 내내 얼마나 마음이 흐뭇하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또한 자신도 예수를 믿어보니 마음과 육신이 평안하고 행복했다고 말씀하셨다.

  이 가정은 예수님을 잘 믿는 며느리가 넝쿨째 굴러들어 와 항상 웃음꽃이 활짝 피우고, 사랑이 넘치는 복된 가정을 만들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잘 흘려보내며 시댁을 복음화하는 데 이바지했다는 훈훈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수 믿는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할머니께 마음과 정성을 다해 축복송을 불렸다. 축복과 더불어 다시 한번 할머니께 당부했다. 할머니 “교회에서는 주지 목사라고 부르지 않고 담임목사라고 부른답니다. 아시겠죠?“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행복이 온몸에 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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