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세상사는 이야기

달력 유감

  달랑 한 장 남은 달력마저도 며칠이 지나지 않아 버려질 것이 분명합니다. 그동안 한 장씩 뜯겨나간 것이지만 이제는 그러하지 못합니다. 새해 새 달력을 걸어두기 위해서는 그 자리를 더 이상 버텨낼 수 없습니다. 시간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습니다. 창조 이후로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만, 사람들은 순리를 역리로 바꾸려고 하기때문에 고민이 깊어지고 고통은 커지게 됩니다. 결국에는 세월의 무게와 두려움 속에서 희망마저 빼앗겨 버리게 될 것입니다. 

  12월은 한 해를 떠나보내는 아쉬움보다는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기 위한 설렘으로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이란 어차피 길 위에 서 있는 것인데, 누군가 닦아 놓은 길 보다는 스스로 열어가는 길이 의미 있을 수도 있습니다. 생각하기 나름이고 매사에 마음먹기에 달려있습니다. 못다 한 억울함보다는 이루어야 할 내일 일들을 생각해 낸다면 그만큼 희망도 커지고 기대가 커질 수 있습니다.

  간간이 성탄 캐럴이 들려오기도 합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거리마다 번쩍거리고 북적거렸습니다. 성도들은 한 달 내내 들뜬 마음으로 성탄절을 준비했습니다.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할 것 없이 함께 캐럴을 불렀습니다. 심지어는 타 종교에서까지도 성탄절을 축복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는 살만했습니다. 가난하고 배고프고 힘들었어도 정이 있었고 살맛이 났습니다.

  어느 해부터인가? 사람들은 성탄 캐럴을 듣기조차 원하지 않았습니다. 저작권이 그렇고, 정부에서나 지자체에서도 거들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조용한 연말연시를 맞이해서 좋다라고들 합니다. 성탄절이 분주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까지 합니다. 성탄 선물 비용을 줄여도 된 탓인지 그런대로 괜찮다고 했습니다. 

  이러저러한 사람들의 생각이 거리를 지배하게 되고, 거리마다 울려 퍼졌던 성탄 캐럴은 그야말로 고요한 밤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한 순간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기대와 꿈은 시들해졌습니다. 희망 둘 곳이 없게 된 것입니다. 사람 사이에 정은 오간데 없이 어디론가 숨어 버렸습니다. 교회에서마저도 의미를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세상 살맛이 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살만한 것 같은데? 여기저기서 목 매인 소리만 가득합니다. 

  반짝이는 별(전구)들이 점점 사라지고 어둠이 뒤덮여 왔습니다. 거리마다 가득한 캐럴이 사라진 자리에는 젊은이들의 슬픈 아우성이 들어찼습니다. 사람들은 희망을 잃어버리고 지치고 고단한 몸을 이끌고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고, 정붙일 곳 없기 때문입니다. 

  이참에 교회가, 당신이 기댈 언덕이 되었으면 합니다. 예수께서 그러하셨듯이 날개깃으로 품어 주셨으면 합니다. 달랑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는 것보다는 새해에 새 달력을 걸어둘 자리로 바라볼 수 있다면 아직은 희망이 있습니다. 

진영식 목사(소리침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