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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선교와 전도

"거룩한 낭비"

영원한 것을 위하여,
영원하지 못하는 것을 버리는 사람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큰아들이 목회자가 되겠다며 신학교를 갔다. 몇 번씩이나 권면하며 인간적인 여러 방법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중학교 때부터 정한 비전이라는 말에 입학을 허락했다. 군대에서는 군종으로 나름대로 열심히 섬기며 봉사를 하는 것을 보았다. 전역 후 복학을 해서도 전도사로 목회의 길을 가는 아들을 보며 제 길을 찾은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몇 년 후, 느닷없이 늦은 저녁에 집으로 내려왔다. 제 꿈을 접겠다며 선전포고와도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툭 던졌다. 눈물을 흘리는 아들을 보며 그동안의 힘겨움과 고민을 아버지로서 다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냥 묵묵히 어깨를 두드려주는 것으로 새로운 결정에 응원을 한다고 했다. 누구나 갈 수 있는 길도 아닐 뿐만 아니라, 비전과 이상이 같을 수 없음을 분명히 느꼈을 것이다. 살신성인은 그냥 일어나는 게 아니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며 자신을 내어놓기가 어디 쉽겠나. 
  어제 새벽 예배에 목사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다.  짐 엘리어트(Jim Eliot)는 미국에서 유명한 대학인 휘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을 한 재원이었다. 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살기보다 새로운 삶의 길을 찾기 위해 6년을 준비한 뒤 남미에 있는 아우카 부족이 사는 곳으로 들어갔다. 오로지 자기의 신앙인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런데 아우카 족은 백인만 보면 죽이는 잔인한 습성을 갖고 있었다.   
 

진리의 길을 택한 엘리어트와 네 친구

  살인마 부족이라는 악명 높은 그곳에서 엘리어트와 그의 친구 4명은 “부아 비야 우늠부아”(나는 당신의 친구입니다) 그들의 언어를 통해 대화를 시도했지만 안타깝게도 모두 살해되고 말았다. 엘리어트에게는 두 살 된 딸과 아내의 뱃속에 새 생명이 자라고 있었지만 스물여덟 꽃다운 나이에 타국에서 끔찍하게 창에 찔려 죽고 말았으니 그 가족의 슬픔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어이없었던 것은 그들이 살해된 동기가 와오다디 부족 중 한 명이 위기에 빠지게 되자, 엘리어트와 그의 친구들을 지목하며 자기네 부족 여자 한 명을 납치해 살해했다고 거짓말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내 엘리자벳은 2년 동안 간호학을 공부하며 정글 생존 훈련을 받았다. 야생 동물을 잡는 법, 나무뿌리를 캐 먹는 법, 물고기를 잡는 법 등을 익힌 후, 곧 남편이 희생된 그 부족 국가로 찾아 들어갔다. 부족인들은 여자는 죽이지 않는다는 법칙이 있었기에 그녀는안심하고 열심히 그들을 섬겼다. 산모를 돌보았으며, 주민들의 병을 고치기도 하고, 농사법도 전파하며, 환자와 부족과 함께했다. 5년의 시간이 지났다. 엘리자벳은 잠시 본국으로 돌아가려 하자 그들은 파티와 함께 아름다운 환송식을 열어주었다. 추장이 물었다. “당신은 누군데 우리를 이렇게 도와줍니까” 엘리자벳은 담대히 말했다. “5년 전 당신들이 죽인 백인이 내 남편이다.” 그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후, 그녀의 아들도 성장하여 이 부족 마을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선교의 꽃을 피웠고 그곳은 놀라운 역사의 현장으로 거듭나는 부족 국가가 되었다. 
  짐 엘리어트는 “영원한 것을 위하여, 영원하지 못하는 것을 버리는 사람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렇다. 우린 어쩌면 영원하지 않은 것에 날마다 아옹다옹 목숨 걸며 불나방처럼 뛰어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길이 진리이며 아름다운 삶인지는 되묻지 않은 채 돈과 권력과 명예를 위해 전심전력으로 질주하고 있다. 제 가치의 존엄함과 준엄한 자기 철학을 바탕으로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기란 쉽지 않다.
  아들은 제 길을 새롭게 정립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평소에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나아감의 현실은 버겁고 두려울 것이다. 이성적 사고로는 그 이상의 너머를 보지 못한다. 참된 길은 어쩌면 존재 속에서 새로운 인식의 확장이 필요하다. 일찍이 신학도의 길을 가보지 못했다면 아들은 늘 후회하며 안 가본 길에 대한 동경과 참회의 슬픈 고백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돌아설 때는 그만한 확신과 신념이 확고부동해야만 한다. 
이 새벽 묵상을 통해 저 두 사람의 용서와 화해, 참된 신앙관으로 주어진 인생의 불꽃을 어떻게 피워올려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절대적 존재를 인정하고 때로는 거룩한 시간 낭비를 통해서라도 자신이 후회하지 않을 길로 갈 수만 있다면, 두 손을 맞잡고 다시 무릎을 꿇으리라.
이서원 집사(우정교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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