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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교계일반

復棋(복기)가 주는 유익들

하루의 삶을 복기하면서
회개와 감사와 오래참음과
아버지의 마음을 다시 새긴다.

 

듣고, 메모하고, 그 말씀을 통해 나를 반추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깨닫는 훈련이 "복기훈련"이다.

  복기라는 단어는 주로 바둑에서 많이 사용한다. 대국이 끝나고 나면 몇 시간 동안 벌어졌던 바둑판을 차근히 다시 기억하면서 바둑알을 옮겨놓는다. 어디에서 실수했는지, 어느 시점에 두었던 그 한 수가 결정적인 패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는지... 복기를 통하여 더 자라게 되고 더욱 성숙해져간다.

  한국교회에 남겨진 유산 가운데 하나는 큐티이다. 밀어닥친 QT 열풍은 여전히 식지 않고 있다. 큐티는 두 가지 축을 가진다.

  말씀 묵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과 아버지의 성품을 알아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서 하루의 삶을 복기하면서 회개와 감사와 오래 참음과 아버지의 마음을 다시 새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기 없는 큐티는 성장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무엇인가를 기억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일 수 있다. 그러나 잘만 훈련되어진다면 기억훈련만큼 탁월한 것이 없다.

  사람의 뇌에는 해마라는 것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단기기억 저장소인 해마는 단기기억이나 감정이 아닌 서술기억을 주로 처리한다. 해마에 저장된 자료는 사람이 잠을 잘 때에 대뇌피질로 옮겨져서 오랫동안 기억하게 된다. 여러 가지 저장된 자료를 대뇌피질로 옮길 때 생명이나 자존감에 관한 정보는 단회적인 사건이라 할지라도 곧바로 대뇌피질로 옮겨서 오랫동안 기억하게 한다. 우리가 사고로 죽을뻔한 일을 당했다고 할 때 그런 사고는 평생에 한 번 정도 일어나는 일이지만 노인이 되어서도 그때의 일이 생생한 것은 해마의 정보 처리 우선순위가 생명이나 자존감이 0순위에 있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 학비를 내지 못하여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 기억이 있다면 이 사건이 비록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라 할지라도 죽을 때까지 가슴에 멍으로 남게 되는 이유도 이와 흡사한 것이다. 생명과 자존감...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자존감과 생명에 관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수면을 취하는 동안에 해마가 깜짝 놀래면서 정보를 대뇌피질로 급하게 옮기는 것이 있다. 

  그것은 동일한 정보가 반복되어 들어올 때이다. 같은 정보가 4번 이상 반복해서 해마에 들어오게 되면 해마가 “이게 뭐지 뭔데 이렇게 자주 들어오는 거야!” 하면서 일단 대뇌피질로 옮겨놓고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복 학습이 중요하다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반복해서 공부하는 사람을 능가하지 못한다.

큐티를 통한 복기 훈련은 우리 삶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반복적으로 깨닫는 시간이다

  그래서 큐티를 통한 복기 훈련은 너무 중요하고 소중한 가치를 가진다. 왜냐하면 기억을 통한 큐티는 매일의 삶 속에서 말씀을 통하여 우리 삶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반복적으로 깨닫는 시간이다. 무한반복처럼 계속되는 정보가 우리 뇌에 각인되어 우리모두가 예수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설교를 듣는 것으로 불충분하다. 설교를 듣고 메모하고 나누고 그 말씀을 통하여 나를 반추하고…. 그러기를 반복할 때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기억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중에 축복이다. 젊은이는 꿈속에 살고, 장년은 현실 속에 살고, 노인은 추억 속에 산다고 한다. 그런데 알츠하이머가 오면 기억을 관장하는 뇌가 손상을 입어서 추억이 사라진다고 한다. 그러면 무엇인가? 기억이 사라지면 우리 삶도 저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영적으로 알츠하이머에 빠지는 사람들을 곧잘 본다. 말씀을 듣는 것에 머무는 사람들이다. 장담하건대 이들은 곧 헤메이게 될 것이다. 큐티를 통한 복기만이 우리를 살아나게 하고 자라게 하고 도전하게 할 것이다.  말씀 붙들고 치열하게 돌이켜 생각해 보라. 그러면 감사의 샘물에서 터져 나오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요즘같이 분노가 많은 세상에 복기는 우리에게 헤아릴 수 없는 감사의 제목들을 선물해 줄 것이다. 더 나아가 기억훈련은 하나님의 일을 통째로 받아들이게 된다. 통째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버지의 섭리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은 가물거려서 알 수 없지만 섭리를 이해하면서 오래 참으며 그날을 기다리는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들의 눈에 보여지는 숱한 이름들이 있는가? 명함에 붙여진 그 이름들... 잠시 잠깐 후면 모두 사라질 이름들이다.  골방에서 한 구절의 말씀을 붙들고 울고, 회개하고, 다시 일어서는 이들이 칭찬받을 이름들이다.

복기! 기억이 주는 선물들이 많다. 
누려라!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차지하라!

할렐루야 아멘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11:12)

편집국장 최성만 목사(오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