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신권사 썸네일형 리스트형 "일상 음악의 세계, 잘츠부르크" 올해, 나는 교회 성가대원으로 섬기게 되었다. 성가대 소속 실내악팀에서 플루트 연주로 15년간 봉사하다가, 다른 부서로 옮겨간 지 8년 만에 다시 성가대 찬양팀에 합류했다. 성가대원의 가장 큰 유익은 주일 예배에서 드린 찬양이 한 주간 내내 귀와 가슴 속에 울려 퍼진다는 점일 테다. 주의 성호(聖號)를 담은 선율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일상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다. 관현악기들의 어우러짐 속에 빚어지는 실내악의 하모니 못지않게, 각자의 음역이 자아내는 음성의 화음도 즐거움을 선사한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음악으로 찬양하고 일상을 누리는 건 더없이 행복한 일이다. ‘음악’이라면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계단 위 초록색 대문’이다. 유년 시절, 커다란 바이엘 악보책을 들고 오후 세 시면.. 더보기 "태조의 기억을 간직한 땅, 몽골" 밤이면 베란다의 블라인드를 내리다가 한참 하늘을 바라보고 서 있을 때가 있다. 15층 남향인 우리 집 베란다에선 달의 변화를 뚜렷이 볼 수 있는데, 미인의 눈썹 같던 초승달이 잠깐 상현달이 되었다가 어느새 보름달로 차오르곤 한다. 아! 오늘이 보름이구나, 매번 새로운 감탄으로 밤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거실에 있는 남편을 불러 저 아름다운 달을 좀 보라며 수선을 피울 때도 많다. 남편과 함께 감탄하고 있는 시간, 달에서 바라보는 푸른 별 지구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보기도 한다. 정확하게 운행되는 우주와 그 위에 스민 창조주의 손길을 자각하게 되는 밤하늘은 언제나 경이롭다. 그럴 때면 읽고 있던 책이나 저녁 식탁 메뉴, 친구의 안부 전화에 머물렀던 내 의식은 지경을 넓혀 우주로 확장되곤 한다. 이런 현.. 더보기 "통찰의 프리즘, 트리어" 만약 이삼십 대에 오십 대의 통찰력을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가끔 상상해 볼 때가 있다. 아마 일의 실수나 오류를 조금은 줄였을 테고,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도 훨씬 넓었을 테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한결 신중했을 테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시간을 따라 제련된 깊은 눈빛이 어떻게 젊은이의 것이 될 수 있겠는가.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라는 고린도후서의 말씀처럼 나이 듦에 따른 유익에 감사할 때가 많다. 정신적·영적 성숙이 나이와 정비례하지는 않겠지만 분명 상관관계는 있는 듯해서다. 사람은 자신의 나이만큼 넓어진 프리즘을 통해 인생을 반추할 수 있고 경험에 따른 통찰력을 지니게 되는 것 같다. 연로한 어르신들 앞에 우리가 고개를 숙이고 존경해.. 더보기 “새로운 시각을 요청하는 땅, 도쿄” 11월 들어 일본에서 또 6.3의 강진이 발생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주기적인 지진을 감내해 온 일본 국민의 고통이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기사를 본 후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의 안녕과 구원을 위해 잠깐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런 나의 태도는 이전과 비교해 분명 변화된 모습이다. 예전에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놓인 일본의 고통을 그저 안쓰러워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어쩌면 내 마음 깊숙한 곳에는, 지진대에서 살짝 비켜나 있는 우리나라의 지질학적 위치를 다행으로 여기는 얄팍한 이기심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일본을 향한 마음에 진심 어린 변화가 일어난 건 작년 5월, 도쿄 가족여행 중에 직접 지진을 겪은 후부터다. 도쿄 가족여행은 아들이 모두 계획하고 준비해서 함께한 여행이었다. 이미 .. 더보기 "땅의 끝은 바다의 시작, 리스본" 어릴 때, 아버지가 여덟 살 생일 선물로 사 주신 커다란 지구본을 매일 들여다보곤 했다. 어느 날은 우리나라와 대척점에 있는 아르헨티나를 찾아보고, 또 어느 날은 고개를 꺾어 남극 땅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지구본만으로 만족이 안 되면 큰오빠의 교과용 컬러판 사회과 부도를 펼쳐보기도 했다. 모든 대륙 모든 나라 모든 도시가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유독 역사와 지리를 좋아했던 이유도 세상을 향한 호기심 때문이었을 테다. 지구본과 지도책만으로 세상을 품은 듯 행복했었다. 한번은 유라시아대륙 극동에 위치한 한국의 반대편 즉, 대륙의 최서단을 유심히 바라본 적이 있다. 유라시아대륙의 최서단 지점은 포르투갈 리스본 근처였다. 그 땅은 유라시아대륙을 지나온 고단한 태양이 대서양 아래로 숨어들어 잠.. 더보기 “이미지를 소비하는 땅, 모나코” 얼마 전, 프랑스 L사의 천만 원대 명품 가방이 중국 공장에서 제작되는 원가는 팔만 원에 불과하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미지와 실체의 극단적 차이를 고발하는 기사에 독자들은 허탈하다는 댓글 반응을 쏟아놓았다. 세계 1위 부호에 등극해 있는 L사의 오너야말로 ‘이미지 소비’라는 단순 전략으로 소비자들을 공략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 그대로, 일부 소비자들이 L사의 가방을 사기 위해 오픈런과 무한대기를 마다하지 않는 건 가공된 명품 이미지 때문일 테다. 분수에 넘치는 고액을 지불해서라도 명품 이미지를 사서 자기화하려는 것이다. 건전한 실체보다 거품 가득한 이미지에 집중하는 우리 사회를 잘 보여주는 단면인 것 같아 씁쓸했다. 그 기사를 접하면서 문득 명품 이미지의 대명사로 불려온 영화배우 ‘그레이스 켈리.. 더보기 바울 사도가 갈망한 땅, 로마 지난 6월, 교회사 편찬을 위한 선행작업으로 울산지역 교회사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울산지역 교회사 안에서 우리 교회 설립의 의미를 찾아보려는 목적이었다. 여러 자료를 참고하며 울산지역 교회사를 요약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큰 은혜를 받았다. 미국북장로교와 호주빅토리아장로교 선교사들을 통해 부산을 거쳐 울산에 복음의 빛이 스며드는 과정은 한 편의 감동적인 대하 드라마였다. 일신의 안녕을 뒤로하고 전 생애를 복음에 바친 선교사들의 희생에 먹먹했다. 사역 중에 병사(病死)하거나 자녀를 잃은 선교사들은 물론, 천신만고 끝에 선교지에 도착하자마자 폐렴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선교사도 있었다. 그분들은 하나같이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 많은 열매를 맺듯 선교의 큰 밑거름이 돼주었다. 1895년 .. 더보기 편견을 지우는 땅, 티라나 타인(인간)과 타지(세계)에 관해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싶다면 단연 독서와 여행이 최고다. 독서는 마음으로 하는 여행이며,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라는 말이 있다. 되새길수록 정확한 말이다. 독서는 물리적 세상에서 겪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구체적인 삶을 이해하게 해 준다. 육하원칙으로 작성한 언론 취재 기사만으로는 인간의 삶에 깊이 다가가기 어렵다. 예를 들어보자. 예전에 ‘아프가니스탄’이라고 하면 이슬람 원리주의와 탈레반, 여성 탄압과 난민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전부였다. 그 땅의 역사와 인종, 문화에 관해 문외한이었던 내가 그곳 백성을 위해 구체적으로 기도할 수 있게 된 건 세 권의 소설책 때문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미국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가 쓴 , , 가 그것이다. 세 작품에는 소련의 .. 더보기 이분법의 상처, 모스타르 얼마 전 문학 모임에서 한 분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절대 선’을 설파해 참석자들이 피로를 느낀 일이 있었다. 정책 사안에 따른 호불호가 아니라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니까 모든 정책이 옳다’는 논리는 이분법에 가까워 보였다. 흑백논리에 근거한 이분법은 객관성과 다양성이 결여돼 지나치게 단순한 결론을 만든다. 더욱이 적대적 그룹을 만들어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기도 한다. ‘내가 지지하지 않는 정당이니까 모든 정책은 악하다’는 결론에 이르면 사회적 오류를 낳는다. 이분법을 개인에게 적용하면, ‘저 사람의 어떤 행동이 싫다’가 아니라 ‘저 사람이니까 모든 행동이 싫다’라는 논리가 되는 것이다.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무지한 이분법을 도처에서 목격하게 되는데, 그 참상이 가장 선명했던 도시가 ‘모스타르’였다. .. 더보기 열정의 두 얼굴, 코린토스 성형수술 전후의 변화를 다룬 동영상이 유튜브 조회 수백만 회를 상회하곤 한다. 주목받지 못하던 얼굴이 몇 번의 성형수술로 드라마틱한 개선을 거듭한 결과 추앙받는 여신이 되었다는 광고성 내용이다. 결론은 ‘평범한 당신도 여신이 될 수 있으니 지금 당장 수술대에 오르라’는 주문과도 같다. 여성들이 가진 미의 욕구와 신화의 환상 이미지를 섞은 콘텐츠에 구독자들은 열렬하게 반응한다. 아름다움의 욕구는 인간의 본능이지만 그것이 ‘여신의 탄생’이라는 헛된 열정으로 연결될 때 자아 숭배로 오염될 수도 있다. 세상은 그리스 신화의 여신 ‘아프로디테’나 로마신화의 여신 ‘비너스’를 아름다움의 근원으로 추앙하지만, 그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상 숭배와도 맞닿아 있다. ‘아름다움의 총화’를 상징하는 ‘미의 여신’의 실..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