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시인 썸네일형 리스트형 "산정 일출" 누군가 내 뒤통수를 힘껏 내리쳐 까무러칠 만큼이거나, 자기 무릎을 오른손으로 때려 관절이 부러질 것 같은 박장대소의 고함을 지르거나…. 이만한 일이 살면서 몇 번이나 있을까. 이해하고 깨우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한 편의 시를 읽고 기절할 듯한 충격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그 시는 성공이다. 그저 그런 시 한 편을 읽은 뒤 돌아오는 감정을 어찌하지 못해 시원한 콜라 한 병 통째로 들이부어야 느끼함이 가신다면 그게 바로 내 시가 아닐까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오랜만에 무거운 배낭을 둘러메고 지리산에 올랐다. 스무 살 때 이후 처음이다. 등에 짊어진 배낭은 오를수록 태산보다 더 무겁다. 나이를 생각지 않고 이것저것 챙겨온 게 낭패다. 고도는 높아지는데 걸음은 천근을 훌쩍 넘긴다. 꺾어진 소나.. 더보기 "다시, 강가에서" 일상을 잠시 접어둔 채 배낭을 둘러메고 훌쩍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는 건 작은 축복이다. 지난여름 조지아Georgia를 다녀왔다. 세계에서 기독교를 정식 국교로 인정한 두 번째 나라인 만큼 성지순례지로도 손색이 없다. 가는 곳, 보이는 곳, 대부분이 교회다. 역사에 의하면 약 320년경 니노Nino에 의해 기독교가 전파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왕실과 귀족들은 물론 모든 국민까지 말씀이 선포되고, 마침내 아르메니아에 이어 세계 두 번째의 정식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조지아의 옛 수도인 므츠헤타 스베티츠호벨리Svetitskhoveli 자리에 이 나라 최초의 교회가 세워졌다. 이곳 교회 뜰 잔디밭에 앉으면 그야말로 모든 시간이 멈춘 듯 마음이 평온해지고 푸른 하늘마저도 경이롭고 숭고해 보인다. .. 더보기 “문사(文士)” 문장을 짓는 일은 온 우주를 끌어당기는 듯한 힘과 끝없는 자기와의 지난한 싸움이 필요하다. 때로는 꿈에도 시를 좇고, 더러는 길을 가거나 운동을 하다가도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단어 하나에 몰두하는 집중력, 그런 집요한 파고듦이 없이는 결단코 작가의 대열에 끼어들 수 없다. 남들은 무모하다고 고개를 가로저어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게 어쩌면 글을 쓰는 일 아니겠나. 지난달 파리 올림픽 여자 마라톤이 모든 경기의 피날레였다. 42.195km라는 엄청난 거리를 달리는 건 아무나 도전할 수 없다. 그래서 올림픽의 꽃이라고 하는 것이리라.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일, 조금도 멈춤 없이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는 듯하지만, 그들의 무한 경쟁은 복잡한 계산과 치열한 작전이 필요하다. 근대올림픽이 시작된.. 더보기 "오전 열 시 모노드라마" 한여름의 뜨거운 볕이 키 큰 감나무를 타고 오르더니, 이제 창을 밀치고 들어와 집 안 흔들의자에 주인처럼 앉아 있다. 지붕 낮은 사랑채 대들보에 걸린 괘종시계가 댕! 댕! 댕! 열 시를 알린다. 내 어릴 적 어머니가 쌀 몇 되를 주고 사서 머리에 이고 십 리를 걸어온 소중한 것이다. 기척 없는 고요한 마당을 제가 온전히 지키고 있다는 양, 째깍째깍 아직도 틀림없이 잘 가는 게 의젓하다. 뒤꿈치를 들어도 닿지 않아 목침을 괴고 겨우겨우 태엽을 감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이후 시간은 제 바퀴의 테두리를 얼마나 풀며 돌아갔을까. 서로의 나이가 엇비슷하게 조금씩 기울어 가는 세월이지만, 아직도 제 반경을 조금도 어긋남이 없다. 녹슨 철 대문 옆 정자에 앉는다. 앞집 연붉은 능소화가 담장을 넘어와 눈치를 살피며.. 더보기 “썸(SOME)” 젊은이들 사이에 쓰는 단어 중 하나가 썸(SOME)이다. 여기서 파생되어 온 단어가 썸남, 썸녀다. 서로 호감은 있으나 쉽게 고백을 못하는 단계의 썸을 지나 썸을 타는 단계까지 나아감은 이제 사랑하는 관계로까지 발전한 것을 의미한다. 큰애가 어느덧 스무 살의 중후반을 넘어서자 여자 친구 하나 없는 게 못내 걸렸다. 쉽게 사귀고 헤어지는 게 요즘의 세대라지만, 내심 사회성 결여인지 아니면 여자 친구는 아예 관심이 없는 건지 도무지 알 길이 묘연했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사진 하나를 보내왔다. 코로나 시국이라 마스크를 꾹 눌러쓴 채 찍은 사진은 분명 아들이었다. 얼굴을 반쯤 맞대어 있는 옆 사람도 분명 여자 같았다. 소위 교회 오빠인 아들에게도 드디어 바라던 친구가 생겼구나 싶어 나도 모르게 이것저..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