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오기 전, 지금으로부터 약 230년 전인 1793년부터 제주도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세 고을에서만 600여 명이 굶어 죽을 정도로 큰 흉년이었습니다. 그러자 ‘흉년이 들어 농작물을 재배할 수 없게 되었고, 2만여 섬의 구호 식량이 없으면 장차 제주 백성들이 다 굶어 죽을 것’이라고 장계(狀啓)를 임금님께 올리게 되었고, 조정에서는 굶주린 백성들에게 나눠줄 구휼미 1만 석을 급히 제주도로 보냅니다. 그런데 그 구휼미를 실은 다섯 척의 배가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육지에서 쌀 500여 석을 사다가 굶주린 제주 백성들에게 무료로 나눠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거상’ 김만덕(金萬德, 1739-1812)이라는 여인입니다.
제주도에서 출생한 김만덕은 어린 시절 부모를 모두 잃고, 친척 집에서 겨우 목숨을 이어가며 기생의 몸종으로 들어가 기생의 수양딸이 됩니다. 한때는 유명한 기생으로 살기도 했지만, 20세가 넘어서면서 관에 기생이 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여 양민의 신분을 회복합니다. 그 후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객주를 운영하다가, 제주도에서 생산된 물품과 육지의 물품을 교역하는 유통업을 통해서 엄청난 부를 이루게 됩니다. 그녀는 거상이 되었음에도 언제나 검소하게 살았고, 그러다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자신이 그동안 벌어들인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굶주림에서 건져주게 됩니다. 당시 사회는 엄격한 유교 문화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조선 시대에 여인으로서, 그것도 어렸을 적에 부모님을 잃고 고아가 된 여인으로서, 사회적인 벽을 깨고 큰 성공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재산을 전부 기부할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지 모릅니다. 김만덕의 선행은 서울 장안에까지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그녀는 사대부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직접 만나보고 싶어 할 정도로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금까지 대부분 사회에서 여자는 사회적인 약자였습니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넘어서야 할 벽들이 너무 많았고, 도저히 넘어설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엄청난 벽들을 깨고 자신의 꿈을 이룬 사람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더구나 부끄러운 과거를 지닌 사람이 자신의 발목을 잡는 그 ‘부끄러운 과거’를 뛰어넘어 큰일을 해낸 경우에는 그들의 삶이 더욱 감동을 주게 됩니다. 김만덕에게 ‘기생 출신’이라는 부끄러운 과거가 있었지만,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재산을 다 털어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간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봅니다. 그중에 막달라 마리아를 잊을 수 없습니다. 일곱 귀신에 들려 고통을 당할 때 사람들은 모두 그녀 곁을 떠나갔습니다. 처음 귀신들려 고통당할 때는 ‘참 안 됐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바라보는 시선이 더 고통스러웠을 겁니다. 더군다나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린 사람이었습니다. 더는 사람으로서 어찌해 볼 수 없을 정도로 귀신에게 붙잡힌 사람이었습니다. 분명 사람들은 그녀를 저주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를 고쳐주셨습니다. 이제 귀신에게 고통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 자신은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귀신에게 고통받던 삶에서 해방되었다는 기쁨이 늘 그녀의 가슴에 가득했습니다. 그 감격은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자신의 온 생명을 다 바쳐 주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막달라 마리아는 이후 늘 주님 곁에 있었습니다. 모든 제자들이 주님을 버리고 도망쳐버렸을 때도,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그녀는 골고다 언덕까지 주님을 따라 올라가서 십자가 아래서 찢어지는 가슴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7:56) 그리고 아리마대 요셉이 돌아가신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무덤에 넣고 돌로 무덤 문을 닫을 때도,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문 앞에서 무덤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7:61) 날이 저물자 집으로 돌아와서는 예수님의 시신에 바를 향유와 향품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누가복음 23:56) 그러다가 안식일이 지나고 아직 날이 밝기도 전에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와 향품을 발라드리기 위해서 무덤을 찾아갔습니다.(누가복음 24:1)
여러분, 여인의 몸으로 무덤을 찾아간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더구나 아직 날도 밝지 않은 이른 새벽에 무덤을 찾아간다는 것은 더더욱 두려운 일입니다. 그런데도 막달라 마리아는 그렇게 했습니다. 무엇이 막달라 마리아가 두려움 없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게 했습니까? 그건 예수님께 받은 사랑 때문입니다. 그만큼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가진 재산을 모두 주님을 위해서 내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위해서 한다면 무엇이든지 드릴 수 있었습니다.
발행인 옥재부 목사(북울산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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