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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교계일반

양자론(養子論)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즉, 삼위일체는 하나님은 한 분(一體)이시지만, 그 한 분 하나님 안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三位)가 있다고 가르치는 교리이다. 그런데 이 삼위일체 교리는 우리 인간의 이성과 판단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참으로 어려운 교리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위일체 교리가 중요한 것은 우리의 구원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삼위일체에 관한 교리는 기독교의 가장 위대하고, 가장 영광스러울 뿐만 아니라, 가장 필수적이며,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교리이다.

 

실상 초기의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 가운데 하나는 성부와 성자와의 관계에 관한 문제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기독교의 복음이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헬라 세계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즉, 헬라 세계는 영과 육의 이원론(二元論, dualism)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인간의 육(肉)은 형이하(形而下)적인 것으로써 악하고 부패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영(靈)은 형이상(形而上)적인 것으로써 선한 것으로 생각을 했다. 따라서 그들은 육체를 벗어나는 것이 구원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 사고적인 세계에서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전능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이 악하고 더러운 육체를 입고 인간이 되실 수가 있느냐는 것이 헬라 세계에서의 문제였다.

 

그런 가운데 특별히 초기의 기독교 교회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함에 있어서 유일신(唯一神)적 교리의 원리를 보존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세 분의 위격(位格)이 존재한다는 교리를 가르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고백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구원론에 관한 것이었다. 초대교회에서의 구원론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베드로는 그의 서신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벧후 1:4)

 

그런데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데 그 성자가 완전한 하나님이 아니라면 우리의 구원도 완전하지 않게 된다. 다시 말해서, 만약 그리스도께서 사람이시라면 우리의 구원은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헬라 세계의 사람들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가를 설명해야만 했다. 그렇게 설명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신성(神性, Divinity)에 더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예수님의 인성(人性, Humanity)에 더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다는 사실을 헬라 사상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보다 자세히 설명하는 과정에서 그릇된 삼위일체를 제시하는 잘못을 범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너무 지나치게 강조를 했던 사람들은 양태론(樣態論, modalism)을,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너무 지나치게 강조를 했던 사람들은 양자론(養子論, adoptionism)을 취했던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단일신론’을 주장하는 자들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양자론자들은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능력을 부여받은 한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아들로 양자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양태론은 단순히 삼위 양태론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사상은 한 분 하나님을 너무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삼위(三位)를 한 하나님의 다른 양태(樣態)로 보면서 삼위일체의 비밀을 풀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와 같은 양자론과 양태론은 성경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교회가 배척했던 사상이다.

 

이들 두 잘못된 삼위일체 사상 가운데 먼저 양자론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이 양자론은 단일신론을 강조하다보니 한 분 하나님 외에 다른 분은 하나님이 되신 분이고, 하나님과 같은 분이라고 여기면서 예수님의 인성에 관심을 가졌다. 이들에 따르면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능력을 부여받은 한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아들로 양자가 되었다고 한다. 즉, 예수가 때로는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가 부활할 때까지는 단순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장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알렉산드리아에서 장로였던 아리우스(Arius, 256-336)였다. 아리우스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성부와 동질의 존재가 아니라 다른 피조물과 다를 것 없이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이다. 즉, 나사렛 예수께서는 모든 피조물보다는 우월하시지만 하나님 아버지보다는 열등한 존재로서, 아버지께 종속하는 분이요, 결국 그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는 다른 피조물처럼 무(無)로부터 창조되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지 않았을 때가 있었다”는 것이요, “성자는 시작이 있으나 성부는 시작이 없다”고 주장했다. 쉽게 말하면, 많은 사람들 가운데 아주 특별하게 뛰어난 분이 있었는데, 그가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하나님이 되신 분이라는 것이다.

 

아리우스의 주장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이었다. 성자 예수가 아무리 그 위치가 높다고 할지라도 결국 그는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리우스의 주장대로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스승일 수는 있어도 구원자는 될 수가 없다. 그리고 아리우스의 주장에 따른다면 본래 인간이셨던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한다면 기독교적 신관은 다신론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양자론은 교회 전통에서 이단으로 정죄를 당했던 것이다.

 

오늘 우리들 주위에도 보면, 삼위일체 하나님을 설명한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 지나치게 관심을 둠으로써 양자론적 견해를 취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능력을 부여받은 인간 예수를 강조하면서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었음을 외면하는 것이다. 즉, 한 분 하나님 외에 다른 분은 하나님이 되신 분이고, 하나님과 같은 분이라고 여기면서 예수님의 인성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양자론적 견해는 유일신론적 기독교를 다신론적인 기독교로 만들어버리고,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구원을 헛된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만다는 점에서 단연코 거부해야 하는 이단적인 사상인 것이다.

 


오주철 목사(Ph. D)
언양 영신교회
계명대학교 외래초빙교수
저서: 조직신학개론(2013, 2016, 한들출판사), 
한국개신교회사(2015, 한들출판사), 
종교개혁자들의 삶과 신학(2017, 한들출판사)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