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서울로 이사를 가면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이 한 곳 있었다. 바로 대학로에 있는 ‘학전(學田)’이라는 소극장이다. 내가 학전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연극이나, 뮤지컬 공연을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학전을 만든 ‘김민기’라는 사람이 궁금해서였다. ‘아침 이슬’, ‘상록수’ 같은 명곡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삶의 위로와 희망을 전해 준 사람. 이렇게 전 국민이 다 아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뒷것’이라고 말하며 절대 앞으로 나서지 않았던 뒷것의 사람 ‘김민기’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1991년 김민기 선생이 세운 학전(學田)의 뜻은 ‘배움의 못자리’라는 뜻이다. 이 못자리에서 지금은 너무나도 유명한 배우와 가수들이 싹을 틔우고 자라 문화 예술계에 좋은 ‘쌀’이 되어 있다. 90년대 연극판은 배우들이 6개월 공연하고도 10만 남짓 받던 시절이었다. 김민기 선생은 그들의 어려움을 알고 배우들과 정식 계약을 맺고, 공연 수익을 공정하게 나눠 주었으며, 한 끼 밥만큼은 꼭 챙겨주었는데, 그는 “이런 일이 뒷것이 할 일”이라고 말했다. 보통 극단만 살찌고 배우들이 희생되던 시기에 학전은 사람 농사를 지었던 것이다. 그렇게 배우들이 잘되면 그는 지체 없이 이렇게 말했다.
“얼른 나가 뒤 돌아 보지말구”
그는 ‘지하철 1호선’이라는 뮤지컬로 큰 성공을 거두며 학전의 전성기를 이끌던 때에도 수익만 좇지 않았다. 오히려 “돈이 되는 것만 하다 보면 돈이 안 되는 것을 못 할 것 같다”라고 말하며 인기 공연을 멈추고 어린이를 위한 아동극을 무대에 올렸다.
아동극은 수익이 거의 없었다. 극단 운영도 점점 어려워졌다. 그러나 그는 끝내 그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동극이 돈이 안 되더라도 어느 한구석에서는 그걸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어야지.” 그는 그렇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자리, 사람들이 외면하는 자리를 묵묵히 지켜 냈다. 어쩌면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문화와 공동체가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2024년 7월, 김민기 선생은 세상을 떠났다. 유가족과 학전 측은 조화와 조의금을 정중히 사양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오는 분들께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한다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저 따뜻한 밥 한 끼.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누군가를 먹이고 위로하는 삶을 살았다. 끝까지 뒷것으로 살다 간 사람이다.
생각해 보면 예수님도 그러셨다. 주님은 로마의 화려한 권력과 영광의 길을 선택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가장 낮은 자리로 오셔서 섬김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고(요 13:5), 섬김을 받기보다 섬기러 오셨다고 말씀하셨다(마 20:26-28).
그리고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나를 따라오너라.”
오늘 세상은 끊임없이 앞것 인생을 부러워하라고 말한다. 더 높이 올라가고, 더 많이 소유하고, 더 크게 인정받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조금 다르다. 하나님은 여전히 조용히 뒷것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세상을 붙들고 계신다.
누군가의 눈물 곁에 오래 머무는 사람, 아무도 몰라도 자기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사람, 대가 없이 따뜻한 밥 한 끼를 내어주는 사람.
어쩌면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이 시대를 밝히는 진짜 빛인지도 모르겠다.
화려하고 주목받는 ‘앞것’만이 추앙받는 시대 속에서, 뒷것의 길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오늘 조국 교회 가운데 다시 들려오기를 소망한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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