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스쿨링을 한다고 하면 어른들이 가장 먼저 꺼내는 염려가 있다.
“친구를 못 사귀지 않겠느냐”, “사회성이 떨어지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또래 집단을 중심으로 관계를 경험해 온 이들에게, 그 틀 밖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삶은 자연스럽게 결핍으로 보이기 쉽다. 그러나 홈스쿨링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이 염려가 사회성을 지나치게 제한된 기준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사실 아이들이 친구를 만들기 전, 가장 처음 맞이하는 사회는 가족이다. 그리고 가정이라는 첫 사회에서의 경험이 이후 사회성의 뿌리가 된다. 가정 안에는 나이와 역할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다. 아이들은 이 안에서 자연스럽게 여러 연령대를 경험하며 자라고, 관계와 상황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법을 배운다. 무엇을 조심해야 할지, 언제 기다려야 할지, 어떻게 자신을 조정해야 할지를 일상 속에서 몸으로 익힌다. 이렇게 반복되는 경험은 설명 없이도 아이의 안에 쌓여, 이후 더 넓은 사회로 나아갈 때 유연함과 안정감의 기초가 된다.
우리 집 아이들도 그렇다. 새해가 되면 은설이는 열네 살, 은송이는 열두 살, 은겸이는 아홉 살, 은결이는 다섯 살이 된다. 집 안에서부터 형과 동생, 나이가 다른 아이들이 하루 종일 함께 지내며 서로에게 맞추어 간다.
홈스쿨링을 하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순간들이 많다. 아주 작은 다툼 하나에도 집 안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모두가 불편해진다. 숨을 곳도, 잠시 거리를 둘 여유도 없다. 그러니 결국 관계를 포기하는 대신 조정하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배운다.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에서는 바르게 도움을 청하는 법을 배우고, 누군가 힘들어 보이면 먼저 알아차리고 손을 내민다. 다툼을 이기는 법이 아니라, 관계를 이어 가는 법을 익힌다. 이렇게 도움을 주고받는 일이 반복되면서 아이들은 가족이라는 사회 안에서 이미 다양한 연령과 기질, 역할이 뒤섞인 관계를 매일 살아내고 있다. 이 일상은 사회성이란 무엇인가를 분명히 보여 준다. 사회성이란 많은 사람 앞에서 말 잘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 사이에 머무를 줄 알고, 불편함을 건너 다시 관계로 돌아올 수 있는 힘이라는 사실이다.
부모와의 관계는 이 사회성의 출발점이자 중심이다. 홈스쿨링 안에서 아이들은 부모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단순히 같은 공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상당 부분을 함께 살아낸다. 책을 함께 읽고, 야구를 하고, 체스를 두고, 양말목 공예를 함께한다. 지금 나열한 것들은 모두 우리 아이들의 실제 취미들의 일부이다. 좋아하는 것을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부모는 아이에게 가장 익숙한 대화 상대가 되고, 가장 자주 생각을 나누는 사람, 가장 안전하게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이 친밀함은 아이에게 관계의 기본값을 형성한다. 세상과 관계를 맺을 때, 사람을 두려움보다 신뢰로 먼저 대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그러나 이 친밀함은 결코 가볍지 않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는 언제나 편안하지만은 않다. 하루를 함께 보내다 보면 기분이 상할 때도 있고, 생각이 부딪힐 때도 있으며, 말이 거칠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갈등이 있어도 다시 대화를 해야 하고 다시 마주해야 한다는 현실이 아이에게 중요한 배움이 된다. 관계는 감정이 좋을 때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불편함을 지나 다시 이어지는 것임을 몸으로 배우게 된다. 이는 또래 관계에서는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깊이이다.
이 지점에서 부모는 친구이면서 동시에 부모이다. 아이들은 부모를 친구처럼 편하게 대하지만, 부모가 친구로만 머문다면 관계는 곧 흔들린다. 부모는 아이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때로는 멈추게 하고 기다리게 하며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이 경계는 말로 설명해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함께 살아가며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관계의 질서이다. 절친한 친구이면서도 친구는 아닌, 친밀하지만 분명한 역할이 있는 관계. 아이들은 이 복잡한 구조를 의외로 빠르게 이해한다.
이 관계 안에서 아이들은 중요한 사회적 감각을 익힌다. 같은 사람이라도 상황에 따라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 관계마다 기대와 책임의 무게가 다르다는 것, 친밀함이 곧 무질서함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운다. 이는 단순한 예절 교육이 아니라 관계를 읽는 힘이다. 이 힘은 이후 학교든 직장이든, 교회든 사회든 어디로 가든 아이를 지탱하는 토대가 된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배운 이 미묘한 감각이, 아이가 더 넓은 사회로 나아갈 때 사람을 이해하고 관계를 조율하는 기준이 된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나이에 대한 벽이 낮다. 친구가 된다는 것이 만나는 시간의 길이나 나이가 비슷한지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일찍 배운다. 애초에 친구를 사귀는 데 나이라는 기준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든 친구가 될 수 있다.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우리가 이를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시편 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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