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력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우리는 습관처럼 지난 1년을 회고한다. 액셀러레이터로 활동한 지 어느덧 10년, 매년 이맘때면 수많은 스타트업 대표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특히 올해는 ‘AI의 일상화’가 가속화되며 기술적 특이점이 창업 생태계를 덮친 해였다. 모든 것이 자동화되고 최적화되는 이 시점, 나는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가장 원초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당신의 서비스에서는 사람의 땀 냄새가 나는가?”
줌 인(Zoom-In)과 줌 아웃(Zoom-Out)의 역설적 균형
스타트업이라는 경주는 흔히 마라톤에 비유된다. 하지만 이는 반만 맞는 말이다. 마라톤은 정해진 코스를 완주하면 되지만, 스타트업은 코스 자체를 개척하며 달려야 한다. 장기 레이스이면서도, 사실은 매달· 매분기가 스프린트에 가깝다. 따라서 그 호흡법은 달라야 한다는 뜻이다.
12월은 이 호흡을 점검하기 가장 좋은 시기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줌 인(Zoom-In)’과 ‘줌 아웃(Zoom-Out)’의 렌즈를 갈아 끼우는 능력이다.
많은 창업가가 ‘장기적 비전(Zoom-Out)’에만 매몰되어 당장의 생존 지표를 놓치거나, 반대로 당장의 매출(Zoom-In)에 급급해 배가 산으로 가는 우를 범한다. 2026년을 준비하는 지금, 우리는 냉정하게 줌 인을 해야 한다. 지난 1년간의 가설 검증은 얼마나 빨랐는가? 실패했다면 그 데이터는 자산으로 남았는가? 단기적인 지표 관리는 몽상가가 되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다.
동시에 줌 아웃을 통해 우리가 향하는 북극성이 여전히 그곳에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빠른 실행과 검증이라는 ‘단거리 전력 질주’를 반복하되, 그 방향이 ‘장기적 목표’와 일치하는지 끊임없이 조율하는 밸런스 감각. 이것이 10년을 버티는 기업과 1년 만에 사라지는 기업의 결정적 차이다.
‘모순’과 ‘이기적 유전자’에서 배우는 생존의 기술
이러한 밸런스를 맞추는 일은 필연적으로 고통스럽다. 소설가 양귀자의 명저 《모순》에는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비즈니스 모델을 탐구한 뒤에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다. 부딪히고 깨지며 모순덩어리인 시장 속에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사업이다. 논리와 직관, 속도와 방향, 이상과 현실이라는 수많은 모순 속에서 균형을 잡는 곡예사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주는 통찰을 더해보자. 도킨스는 유전자가 생존 기계로서 끊임없이 자기를 복제하고 후대에 전달하려 한다고 말한다.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밈(Meme)’ 즉, 문화적 유전자는 무엇일까? 그것 바로 시장에서 살아남는 ‘업의 핵심 가치’다.
환경은 변한다. 2025년의 시장 환경은 2024년과 달랐고, 2026년은 또 다를 것이다. 살아남는 유전자는 가장 강한 유전자가 아니라, 환경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유전자다. 우리의 서비스가 단순히 기술적으로 우수한지 묻지 말고, 이 서비스가 고객의 뇌리에 복제되고 전파될 만큼 강력한 ‘생존 본능(Product-Market Fit)’을 지녔는지 자문해야 한다.
땀 냄새 나는 AI 서비스, 차별화의 마지막 열쇠
이제 AI는 코딩도, 마케팅 문구도, 디자인도 뚝딱 만들어낸다. 진입장벽이 낮아졌다는 것은 누구나 비슷한 수준의 결과물을 낼 수 있다는 뜻이다. 기술의 평준화 시대, 스타트업의 차별화는 어디서 오는가?
나는 감히 ‘땀 냄새’라고 말하고 싶다. 매끄럽고 세련된 알고리즘의 결과물은 차갑다. 고객은 완벽한 답을 원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이면에 있는 진정성을 갈구한다. AI 기술을 활용하되, 그 서비스의 끝단(Last Mile)에는 창업가의 치열한 고민과 현장을 발로 뛴 땀방울이 묻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AI로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식단을 추천해 주는 서비스가 있다고 치자. 단순히 영양 성분만 계산해 주는 앱은 넘쳐난다. 하지만 지역의 농가와 직접 계약해 신선한 재료를 공수하고, 고객의 식습관을 바꾸기 위해 매일 아침 손 편지 같은 푸시 알림을 보내는 ‘정성’은 AI가 흉내 낼 수 없다.
이것이 바로 ‘AI 융합 서비스’의 본질이다. 기술은 인간의 수고를 덜어주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치에 더 집중하기 위해 써야 한다. 알고리즘이 주지 못하는 감동, 데이터가 읽지 못하는 행간을 채우는 것은 결국 사람의 열정이다.
2026년, 다시 운동화 끈을 조이며
12월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다
지금 당신의 책상 위에 놓인 2025년의 성적표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혹은 기대 이상의 성과에 고무되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잊지 말자. 우리는 장기 레이스를 뛰고 있다.
양귀자의 소설 속 주인공처럼 삶의 모순을 받아들이고, 도킨스의 유전자처럼 치열하게 적응하며 생존해 나가자. 그리고 무엇보다, 차가운 AI 기술 위에 당신의 뜨거운 땀방울을 덧입히자. 2026년, 울산의 빛이 될 주인공은 가장 스마트한 AI를 가진 기업이 아니라, 그 AI를 통해 가장 인간적인 가치를 만들어낸 기업일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서비스에서, 짙은 땀 냄새가 나기를 응원한다.

'교계 > 다음세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나는 포도나무, 너희는 가지" (0) | 2026.01.03 |
|---|---|
| 홈스쿨링과 시골교회 “친구가 된다는 것은(1)” (1) | 2026.01.03 |
| “미래를 바꾸는 두 가지 선택_장미와 찔레 (The Rose and The Wild Rose) ” _조동성 교수, 김성민 제자 공저, IWELL 간행 (1) | 2025.12.05 |
| 다니엘어린이학교_원아모집 (0) | 2025.12.05 |
| 사단법인 마이코즈(MICOS) “우리는 다음세대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일합니다.” (0) | 2025.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