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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특별기고

종교개혁, 왜 혁명이 아니고 개혁인가?

 


  하마터면 내 손으로 성경 한 번 못 만져보고 신부들의 설교에만 의존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을 할 뻔했다. 15-16세기에 종교개혁이 없었더라면 말이다. 최근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서 여러 신학자들의 이견이 많다. 종교개혁이 과연 타당한 행동이었는지, 방법이 옳았는지 등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신학계 안에서는 지난 3년 전부터 500주년을 맞이하여 종교개혁을 회고해보는 노력들이 일어나고 있다. 종교개혁이 타당했는지, 옳았는지에 대한 고찰은 신학자들에게 잠시 맡겨두고 필자는 본지에서 종교개혁이 왜 혁명으로 불리지 않고 종교개혁으로 이름 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집중해 보고자 한다.


  개혁과 혁명, 무엇인가를 뒤집어엎는 측면에서는 동일한 의미인 것처럼 보인다. 아니 어쩌면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혁명은 뭔가 더 과격한 것 같고 개혁은 좀 더 신사적인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단지 느낌적인 느낌에 의해서 종교 혁명이라 부르지 않았던 것일까? 


  혁명과 개혁에는 그 단어가 가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혁명은 아래에서 부터 시작된다. 인간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가장 소외되고 보호받지 못하는 계층과 분야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여 결국 그 계층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했을 때 혁명이라는 단어를 쓴다. 노예제도를 철폐하고 자유인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했던 노력들을 일컬어 노예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한편 개혁은 위에서부터 아래로의 변화이다. 위에서부터 변화를 추구하기 시작하여 가장 낮고 소외된 계층까지 아울러서 위에서 추구하는 뜻이 아래로까지 모두에게 적용되기까지 성공했을 때 개혁이라고 말한다. 종교개혁, 개혁주의신앙 등. 


  혁명은 인간의 외침이 하늘에 까지 닿게 하는 인간의 노력이라면, 개혁은 하늘의 뜻이 땅에 이뤄지도록 하는 하늘의 노력이다. 혁명은 정의로울 수도 있지만 때론 지극히 이기적인 인간의 주장이 담겨질 수도 있다. 그래서 때때로 억지와 같은 논리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마치 엄마에게 생떼를 쓰면서까지 요구하는 아이처럼. 개혁은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다.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행위는 개혁적이라 할 수 있다. 하늘의 뜻을 가지신 하나님의 사랑이 계층과 계급을 초월하여 모든 인류에게 주신 역사이기 때문이다. 


  종교개혁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누군가의 전유물이 되지 않고 모두에게 주시는 메시지이자 언어이므로 그것이 모든 이에게 돌아가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가? 이것이 종교개혁이 혁명이 아니라 개혁이 될 수 있는 이유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개혁가 이셨다. 하나님의 뜻이 유대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까지 이루어지도록 스스로 헌신하셨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어떤 화려하고 웅장한 대가와 보상이 있지 않았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고대하며 수치와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의 길을 가셨을 뿐.


  크리스천은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제자의 삶으로 부름 받았다. 이는 인간의 잘 됨을 위한 혁명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 온 땅의 구석구석 이루어지도록 하는 개혁을 위해 젊은이들의 가슴이 예수님처럼 뛰어야 한다는 말이다.


  종교개혁을 한지 500년이 지나간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500년이면 강산이 50번 변했을 시간이다. 해마다 종교개혁의 시즌이  다가오면 루터와 칼빈의 생애와 사상을 통해 주는 교훈들을 듣고 생각해본다. 그런데 500년이나 지난 루터와 칼빈의 교훈이 오늘날 우리에게 너무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때론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싶기도 할 지 모른다.


  개혁은 500년 전에만 필요했고, 지금은 필요 없는 일이 아니다. 개혁은 루터와 칼빈 같은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교인 800명을 대상으로 한 어떤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오늘 날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라고 믿는 사람과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이라고 믿는 사람이 60프로라고 한다. 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설문이 아니고, 교회를 다니는 교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의 응답결과이다.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예수님 외에 구원이 존재한다고 믿고, 성경에는 오류가 있다고 생각하는 교인이 40퍼센트이다. 이 조사의 결과가 말해주는 것이 바로 개혁은 여전히 필요함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의 가슴에 개혁이 존재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예수그리스도를 삶의 모범으로 삼아 말씀과 예수님의 삶이 일치되지 않는 내 자신과 씨름하고, 세상 가운데서 성경 속에 하나님의 뜻이 담긴 목소리를 내자. 내가 가진 것이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외면하지 않고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나라를 포기하지 않고 구한다면 당신도 개혁가가 될 수 있다.


  내년 이맘때는 루터, 칼빈의 500년 전 이야기가 아니라 현 시대를 살고 있는 루터, 칼빈과 같은 젊은 개혁가들의 간증과 소개로 이 신문의 지면이 가득 메워지기를 기대해본다.



김보민 기자
열방의빛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