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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행복한 세상 만들기

“글은 칼보다 강하다_시로, 글로”

  요즘 세상은 유난히 차갑다. 말은 빠르고, 판단은 날카로우며, 결론은 늘 서둘러 내려진다. 사람의 사정을 듣기 전에 옳고 그름이 갈리고, 이해보다 승패가 앞선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더 강한 언어를 요구한다. 더 분명한 주장, 더 큰 목소리, 더 자극적인 말들. 마치 언어도 힘을 가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연 세상은 그렇게만 움직여 왔을까?

  역사를 돌아보면, 세상을 바꾼 말들은 언제나 가장 조용한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격한 주장보다 한 줄의 글이, 날 선 논쟁보다 한 편의 시가 오래 남아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왔다. 필자는 그 사실을 오래도록 삶으로 배워 왔다.

   시는 선택이 아니라 삶이 요구한 언어이다.

  필자가 시를 쓰게 된 출발점은 문학을 향한 의욕이나 명성을 향한 욕망이 아니었다. 글은 언제나 삶의 자리에서, 그리고 사람 곁에서 태어났다. 경남 거창에서 나고 자라며,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들을 글로 옮기는 법을 자연스레 배웠다. 감정은 말보다 문장에서 더 오래 머물렀고, 문장은 시간이 흐르며 시의 형식을 갖추어 갔다. 시는 선택한 장르가 아니라, 삶이 요구한 언어였다. 

  글쓰기는 탁월한 재능도 있겠지만, 알고 보면 자기성찰의 성찰의 방식이다. 필자는 초등학교 시절에는 글쓰기반, 중학교 시절에는 독서반, 고등학교 시절에는 문예반을 통해 시화전에 참여하며 언어를 다듬어 왔지만, 글쓰기는 재능을 증명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언제나 성찰의 방식이었다.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과정에서 글은 가장 정직한 도구였다. 

  그 이후 대학시절에 편지나 시로, 또 총회교육원 간사로 섬기며 교재 집필과 편집에 참여했고, 청년과 장년을 아우르는 교육과 문서 사역 속에서 언어가 지녀야 할 공공성과 책임을 배워 갔다. 「기독교보」, 「국민일보」 연재와 부산 극동 생방송 참여와 「울산의 빛」을 비롯한 여러 지면에 글을 발표하며, 필자는 신앙과 현실을 잇는 언어를 오래도록 탐색해 왔다.

   설교로 다 담지 못한 마음, 시가 다시 불러낸 언어

  목회자의 길을 걷다 보니 지속적인 설교와 시의 세계를 더욱 깊게 만들었다. 또 제2영도교회 담임목사로 섬기며 수많은 인생의 순간들과 마주했다. 기쁨의 자리에서는 함께 웃었고, 상실의 자리에서는 말없이 곁에 섰다. 

  때로는 설교라는 형식 안에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마음들이 있었다. 너무 아파서 말이 되지 않는 감정들, 설명보다 침묵이 필요한 순간들 속에서 시는 다시 필자를 불렀다. 시는 가르치지 않는 언어였고, 판단하지 않는 언어였으며, 그저 함께 견디는 언어였다. 사람들이 세상에 살면서 종종 큰 소리 내는 것이 자신을 자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글은 큰 목소리보다 여백을 통해 사유하게 한다. 

  필자의 시에는 큰 목소리도, 과장된 수사도 없다. 대신 절제된 문장과 여백, 그리고 독자가 스스로 생각하도록 남겨 둔 침묵이 있다. 이는 목회 현장에서 길어 올린 태도이기도 하다. 사람의 삶을 쉽게 단정하지 않으려 했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서둘러 해석하지 않으려 했다. 그 겸손함은 시의 결로 고스란히 옮겨졌다. 그래서 필자의 글은 종교적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비교적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었다. 신앙을 주장하기보다 인간을 먼저 이해하려는 시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턱, 신앙 문학과 일반 문학 사이에서

  문학 활동은 역시 이러한 방향성 속에서 이어졌다. 현재 고신문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신앙 문학과 일반 문학이 서로 고립되지 않도록 가교 역할을 감당해 왔다. 시는 ‘종교시’라는 울타리에 머무르기보다 인간의 고독과 기다림, 고난과 회복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담아내며 독자층을 넓혀 갔다.

  필자는 2007년 크리스찬 문학신인상 수상은 문학적 출발을 알리는 계기였고, 이후의 꾸준한 작품 활동은 성실한 시인으로서의 자리를 단단히 다져 주었다. 그동안 삶에서 길어 올린 시의 자리는 『고난은 축복을 만드는 용광로』라는 시집과  『오늘도 사랑의 빵을 나눕니다』는 목회 현장에서 마주한 일상의 장면들을 통해, 나눔과 연대, 그리고 작은 친절이 지닌 힘을 조용히 노래한다. 

  필자의 글과 시는 언제나 추상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출발해 왔다. 이런 걸음들이 있었기에 2025년도에는 한국작가협회에서 주관하는 문학대상에서 시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일반 문단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것은 단기간의 성취가 아니라, 오랜 시간 묵묵히 이어 온 시적 여정에 대한 평가였다. 

  필자의 수상 소감은 의외로 간단하고, 단순했다.   “이 상은 제가 잘해서 받았다기보다, 시를 계속 써도 괜찮다는 허락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말속에는 기쁨보다 감사가, 자부심보다 책임이 먼저 담겨 있었다.

   시로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필자가 시와 글을 통해 가지는 비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시로, 글로 세상을 조금 덜 차갑게 만드는 것이다. 빠르고 거친 말들이 넘쳐나는 시대 속에서, 한 문장이 사람의 걸음을 잠시 늦추고 다시 숨 쉬게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이기기 위한 언어가 아니라, 상처 난 마음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앉는 언어를 꿈꾼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일까? 어쩌면 이 시대가 정말 잃어버린 것은 정의, 진리라기 보다 따뜻함을 드러내는 일에 드러내는 용기가 아닐까? 강한 말만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고 사람을 살리는 언어를 너무 쉽게 내려놓은 것은 아닐까?  

  2026년, 당신의 심장에서 따뜻한 가슴으로 글이나 시를 쓰는 해가 되기를

  막 2026년, 새로운 해의 문을 열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여전히 낡지 않았다. 다만 그것을 말하고, 쓰고, 살아낼 언어가 필요할 뿐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삶을 가장 잘 설명하는 문장은 무엇인가? 당신의 하루를 지켜 줄 언어는 무엇인가? 앞으로 세상을 이기기 위해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 사람을 끝내 포기하지 않기 위해, 오늘 한 줄을 써도 충분하다. 빛은 언제나 조용히 온다. 그리고 그 빛은 생각보다 오래, 그리고 멀리 간다.

  “2026년, 삼위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표현할 수 있는 은사를 주셨다. 사장 시키지 말고 용기 있게 표현하여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마음으로 당신만의 문장을 써 내려가기를 진심으로 두 손 모아 소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