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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다음세대

이 땅에 푸르고 푸르러야 할 이름, 청년

 

 풀릴 줄 모르는 취업난, 쌓아도 쌓아도 끝이 없는 스펙, 게다가 코로나19까지.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 끊이지 않는 이 땅의 청년들이 참된 평화와 하나님 나라를 꿈꿀 수 있도록 이번 호부터 ‘청년’들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할 계획이다. 지친 우리 모두의 심령에 새 힘을 불어넣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 편집자 주  



  청년, 이 땅에 푸르고 푸르러야 할 이름이다. 푸르러야 할 청년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매달려 불안해 하고 걱정을 한다. 좌절과 실패를 딛고 일어선 청년들의 성공담은 마치 옛 이야기처럼 들린다. 푸르고 푸르러야 할 청년은 세상 속에서는 푸르름을 나타내기도 전에 먹고 사는 문제로 씨름하다가 지쳐가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크리스천 청년조차도 교회 안에서 점점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 땅에 푸르고 푸르러야 할 청년들이 이처럼 먹고 사는 문제와 혼신을 다해 씨름하느라 힘을 잃어가고 있는 이 때, 청년이 이처럼 푸르름을 잃어버린 원인이 무엇일까? 필자는 생각해 보건데, ‘예배’의 부재가 원인이라고 짐작한다.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일방적이다. 심지어 ‘코로나 시대’를 접어들면서 예배도 ‘인강(인터넷 강의)’처럼 되어가고 있다. 

 

 

 

  살아있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교감을 하는 시간이 ‘예배’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분을 발견하는 시간이 ‘예배’이다. 기도와 말씀으로 도전을 받는 시간이 ‘예배’이다. 하나님이 우리 크리스천에게 주신 강력한 시스템이 바로 ‘예배’이다. 구약성경에서 제사장, 선지자, 하나님께 쓰임 받은 왕들의 특징은 이런 ‘예배’를 드릴 줄 아는 자들이었다. 이들의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다. 이들의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에 따라 순종했을 때 따라오는 영향력으로 정치, 사회, 문화적인 면을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어갔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주신 ‘영적인 권위’였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크리스천에게도 이러한 ‘영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종교 생활로서 ‘예배를 드려 드리는 동안 ‘영적인 권위’를 놓쳐버렸다. 그래서 요즘 같은 코로나의 현실 속에서 ‘예배’를 드릴 때 세상으로부터 ‘자기들 만을 위한 이기적인 모임’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종교생활 같은 ‘예배 드려 드림’에서 ‘살아있는 예배’를 회복할 때 청년들은 푸르름을 회복하고, 동시에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도래하게 될 것이다.


  필자는 과감하게 청년들에게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다. 살아있는 ‘예배’에 대한 목마름을 가지고 하나님과 교감하자. ‘예배’의 회복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고, ‘사명’의 회복이며,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로 행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다. 하나님은 오늘 이런 ‘예배’를 받기를 원하시고 이런 ‘예배하는 청년’을 찾고 계시기 때문이다.


김보민 목사
열방의빛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