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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교계일반

『바울이 절망에 무릎을 꿇을 수 없었던 이유 5_소망』

절망에 무릎 꿇지 않았던 바울의 삶의 특성

    절망에 무릎 꿇을 수 없도록 바울을 붙잡아 준 “소망”은 그로 하여금 불굴의 삶을 살게 하였다. 그는 그와 동료 인간들이 겪어야 하는 고난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가지게 되었고 여전히 부족한 교회에 대해서도 소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이로 인해 그의 사역은 늘 어려움을 동반했지만 종말론적인 책임감과 확신을 가지고 이루어졌다.

  1. 고난에 대한 이해

  소망의 사도였던 바울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겪고 있는 환난을 오히려 자랑한다고 표현한다 (롬 5:3). 왜냐하면 환난이 인내를 가져오고 그 인내가 단련된 인격을 낳으며 단련된 인격이 소망을 낳기 때문이다 (롬 5:4).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바란다면 참으면서 기다려야 한다고 가르친다(롬 8:24~25). 마지막 날에 참여하게 될 영광의 소망을 가지고 있다면(롬 12:12상반절) 사람은 환난 당할 때 참으며 꾸준히 기도할 수 있다 (롬 12:12하반절).

  사도 바울은 실제로 자신이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었는지 고린도 후서에서 여러 번 언급을 한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는”(고후 4:7~8) 이유는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하고” (고후 4:10)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 알”(고후 4:14)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그의 종말론적인 소망이 그로 하여금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견디게 한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을 잘 따른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에게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함께 “소망의 인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둔 소망을 굳게 지키는 인내”: 표준 새번역)라는 매우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고난과 환난이 가득 찬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마지막 날까지 우리에게 보증이 되어주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신 것을 증언하시는 성령님께서(롬 8:16) 우리가 환난 가운데 참고 기다릴 때 (롬 8:25)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신다(롬 8:26 상반절). 그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 (롬 8:26하반절).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로마서 8:15; 갈 5:16, 25)을 살라고 권고한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롬 15:13)라고 기도한다.

   2. 교회에 대한 소망

  사도 바울은 자신이 세우고 섬기는 교회들이 수많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그는 소망을 잃지 않고 교회를 세우기를 위해서 진력한다. 그토록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쓸 때에 그는 그들을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고전 1:2)라고 부른다. 비록 지금 많은 문제를 안고 있고 육신에 속하여 아직도 분쟁과 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고전 3:1~3) 있지만 그는 그들을 이미 시작된 메시아의 나라의 시민으로 보았고 (엡 2:19; 빌 3:20) 그렇기 때문에 그 들 가운데서 그들을 “거룩하게”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교회가 미성숙하고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때도 절망하지 않고 쉬임없이 자신의 달려갈 길을 달려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속의 사역 때문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자신이 피값으로 산 교회를 위해 일하고 계시는데 그 사역은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워”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시는 것이다 (엡 5:27). 바울은 현재 교회의 부족함과 약함으로 좌절할 수도 또한 그에 적당히 타협할 수도 없었다. 그를 부르신 주님께서 지금도 그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셨음”(엡 5:25)을 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회는 이 마지막 때에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이시다 (엡 1:23). 단순히 교회가 도덕적으로 순결해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이렇게 온전해진 교회를 통하여 허무에 굴복하는 만물(로마서 8:20)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온전하게 회복하는 사명이 교회에 맡겨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이해하고 있다. 고린도 후서 11:2에 보면 자신이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고린도 교회)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 고백한다. 이 본문의 배경에 대한 다양한 제안들이 있지만 그는 자신을 고대 유대의 풍습에 그려지는 아버지의 모습을 여기에 그리고 있다. 딸을 약혼하게 하고 결혼 때까지 딸을 잘 보양하여 시집을 보내는 이미지를 그림으로써 사도 바울은 자신이 이 교회를 출산(고전 4:15; 비교: 갈 4:19)하였을 뿐 아니라 장성하여 성결케 하여 그리스도께 마지막 날에 드리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그가 세우고 목회한 교회의 성도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우리 주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서” “소망이며 기쁨이며 자랑의 면류관이며 영광”이라고 (살전 2:19-20; 빌 4:1)라고 고백한다. 이러한 종말론적인 소망 위에 그는 각 교회에 대한 이 땅에서의 소망을 피력한다. 예를 들어 고린도 교회가 당한 고난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자신이 고난 가운데 위로를 얻었던 것처럼 그들도 “고난에 참예한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알고 이러한 자신들의 소망이 더욱 견고하다고 전한다 (고후 1:7). 또한 고린도 교회에게 마게도니야의 교회들이 환난 가운데 드린 연보를 칭찬하면서 그들이 “우리가 바라던(소망하던) 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렸다”(고후 8:5)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종말론적인 소망관이 각각의 교회에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소망함으로 이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