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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교계일반

『도난당한 색깔』

“집단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여 책임질 일도 없는 예루살렘의 아히히만이 내 속에서 역사하지 않길 기도합니다.”

흥미로운 그림책 중에 박혜린 작가가 쓰고, 이수아 님이 그린『색깔 도난 사건』이란 그림책이 있다. 밤이 되면 색깔이 사라지는 것을 어린 탐정의 마음으로 만들어낸 이야기다. 모두에게 두려운 밤을 저렇게 맛깔스럽게 풀어낼 수 있는 것이 동화 작가의 특권이다.

  밤은 아름다운 각양의 색을 훔쳐 간다. 밤은 빨강, 노랑, 파랑, 주황, 초록 등 거리의 사람들의 마음을 담아내던 모든 색을 삼켜버린다. 김밥집도 사라지고, 정겨운 이름으로 손님을 유인하는 토지 보리밥집, 이모님들의 머리를 책임지는 이브 미장원, 서민들의 입맛을 돋우는 153 산내식당, 심지어 도란거리듯 펼쳐진 교회들도 밤만 되면 사라진다. 밤이 훔쳐 간 것이다.

  다양성이 소멸되는 시간이 어둠이다. 밤이다. 획일화된 밤의 거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우울하게 하고, 결핍된 창의성으로 각 사람의 마음을 잔인하게 한다.

  1985년 1월 논산훈련소에 입대해서 훈련을 받던 중에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소대장이 훈련을 마친 후 총기를 점검하고 있는데 들어오셨다. 그리고는 모자 아래로 눈이 보일락말락 한 각도에서 날카로운 목소리로 짧고 굵게 툭 던졌다. “군은 통일이다. 이 말을 명심하기 바란다.” 그리고는 곧장 나가셨다. 그다음 날 대대장실로 한 명씩 호출당하여 들어갔다. 내 앞으로 온 국회의원 투표용지를 나의 코 밑에 내밀고는 “누구를 찍어야 되지?”라는 대대장의 굵은 남 저음의 목소리는 누구라고 선택할 여지도 없이 당시 여당 국회의원의 이름이 있는 공란에 투표하게 했다. 강압적인 분위기에서…나의 색이 도난당하는 시간이었다. 그 사건은 내 평생에 단 한 번의 시간이었지만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을 사건이었다.

  목사님들 중에는 일반 대학에서 다양한 학문을 전공하고 대학원에 오신 분들이 많다. 산부인과 의사, 변호사, 공군 장교, 경찰관, 영어 교사, 성악가, 공대생 ,철학을 비롯한 다양한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많다. 그뿐 아니라 자기 전공과 상관없이 특별난 재능을 가진 이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신학대학원 3년을 지나고 나면 자기의 재능이나 전공은 어디론가 도둑맞은 사람들처럼 모두가 엇비슷한 사람이 된다. 어셈블리 라인에서 나온 곰 인형 같은 느낌이다. 밤이 임한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신학을 바탕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자기 색상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목양의 길을 걷는 이들은 교회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자기다움의 목회를 하고 있다. 밤에 의해서 빼앗기지 않은 자기다움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의령에 가면 신학대학원 다닐 때 시골로 간 한 목사님이 계신다. 20대에 목양지를 따라간 곳에서 60대 중반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고등학교 때 실업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목수 일을 배웠는데 그때 사용했던 대패를 지금도 가지고 계시다. 교회 뜰을 직접 고치고 수리하고 인근 시골교회 사택과 화장실 그리고 예배 처소를 인테리어를 하면서 여전히 그 자리에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다. 자기 색을 빼앗기지 않고 밤을 물리친 덕분이다. 그의 SNS 닉네임은 “시골사랑”이다.

  정치인들의 세계에서도 밤에 의해서 도둑맞은 모습이 즐비하다.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당론에 의해서 결정된 이야기만 앵무새처럼 쫑알거린다.

  밤에 의해서 색깔을 도난당하면 패거리 문화를 선호한다. 패거리의 이름으로 말하고 깃발을 흔든다. 작은 형태의 전체주의다. 집단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니 책임질 일도 사람도 없는 것이다. 양심이 화인을 맞은 것이다. 이것이 <예루살렘의 아히히만>이다. 공무원으로써 그냥 자기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던 나치 부역자 아히히만.... 

  아히히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밤의 침공에 내게 주신 색을 도둑맞으면 아히히만이 역사한다. 그는 지금도 내 안에 아주 가까이 있다. 깨어서 근신해야 한다. 내게 주신 은혜를 따라 내게 부여된 색깔이 소멸되지 않도록 성령을 구해야 한다. 그때 우리는 자기다움, 진정한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4:10)         

편집국장 최성만 목사(울산오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