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브의 사과처럼 붉은 유혹은 사람을 혼미케 하는 매력이 있는가? 아내가 내민 사과를 받아쥐고 테이블에 앉는다. 전등에 반사된 은빛 과도의 반짝이는 섬뜩함을 슬며시 뒤로 감추며 사과를 깎는다. 단박에 목숨을 끊어야만 덜 아픈 냉혈한 마음처럼, 과감하게 꼭지 부분을 칼로 한 번 내려찍는다. 손에 최대한 힘을 빼고 칼의 방향을 잡는다. 최대한 껍질이 끊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칼을 민다. 바람의 결처럼, 푸른 보리밭의 이랑 사이로 불어오던 봄바람처럼 칼은 리드미컬하게 미끄러져 간다.
어머니가 그랬다. 길게 끊어지지 않게 잘 깎으면 장가를 멀리 간다고. 그래. 진정 그렇단 말이지.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밑도 끝도 없는 속설을 품고 언제나 과일을 깎을 땐 조심스럽게 온 정성을 쏟았다. 최대한 길게, 최대한 가늘고 좁게 깎았다. “니는 어째 이리도 여자보다 더 과일을 잘 깎노” 보는 이마다 칭찬했다. 윗동네의 교회 후배를 사랑하면서부터 과일 깎는 게 싫었다. 그런데 어쩌랴! 뚝뚝 껍질이 끊어지기를 바랐지만, 매번 그것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최대한 길게 이어졌다.
아내를 바라본다. 아는지 모르는지 “당신 과일 깎는 솜씨는 최고야!” 한 마디를 남기고 돌아선다. 반쯤 깎은 사과를 몇 조각으로 나누어 접시에 올려놓고 먹기 편하게 이쑤시개를 꽂았다. 그리고 물끄러미 바라본다. 과즙이 향기를 내며 식탁을 적신다. 음악이 흐르고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그런데도 선뜻 사과를 집어 먹지를 못한다. 가만히 사과를 오래도록 들여다본다. 갑자기 우리나라의 반도 같다. 한 허리가 잘린 슬픈 역사의 단면이라고 보이자 시가 온다.

반쯤 깎다 말고 접시에 앉은 사과
남과 북 슬픈 역사 반도의 지도 같다
과도가 옆에 놓여서 더욱 아픈 정물화
겨누는 총구처럼 이쑤시개 몇 개 꽂혀
왠지 덥석 천연스레 빼 들지를 못하겠다
햇살이 길게 내려와 오른손 덮을 때까지
「사과가 있는 정물」 전문
한 나라로 살아가도 세계열강의 대열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이 시대에 왜 이토록 잔인한 국토의 분열이 있어야만 하는가. 민족의 갈라짐은 뼈아픈 상처다. 치유될 수 없는 이데올로기의 감당키 어려운 사실이 숨 막히게 아프다. 총구를 겨누고 서로를 적대시하는 마음을 거두어들여야 한다. 화평의 온기로 평화의 시대를 열어야만 한다. 이 지상 최대의 과제가 지금 앞에 있다.
하얗게 제 속살을 내보이는 온유의 아름다운 미학! 나는 슬며시 칼을 거두어들인다. 제 몸에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천연스럽게 앉은 저 무욕이 나를 더 아프게 한다. 미끈한 제 몸의 떨림이 여운으로 와 닿을 때 궁극의 포용이 미완을 건너 완성으로 이어지기를 두 손 잡는다.
줄무늬 블라인드를 올리자 정오의 햇살이 창을 건너와 거실에 번진다. 두 감정의 소용돌이가 잠잠히 바닥에 앉는다, 종소리의 가느다란 여운처럼.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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