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러는 독서의 심급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독서의 기술을 책을 통해 전수하고 있다.
애들러의 3단계 독서법
- 읽기의 기초, 개관독서(1단계)_(지난 호에서)
- 독서의 핵심, 분석독서(2단계)
2단계는 분석독서다. 개관독서의 과정을 거쳐서 선별된 책들을 읽어내는 방식이다. 도움이 되는 책은 훑어 볼 것이 아니라 꼼꼼하게 씹고 소화시켜야 할 책이다. 분석독서에서 가장 우선적인 일은 주제파악이다. 책이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길어내는 일이다. 좋은 책은 책 전체가 일관되게 흐르는 중요한 사상이 있기 마련이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흘러가는 책의 핵심을 한 문장 혹은 몇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때, 책의 주제를 파악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논문을 심사하는 교수들이 빼놓지 않고 던지는 질문 중에 하나가 “이 논문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이다. 전체를 흐르는 핵심이 무엇인지, 중요한 사상이 무엇인지 주제가 정렬되어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몇 문장으로 된 주제문을 한 단어 혹은 몇 단어로 요약하면, 그 단어가 책의 제목 내지는 핵심적인 키워드가 될 것이다.
주제라는 내용은 구조를 통해 표현된다. 책이 건물이라면, 구조는 설계도라고 말할 수 있다. 개집을 지어도 계산을 하고 짓는다. 건물을 지을 때처럼, 글을 짓는 일도 설계도면이 필요하다. 구조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글을 지어가는 저자가 설계도에 근거하여 건축해 나간다면, 독자는 거꾸로 지어진 건축물을 펼쳐서 분석을 통해서 설계도를 파악하여 핵심으로 역 추적해 가야한다. 저자는 이러한 분석독해작업은 X-ray찍기에 비유한다. 책을 꿰뚫어보는 통찰을 위해서는 구조파악이 필수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분석독서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4가지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 첫째, 이 책은 무엇에 관한 책인가? 주제가 뭐냐는 질문이다. 둘째, 저자의 주장과 논점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주제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파악하는 일이다. 셋째, 저자의 주제에 대한 주장에 대해 나는 찬성하는지 아니면 반대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저자의 의견에 함몰되어 가지 않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가지고서 읽어나가야 찬성과 반대가 가능하다. 넷째, 이 책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정보를 다루는 책이든, 삶의 문제나 사상에 대한 내용이든지 이 책이 주는 의의가 무엇인지를 정돈하는 일이다. 분석 작업을 통해서 저자가 해결하려하는 물음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읽어내기 힘든 문장은 꼼꼼하게 반복해서 읽어내고, 책 전체 가운데서 핵심적인 문장들을 길어내고 발췌하여 반복하는 일도 병행하면 좋겠다.
- 독서의 꽃, 종합독서(3단계)
3단계는 종합독서다. 독서의 꽃이자 열매를 맺어갈 수 있게 하는 고급단계의 독서법이라고 할 수 있다. 종합독서는 달리 표현해서 ‘주제별 독서’라고도 부른다. 분석독서처럼 한 권의 책을 분석하고 해체하며 독파하는 방식과 달리 연관된 여러 책들을 종합해서 읽어내는 기술이다. 한 저자가 아니라 여러 저자들의 의견들을 비교하여 함께 다루기 때문에 ‘비교독서법’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개관하여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을 분석해서 읽어내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주제에 따라 읽어내는 독자가 주인이 되어 여러 책들을 배열하는 작업이다. 책의 저자들마다 다른 의견들을 소주제들 안에 분류하여 배열하고, 찬성과 반대를 통해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여 드러내는 심급단계의 독서법이다. 여러 의견을 종합하여 찬반을 따지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저자의 수준에 이르게 하는 단계다.
애들러의 독서의 기술의 단계는 실상 고대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관된 방식이다. 내용들을 흡입하는 문법단계를 지나 논리단계에서는 분석하고 찬반을 따지고 질문하게 되고, 수사단계에서는 여러 의견들과 주장들을 종합하여 자신의 고유한 의견을 가지게 된다. 책을 짓거나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종합독서의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 고대 사람들은 대학으로 가기 위한 기본적인 단계로 트리비움(Trivium)의 목표 즉, 종합독서를 통한 수사단계로 보았다. 여기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의견을 상대와 교환하며 토론할 수 있고, 보다 깊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독서에도 기술이 필요한가? 그렇다. 독서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대화하고 소통하는 삶을 정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상대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수 있고, 파악할 수 있고 반응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독서의 기술, 저자와의 대화법을 배워야 한다. 이론적으로 「독서법」을 아는 것만으로는 별반 차이를 내지 못한다. 독서법이 실제로 적용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기술이 존재해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지 않으면 자기 것이 될 수 없다. 독서에 기술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이라면, 독서법을 알아가고 자신의 것으로 삼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병행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책들이 넘쳐나는 시대다. 서점을 빼곡하게 매운 책들을 보면 기겁할 정도이다. 매월 매주 신간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필요한 책을 선별하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버렸다. 고대의 사람들에게 쥐어진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서가와 지금 나의 서재와 비교해 볼 때 선비들의 서재는 형편없이 초라해 보일 것이다. 서재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닌 듯하다. 그들은 대가가 되었어도, 나는 아직 그들을 알아가는 학생으로 서 있는 이유가 있다면, 분석독서의 차이에서 일 것이다. 퇴계는 「천자문」부터 시작된 글공부와 「논어」로 시작된 본격적인 공부에서 책을 수천 번을 반복해서 읽으며 모조리 암기해 버렸다. 분석을 넘어 자신의 것으로 체화시키는 단계로 나간 셈이다.
챨스 헤돈 스펄젼은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천 번 읽었다. 김득신은 사마천의 「사기」를 십만 번을 넘게 읽었다. 그는 30여권의 책을 만 권을 훌쩍 넘겨 읽었고, 자신의 독서기록부에 「장자」「대학」「중용」을 뺀 이유로 만 번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선배들은 책을 100번, 1000번을 넘어 책을 통째로 암기하고 늘 암송하는 방식으로 나아갔고, 여기에 책들이 보태어지고 사상들이 마음속에서 벼루어지면서 자신만의 사상이 빚어지게 되었다. 아더 핑크는 “한 두 명의 저자에게 보내는 시간을 다른 20~30명의 저자보다 50배 넘게 더 많이 할애하라”고 말한다. 개관과 분석독서에 대한 훌륭한 조언이 아닐 수 없다.
독서모임이 존재하는 교회
분석의 단계 없이 종합의 단계, 수사의 단계로 나갈 수는 없다. 분석의 단계를 건너뛰게 되면 편견에 사로잡힌 책이 되거나 졸작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독서모임을 만나고 참여하는 길은 긴요한 일이다. 더불어 심급단계에 해당되는 토론으로 진행되는 모임이면 더욱 좋겠다. 책을 통해 저자를 만나고,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책들(human-books)이 만나 어우러져 서로를 날카롭게 벼루어가는 아고라를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 하겠다.
당신에게 독서란 무엇인가? 독서가 당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아니면 어떤 영향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가? 당신의 인생 책은 무엇인가? 당신만의 독서법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가? 독서토론 모임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이 많다. 교회에서 신앙서적을 포함한 교양서적을 함께 읽어내는 사랑방들이 여럿 만들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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