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만족에게 어떻게 기독교가 전해졌을까? 게르만족이란 용어를 처음 쓴 사람은 카이사르(시저)다. 카이사르가 현재의 갈리아지방(현재의 프랑스, 독일 등 지역)을 점령하면서, 라인강과 도나우강 너머에 있는 사람들을 게르만인이라 불렀다. 중국의 한족이 변방에 있는 민족을 오랑캐라 부른 것과 유사하다.
게르만족은 프랑크족, 고트족, 반달족, 앵글로 색슨족, 부르군트족, 알레마니족을 포함하여 20여 족속이 있다. 우선 프랑스는 프랑크족, 독일도 프랑크족, 영국은 앵글로 색슨족, 스페인은 서고트족, 이탈리아는 동고트족이 조상이다. 이 정도만 기억하자.
게르만족은 4세기 스칸디나비아에서 따뜻한 남쪽 나라 로마 통치령으로 이동을 시작했는데, 아시아계 훈족이 서진(공격)하자, 서쪽에 있던 게르만 고트족이 이탈리아 로마로 이동하게 되었다. 고트족이 로마 지역을 침공하자, 로마제국은 로마 중심부를 지키기 위해 갈리아 지역(현재 프랑스, 독일 등)을 포기하고, 영국도 포기한다. 이때 게르만족이 독립하여 프랑스, 영국, 스페인 등 유럽 각지에 나라를 세운 것이다.
서고트족은 408년에서 410년까지 세 번이나 로마를 포위하고 410년에는 로마 시내까지 침입하여 약탈, 폭행, 살육을 저질렀다. 결국 서로마 제국은 게르만 장군 오도아케르에 의해 476년 서로마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가 폐위당하며 막을 내렸다. 이는 새로운 유럽 재편의 신호탄이 되었다. 서로마가 멸망하자 동로마 황제(제노)는 동고트의 테오도리크와 손잡고 오도아케르를 살해(493년)하여, 동고트의 테오도리크가 이탈리아를 차지했다. 테오도리크는 이민족의 침입과 약탈을 막아주며 로마시민에게 호응을 얻었다. 테오도리크는 당시 강국이었던 프랑크왕국의 클로비스 1세의 딸과 결혼하는 등 로마제국과 주변 게르만족의 중재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한편 나라가 망한 로마시민은 게르만족의 통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서로마 제국을 점령한 동고트족은 아리우스파 기독교였으나, 로마제국은 삼위일체 정통파 기독교였다.
아리우스파는 ‘예수는 피조물이다.’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여 325년 니케아 공의회와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되고, 추방되어 로마 본토가 아닌 변방 게르만족에게 포교 활동을 했기 때문에 게르만족의 대부분이 아리우스파였다.
그런데 496년에 중요한 사건이 발생한다. 강력한 프랑크왕국의 왕이었던 클로비스 1세가 496년에 정통파 기독교로 개종한 사건이다. 이는 정통 기독교인이었던 부르군트족 아내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물론 정치적인 목적도 있었다. 정통파 기독교를 믿고 있는 로마 지역에서 통치를 위해서는 정통파 기독교로 개종이 필요했을 것이다. 프랑크왕국의 클로비스 1세의 정통 기독교의 개종은 서로마의 정신적 지주인 교황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권위도 높이려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위에서 보듯이 공의회에서 정죄되어 쫓겨난(디아스포라) 아리우스파가 비록 초기에는 아리우스주의를 전했지만, 결국 프랑크왕국이 정통파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요, 하나님의 역사였다.
또다시 왕의 개종 사건이 발생한다. 이베리아(스페인)를 통치하던 서고트족의 레카레드 1세는 정통파 기독교를 박해하고 소수의 고트족만 믿는 아리우스파 기독교를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판단하고, 주변의 정통파 기독교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레카레드 1세는 정통파 기독교로 개종하여, 589년 정통파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했다. 레카레드 1세는 고트어로 이루어지던 아리우스식 예배를 금지 시키고, 몰수했던 정통파 교회 재산을 모두 돌려주고 파괴된 수도원과 정통파 교회를 복원했다. 이 또한 디아스포라였다.
디아스포라는 그리스어에서 ‘~너머’를 뜻하는 ‘디아(dia)’와 ‘씨를 뿌리다’를 뜻하는 ‘스페로(spero)’의 합성어이다. 하나님은 항상 경계와 한계를 넘어 씨를 뿌리시는 하나님이시다.
한편, 서로마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된 동로마는 교리논쟁이 활발했다. 431년 에베소 공의회와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는 네스토리우스 주의(예수는 신성과 인성이 결합된 존재라고 주장, 삼위일체 불인정)를 정죄했다. 네스토리우스파도 아리우스파처럼 디아스포라 했는데, 436년 동쪽 페르시아에 정착했다. 동쪽으로 간 네스토리우스파는 페르시아 지역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고, 인도와 중국까지 기독교가 전파되었다.
지금까지 4대 공의회와 하나님의 디아스포라 선교에 대해 살펴보면서, 성경의 역사 속에 흐르는 몇 가지 디아스포라를 생각해 봤다. 출애굽의 디아스포라, 남유다 멸망의 디아스포라, 예수님 부활 후 증인 된 사도들의 디아스포라, 심지어 이단들의 디아스포라까지 하나님 섭리의 역사는 도도히 흐름을 느꼈다.
이 시대는 하나님이 없는 철학과 포스트모더니즘과 각종 차별금지법 등 기독교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 일어나 세상을 잠식하고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승리하도록 섭리하시고 간섭하시고 인도하실 것이다. 박해와 고난과 흩어짐은 기독교의 생명력이다.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의 디아스포라를 꿈꾸며 땅끝으로, 다음 세대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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