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교회 사역의 가장 큰 기쁨과 감동은 단연 다양한 국적과 민족, 언어와 문화의 사람들이 함께 드리는 글로벌한 예배다. 그때그때 다르지만 우리 교회는 한국, 필리핀, 남아공, 미국, 캐나다, 영국, 중국, 네팔 등 5~8개국의 사람들이 모여 매주 한국어와 영어로 함께 예배드린다.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나 찬양을 부를 때, 성경 본문을 읽을 때, 자신에게 편한 언어를 사용하고, 설교 말씀도 매주 한국어와 영어로 제공된다. 기본 설정은 한국어와 영어지만, 필요할 때는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등 다른 외국어로 번역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리고 예배 후에는 따갈로그어, 영어, 한국어 등 언어별로 이루어진 원띵(One Thing) 소그룹 모임을 통해 각자 받은 은혜를 현장에서 모국어로 나눈다. 한 달에 한 번은 포틀럭 파티를 통해 필리핀, 인도, 남아공, 한국 등 각 나라의 전통음식을 먹을 수 있다. 이렇게 서로 인종도 국적도, 언어나 문화도, 피부색도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고 교제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전세계가 이 작은 공간에 들어와 세계 인종/문화 박람회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런 다민족, 다언어, 다문화 예배에는 일반적인 한국인 교회나 외국인 교회(또는 외국어예배부)에서는 누릴 수 없는 감동이 있다. 그런데 이런 다문화적 예배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가? 그 기원과 뿌리를 성경에서부터 찾는다.
첫째, 교회는 그 시작부터 다민족, 다언어, 다문화 공동체였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첫 번째 교회가 역사 속에 탄생했다(행 2장). 그곳에서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들은 본래 억양이 강한 갈릴리 출신의 사람들이었지만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최소 15개 이상의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로마 세계 전역에서 모인 사람들이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라며 그 충격을 표현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첫 지상교회의 모습이다. 교회는 그 태동부터 글로벌했으며, 다언어, 다문화 공동체였다.
이런 다문화, 다언어, 다민족 예배는 바벨탑의 역전 사건이었다. 창세기 11장에는 인류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흩어지지 않으려고, 하늘까지 닿고 스스로의 이름을 내려고 높은 탑을 쌓은 이야기가 나온다. 인간들의 불순종과 교만을 기뻐하지 않으셨던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내려오셨고, 그들의 언어를 나누심으로써 소통이 어려워진 그들은 흩어졌다.
하지만 사도행전 2장에서는 그 바벨탑의 역전과 반전 사건이 등장한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던 사람들 가운데 오순절에 성령 하나님이 또다시 내려오셨다. 이번에도 언어가 나누어졌지만, 그 언어는 뜻을 알아듣고 소통이 가능한 언어였고, 하나님은 흩어진 사람들을 하나 되게 하셨다. 그 현장에서는 언어와 문화가 나뉘어진 채로 모두가 하나님을 경배했다.
또한 민족과 언어와 문화를 초월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 되는 것은 예수님의 간절한 소원이었다. 이런 바벨탑의 역전 사건이 있기까지에는 엄청난 대가 지불이 필요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그 대가를 친히 지불하셨다. 요한복음 17장에는 그분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 아버지께 올려드린 기도가 기록되어 있다. 그분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백성의 하나됨을 위해 기도하셨다(11, 21-23절). 이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뜻이었고, 자신이 그 기도의 응답이 되고자 직접 십자가를 지셨다. 에베소서 2장에 기록된 것처럼, 십자가를 통해 모든 인종적, 문화적 장벽을 허무셨고 자신 안에서 함께 지어지는 성전이 되는 길을 여셨다.
마지막으로, 다민족, 다문화, 다언어 예배는 앞으로 천국에서 드릴 영원한 예배를 미리 맛보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7장에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 양을 예배하는 장면이 소개된다. 이것은 장차 미래에 이루어지고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하나의 표준 언어나 문화나 민족으로 자기 백성들을 통폐합하지 않으신다. 하나님 나라는 인종과 국적, 문화와 언어를 초월한 백성들의 모임이며, 마지막까지도 우리 고유의 언어와 문화와 민족성을 그대로 가지고 다양한 민족과 언어와 문화의 사람들이 함께 하나님을 예배할 것이라는 장차 완성될 그림이다.
그런데 바로 다문화 교회의 예배를 통해 그것을 지상에서 미리 경험할 수 있다. 처음 우리 교회를 방문한 분들에게 예배가 어땠는지 물어보면 이런 소감을 나눌 때가 있다.
“오늘 예배 정말 감격적이고 좋았어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언어로 함께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천국에 가면 이렇게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을까?’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천국의 예배를 미리 맛본 것 같았어요.”
그렇다. 천국에는 어떤 완수해야 할 일이나 사역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는 곳이며, 끝없는 예배가 드려지는 곳이다. 비록 천국에는 우리가 지상에서 겪는 언어와 문화적 차이로 인한 오해와 갈등은 없겠지만, 천국은 이렇게 서로 다양한 인종과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다름을 기뻐하며 하나 되어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다. 그리고 다문화 교회는 그 좋은 천국의 예배를 미리 맛보고 경험하는 일종의 ‘천국 시식 코너’이자 ‘천국 모델 하우스’와 같은 곳이다.
인도의 선교사이자 교회성장학자였던 도널드 맥가브란은 ‘동일집단원리’(Homogeneous Unit Principle)를 주장했다. 서로 다른 그룹끼리 있으면 불편하고 넘어야 할 장벽이 많기 때문에, 교회 성장과 선교의 열매를 맺으려면 인종, 민족, 문화, 언어, 사회경제적 수준 등 동일하거나 비슷한 집단들을 대상으로 사역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정말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편안한 환경에 머무르고 싶어 하고, 누구나 나와 동일한 민족, 문화, 언어 집단에 소속되고 싶어 한다. 누구도 자발적으로는 민족적, 언어적, 문화적, 사회경제적 경계를 넘어서는 불편을 겪고 싶지 않다. 초대교회 신자들도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박해 이후에야 비로소 예루살렘을 벗어나 사마리아와 타 문화권 선교를 시작했다(행 8). 그래서 이렇게 자신의 민족과 언어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서는 다문화 사역은 현실적으로 참 어렵다.
하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종적인 목표이자 궁극적인 비전이 ‘교인 수 증가’나 ‘교회 성장’일까? 오히려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처럼 ‘하나님의 백성의 하나됨과 연합’이 아닐까? 그렇다면 인종과 국적, 문화와 언어를 초월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되는 이 다문화 교회의 사역은 참으로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민족과 언어와 문화의 사람들이 함께 주님의 몸을 이루어가는 일은 매우 느리고 불편한 일이다. 우리 성도님들은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찬양을 부르고 설교를 들어야 하기 때문에, 모두가 2주에 한 번 이렇게 ‘외국인’이 되는 불편한 경험을 한다. 특히 한국인들은 내 나라에서 외국인 경험을 하는 것이 더 불편하다. 그래서 기존 한국 교회에서의 편함을 추구하는 한국 사람들은 우리 교회에 정착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디 가더라도 함께 가는 것의 가치, 성경적 교회상을 꿈꾸는 이들이 우리 교회에 멤버가 된다. 가족이 되어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천천히 세워간다. 우리 교회가 느림과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며 기쁨으로 함께 걸어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바로 우리를 위해 더디고 불편한 길을 앞서 걸어가셨던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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