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과 외국인으로 이루어진 다문화 교회를 섬긴다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한국인들이 외국인들에게 가르치거나 도움 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경우도 있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10년 넘게 이주민들을 만나 사역을 하면서 오히려 그분들은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어 그분들로부터 배울 것이 참 많음을 깨닫는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기다림을 즐기면서 기꺼이 긴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 즉 ‘고귀한 시간 낭비’의 가치를 아는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기다림을 힘들어한다. 아무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을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이며, 낭비라고 생각한다. 특히, 직장이나 교회에서도 이왕이면 주어진 시간 안에 더 많은 일을 하는 멀티 태스킹(multi-tasking)이 가능한 사람을 선호한다.
대중교통을 타거나 길을 걸으면서도 강의를 듣거나 업무를 진행하고, 신호가 바뀌었는데 단 2-3초 만이라도 출발이 늦어지면 뒤에서 울리는 시끄러운 경적 소리를 들어야 한다. 엘리베이터에서도 타자마자 습관적으로 ‘닫힘’ 버튼을 누르며,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 뒤에 사람이 따라오고 있지만 잠깐 멈춰서서 문을 잡고 기다려 줄 여유는 없다. 카톡을 보냈는데 곧바로 확인하지 않거나 빠른 응답이 없으면 참을 수가 없다.
한국에 들어온 이주민들이 회사나 직장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어 표현이 바로 “빨리 빨리”인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심지어 크리스천들도 시간이 지체되거나 기다려야 하는 상황을 못 견딘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현대 크리스천들은 기도도 이런 식으로 한다.
“하나님, 제게 인내심을 주세요. 지금 당장!!”
왜 우리 사회가 이런 ‘속도중독’ 사회가 되었을까? 왜 우리는 이렇게 기다림이나 시간을 질질 끄는 것을 악하거나 나쁜 것으로 여길까? 나는 개인적으로 소비주의와 물질주의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한국인 특유의 근면 성실한 태도와 끈기, 열정, 에너지로 한국 사회는 정말 단기간에 초고속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루어 왔으며, 한국 교회도 폭발적인 성장을 경험했다. 이제 한국은 경제 강국이 되었고, 한국 교회도 제2의 선교사 파송국이 되어 세계 곳곳에 하나님 나라 확장에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소중한 많은 것들을 잃어가고 있다. 가족이나 이웃들과의 친밀한 관계와 같은 정말로 소중한 것들을 부차적이고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고, 경제적 성장과 번영과 발전, 그리고 부와 물질이 최고의 가치이자 우상이 되어 버렸다. 한국교회도 이런 소비주의와 물질주의의 영향으로, ‘사역’이라는 일을 사람들과의 관계보다 중요하게 되었고, 때로는 영혼 구원과 전도라는 대의(?)를 위해 비인간적이고 비인격적인 수단과 방식도 서슴지 않게 되었다. 교역자들과 교인들의 관계는 마치 종교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 제공업자/판매자’와 ‘관리해야 할 고객’의 구도가 되어버렸고, 교회는 영적 쇼핑몰과 같이 되어 버렸다.
나는 그런 뭔가 삐뚤어진 우리 한국 사회와 교회를 회복시키기 위해, 우리가 놓치고 있던 소중한 성경적 가치들을 다시 붙잡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복덩어리들이 바로 이주민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교회는 이주민과 한국인이 함께 예배하고 교제하는 교회다. 하지만 지난 코로나 기간 동안 어쩔 수 없이 한국어 예배와 영어 예배를 나누어 따로 드리게 되었고(매월 첫째 주일에만 언어/문화 통합예배), 어느새 한 교회 내에 두 공동체와 같은 모습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 교회를 사랑하는 몇몇 멤버들이 다시 KM(한국 멤버)과 EM(영어 멤버)이 연합해서 함께 예배드리기를 요청했고, 공청회를 통해 매주 언어/문화/세대 통합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그런 과정에서 매주 함께 통합으로 예배드리게 되면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는지를 나누게 되었다. 가장 큰 어려움은 통역 등으로 예배 시간이 길어지는 것, 그리고 두 가지 언어가 교차적으로 사용되면서 집중하기 어렵고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말씀을 듣고 찬양을 불러야 하는 불편함을 언급해 주었다. 그런데 이 말을 듣던 Lerato라는 이름의 남아공 출신의 자매가 일어나 이렇게 말했다. “우리 남아공에서는 주일예배 시간에 설교만 한 시간, 찬양은 두 시간을 불러요. 예배 3시간 드려도 아무 상관 없어요. 괜찮아요.” 우리 교회는 통합예배 때 한 시간 반은 기본, 길어질 때는 거의 2시간을 드려서 참 길다고 생각이 되었는데, 그 자매의 말을 듣고는 사람들의 생각이 전환되었다. ‘길어져도 괜찮구나!’
예배는 가장 고귀한 시간 낭비이며, 영원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하나님을 찾아와서 하나님이 아닌 다른 복을 구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가장 큰 복으로 여기고 그분과의 관계를 누리며 즐거워하는 것이다.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우리의 형편이 당장 나아지는 것이 없고, 당장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으며, 우리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거나, 소위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예배는 하나님과의 관계, 그분을 아버지로 한 형제자매들과의 관계를 누리는 곳이다. 그리고 지상에서의 예배가 길어지는 것을 즐길 줄 알고 기꺼이 시간 낭비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 천국이다. 왜냐하면 천국에는 우리가 이루어야 할 어떤 사역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천국은 일 때문에 모이는 곳이 아니라 관계를 즐기고 그 관계 속에서 ‘영원’이라는 긴 시간을 누릴 줄 아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긴 예배 시간을 즐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정말 우리 교회의 한국 멤버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한국 교회의 성도들이 이 기다림의 가치, 고귀한 시간 낭비의 가치를 깨닫고 누릴 줄 아는 사람들이 되면 좋겠다. 예배 시간이 한 시간이 넘어간다고 해서, 평소보다 길어진다고 해서 답답해하거나 짜증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영원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여기면 좋겠다. 우리끼리만 있을 때는 시간이 지체되고 길어지는 것은 낭비이자 저급하거나 때로는 나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와 다른 사고방식과 문화를 가진 이주민들과 함께 교제하면서, 그분들로부터 겸손히 배우려고 한다면, 그것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사회에 보내준 교사들인 이주민들에게서 겸손히 배우자.
시티센터교회 신치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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