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도들이 가르치고 살아낸 하나님나라
하나님나라 사상이 예수님에게 중심 사상이었다는 것은, 이것이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이후에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눈 주제였던 사실(행 1:3, 6)과, 빌립(행 8:12)의 사역 그리고 사도 바울의 사역에 중심(행 14:22; 19:8; 20:25; 28:23, 31)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다시 한번 확인된다. 복음서를 기록하고 이어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예수의 중심 사상과 초대 교회의 중심 사상이 동일함을, 그것도 열두제자에 이어 사도바울의 가르침까지 동일 선상에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사도들, 특히 바울은 유대 지역이나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한 것이 아니라, 비유대 지역에서 이방인을 대상으로 주로 사역하였으며, 또한 예수님의 부활로 하나님나라가 임하였고 예수님의 재림을 통한 완전하게 임하는 하나님나라를 기다리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복음서에 드러난 하나님나라 사상과는 그 강조점과 적용점에 있어 약간의 변화가 있을 수 밖에 없었으며, 이러한 차이점이 다음과 같은 강조점들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가) 성령의 중요성
먼저 오순절 때의 사도 베드로의 설교로부터 시작해서, 복음이 중요한 지리적 한계를 넘어갈 때마다, 즉 사마리아인들에게, 또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될 때마다 성령께서 주도권을 잡고 행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행 2장, 8장, 10~11장, 19장). 요한복음에서 특별하게 강조되었던 보혜사 성령께서 하나님나라가 시작되고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발견한다(요 14:16, 26; 15:26; 16:17). 사람들이 회심하고 회심한 사람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은 성령의 역사를 빼놓고서는 설명할 수 없었다(살전 1:5).
많은 사람이 생각하듯, 성령은 구약에서는 침묵하다가 신약에 이르러 급작스럽게 나타난 것 같지만, 실제로 예언서들은 메시야의 오심과 하나님의 영의 흘러넘침에 대해서 풍성히 예고하고 있고 이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나타내는 것이었다(사 32:15이하; 35:6이하; 43:19이하; 겔 11:19; 36:26-27; 37:11이하; 39:29; 욜 2:28-29). 이러한 구약적 기대가 초대교회 이후 교회의 사역 속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성령은 가히 이미 임한 하나님나라와 완성될 하나님나라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는 하나님나라 백성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시다.
나) 이방인을 포함하는 새로운 이스라엘
초대 교회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슈 중의 하나는, 형성 초기에 유대인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교회에 어떻게 이방인이 유입되어, 새로운 이스라엘이 형성되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나라가 이제 유대인의 영역을 벗어나 땅끝, 곧 전 세계를 향하여 침투해 나가는 과정을 어떻게 신학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가 초대교회의 중요한 과제였다. 사도행전은 이 주제를 중요하게 다루는데, 고넬료의 집안의 성령세례(행 10장), 안디옥교회의 탄생(행 11, 13장), 예루살렘 공의회(행 15장), 그리고 사도 바울의 로마에서의 하나님나라 선포(행 28장)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이 일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보여준다. 신학적으로는 사도바울의 초기 편지인 갈라디아서가 이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그가 “나의 복음”(롬 2:16; 16:25)이라고 표현하며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자세히 정리한 로마서(특히 9-11장)가 이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하나님의 “남은 자들”이 구약으로부터 기다려왔고, 예수님이 그 도래를 선포하셨던 하나님의 나라가 유대인뿐 아니라 만민들에게도 실제적으로 선포되었으며, 이를 통해 실제로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없었던 백성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되었다(롬 10:25-26). 초대 교회의 사도와 성도들은 예수님의 오심,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실제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였다는 역사의식과,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어떠한 차별도 없는 하나님나라의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되었다는 강력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다) 하나님나라 공동체인 신약의 교회들
신약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초기 교회들의 이야기는 바로 이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듣고 회심한 사람들의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이다. 감히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여김을 받을 수 없었던 자들,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었던 자들(롬 1:18; 엡 2:1)이 어떻게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는가가 그들의 깊은 관심사였다.
예수를 의지하여 모든 이들을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복음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롬 1:16). 이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은 부르심을 받은 자들로서 교회(에클레시아)를 형성한다. 이들은 더 이상 세속, 즉 이 세대를 본받지 아니하고(롬 12:2), 그의 아들의 나라에 옮겨진 것(골 1:15)에 감격하며, 하나님나라 시민으로서 하나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자다운 삶을 살며(롬 14:17; 고전 6:9-10; 갈 5:16-21; 엡 5:5), 하나님나라를 위한 선한 일(good works)을 행한다.
다음 글에서 다루겠지만 신약 교회의 특징은 이미 임하고, 앞으로 온전하게 임할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서 드러내 보이는 것이었다. 신약의 교회들은 ‘하나님나라’라는 예수의 중심 가르침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복음의 의미가 이런 종말론적 맥락에서 선포되고 가르쳐졌고, 쉽게 이원론으로 둔갑할 수 있는 물질주의와 현세주의, 그리고 개인주의를 극복할 수 있었다.
당연히 신약의 교회들은 하나님나라를 드러내는 운동 공동체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결코 하나의 종교 기관으로 전락하지 않았다. 신약의 교회에서 발견하게 되는 공동체성, 운동성, 변혁성 등은, 그들이 이미 드러난 하나님나라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온전히 임할 하나님나라를 기다리고 있는 공동체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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