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화의 오류는 상식적인 삶의 방식이 아니다.”
서로 사랑하는 두 연인이 있다. 형제는 평소에 장난기가 많아서 자매를 웃기게 하거나 놀래키기도 하였다. 그 형제가 한번은 밤길에 고개를 숙인 채 긴 소매의 옷을 입고 그 자매를 10분 이상 무작정 따라갔다. 자매는 그 사람이 사랑하는 형제인 줄도 모르고 웬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가 따라오니 겁이 나서 빠른 걸음으로 인근 상점에 들어가서 도움을 청했다. 그때 그 형제가 짜짠… 옷을 벗더니 환하게 웃으면서 “놀랬지?”라고 하였다. 그러자 자매는 그제서야 한바탕 웃고 두 사람은 팔짱을 낀 채로 이쁜 모습으로 걸어갔다.
며칠이 지난 후에 그 자매가 늦은밤 밤길을 걷는데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가 뒤따라오기 시작하였다. 주변에는 아무 사람도 없고 날씨마저도 을씨년스러웠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 순간 우리가 그 자매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다. 당연히 빨리 그 위기의 순간을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며칠 전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가 장난친 것이 생각나서 “이번에도 내가 사랑하는 형제일 거야”라고 생각하고 그냥 천천히 걸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 예화는 일반화의 오류(특별하게 일어난 사건)를 늘상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살아가면 큰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언약백성이 애굽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나아갈 때에 이스라엘을 괴롭힌 여러족속이 있다. 여러족속 가운데 아말렉은 그 비열함이 하늘을 찌른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피곤해 있는 중에 더 피곤하여 뒤에 처진 이들을 공격하였다.(신25:18) 특히 암몬과 모압사람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어려운 시간을 보낼때에 떡과 물로 그들을 영접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발람을 유혹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였다. 그 연고로하나님은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명령하셨다.(신23:3) 이것이 일반화이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 보면 모압족속 중에 메시야의 조상이 나온다. 그가 바로 보아스의 아내 룻이다. 이것을 보고 일반화의 오류라고 말할 수 있다. 일반화에서 벗어난 사건을 좋을 때는 “기적”이라고도 표현하고 나쁜 것은 “오류”라고 말한다. “일반화의 오류를 일반화 시키거나, 기적을 상식적인 삶의 방식으로 추구해서는 안된다.” 우리 삶의 딜레마는 일반화의 오류나 기적을 일반화 시키거나 상식적인 삶의 방식으로 추구할 때 발생한다. “괜챦아, 룻도 모압여자였지만 쓰임 받았어. 암몬.모압사람이라고 모두 다 거부할 필요는 없어. 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거야.” 이것은 일반화의 오류를 일반화 시킨 것이다. 이것은 대부분 신앙생활이 무너지기 시작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모든 삶의 열매는 일상에서 나타나고 상식에서 역사가 일어난다.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 것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여서 그런 것이다. 항상.. 쉬지말고.. 범사에...는 일상을 강조하는 것이다.
많은 교회들이 기적(일반화의 오류)을 추구한다.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고 실제로 일어난다. 죽을뻔한 질병에서 살아난 기적을 경험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그런 기적을 매일 같이 경험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매일 같이 죽을 질병이나 사고를 만나고 그리고 기적적으로 살아나고…. 아마도 그 사람이 천국 간다면 원인이 질병이 아니라 심장이 쪼그라들어서 천국에 가지 않겠는가?
느헤미야가 성을 건축하고 자리를 비운 12년 동안에 엄청난 영적인 퇴보가 있었다.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암몬사람 도비야와 은밀한 거래를 한 후 성전 안에 도비야를 위한 방을 내어주었다. 아마도 추측건대 그는 “모압여인 룻을 봐라. 기생라합도 메시야의 조상이 되었어.”라고 주장함으로써 “암몬과 모압은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는 일반화를 무시했을 것이다. 그 결과 암몬사람 도비야에게 방을 내어 주고 이스라엘의 영성은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성실하지 못한 현재의 상황에 기적(일반와의 오류)을 기대하는 것은 도비야에게 방을 내주는 것이다.
일반화의 오류는 누구에게나 나타난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한다. “누구누구 간증을 들어봐. 학교 다닐 때 성실하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살아왔어도 목회만 잘하더라. 괜찮아 지금 좀 놀면 어때.. 그냥 냅둬요. 다 쓰임 받을 겁니다.”라면서 성실하지 못한 현재의 상황을 수정하려 하지 않고 일반화의 오류만(기적) 기대한다면 언젠가 우리 영혼을 훔치기 위해 도사리는 도비야에게 방을 내어주게 되리라!
교회개혁은 일반화의 오류(기적)가 아니라 일반화를 통해서 더 많이 일어나고 세워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면 먼 훗날 일반화가 진정한 일반화의 오류(기적)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이 섭리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되어서 포도나무 되신 그리스도에게 매일 붙어 있으라. 그러면 매일같이 양분을 공급받아 열매 맺게 되리라.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부활이 일상이 되는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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