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원 썸네일형 리스트형 "산정 일출" 누군가 내 뒤통수를 힘껏 내리쳐 까무러칠 만큼이거나, 자기 무릎을 오른손으로 때려 관절이 부러질 것 같은 박장대소의 고함을 지르거나…. 이만한 일이 살면서 몇 번이나 있을까. 이해하고 깨우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한 편의 시를 읽고 기절할 듯한 충격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그 시는 성공이다. 그저 그런 시 한 편을 읽은 뒤 돌아오는 감정을 어찌하지 못해 시원한 콜라 한 병 통째로 들이부어야 느끼함이 가신다면 그게 바로 내 시가 아닐까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오랜만에 무거운 배낭을 둘러메고 지리산에 올랐다. 스무 살 때 이후 처음이다. 등에 짊어진 배낭은 오를수록 태산보다 더 무겁다. 나이를 생각지 않고 이것저것 챙겨온 게 낭패다. 고도는 높아지는데 걸음은 천근을 훌쩍 넘긴다. 꺾어진 소나.. 더보기 "오전 열 시 모노드라마" 한여름의 뜨거운 볕이 키 큰 감나무를 타고 오르더니, 이제 창을 밀치고 들어와 집 안 흔들의자에 주인처럼 앉아 있다. 지붕 낮은 사랑채 대들보에 걸린 괘종시계가 댕! 댕! 댕! 열 시를 알린다. 내 어릴 적 어머니가 쌀 몇 되를 주고 사서 머리에 이고 십 리를 걸어온 소중한 것이다. 기척 없는 고요한 마당을 제가 온전히 지키고 있다는 양, 째깍째깍 아직도 틀림없이 잘 가는 게 의젓하다. 뒤꿈치를 들어도 닿지 않아 목침을 괴고 겨우겨우 태엽을 감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이후 시간은 제 바퀴의 테두리를 얼마나 풀며 돌아갔을까. 서로의 나이가 엇비슷하게 조금씩 기울어 가는 세월이지만, 아직도 제 반경을 조금도 어긋남이 없다. 녹슨 철 대문 옆 정자에 앉는다. 앞집 연붉은 능소화가 담장을 넘어와 눈치를 살피며.. 더보기 헛신발 봄날도 짙어가는 오월의 끝자락, 산과 들에는 저마다 피어난 꽃들로 제 극치의 아름다움을 선보이고 있다. 그예 질세라 모내기로 물을 머금은 논에서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밤의 달빛보다 더 청명하다. 이런 호사스러운 봄날엔 그저 시골길을 걷기만 해도 저절로 기분이 사뿐사뿐 왈츠의 음계다. 해넘이로 어래산 자락의 그림자가 큰골 못에 서서히 제 발등을 담글 즈음 지천으로 핀 노란 낮달맞이꽃 한 아름 꺾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인기척이라곤 없이 나지막한 집의 고요만 수직으로 내리꽂혀 마당에 뒹굴고 있다. 순간, 그 여유롭던 마음은 사라지고 무대 위의 독백 같은 대사로 어린애처럼 “엄마!”하고 부른다. 결 고운 월남 치맛자락이 스쳐 지나가듯 어린 참새 소리만 허공 위로 날아간다. 뒤뜰에 있는 만삭의 새색시 같.. 더보기 살구꽃 소묘 -Ⅰ - 황량한 안뜰 밭에 거무튀튀한 나무 십여 그루가 제 모양대로 서 있다. 한겨울 찬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불평이라곤 없다. 그저 제 자리를 지키는 게 최선의 성실임을 아는 모양이다. 저 어래산 골짜기의 얼음장이 풀렸는가. 발밑으로 흐르는 물소리를 용케도 잘 감지했는지 서둘러 저들만의 교향곡을 연주할 채비를 서두른다. 나도 덩달아 집 뒤뜰에 모아둔 퇴비를 실어 내느라 분주해졌다. 저들의 밑둥치에 골고루 흩뿌리자 배고픈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듯 반가운 기색이 역력하다. 일주일 뒤, 그동안 은밀하게 준비했던 교향곡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키 작은 것에서부터 뒷짐 졌던 노거수에 이르기까지 손놀림이 재바르다. 하얀 움이 돋는가 싶더니 밤새 도툼도툼 제 음량을 조율한 듯하다. 굳이 깃을 세운 화려한 연..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