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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선교와 전도

[나가사키 순교지 탐방기] 용서와 사랑, 그리고 사명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와 사랑이 부어지시길, 
순교자들의 영원한 승리의 노래가 일본 전역에 울려 퍼지길”

  언제나 마음에 먼 나라였다. 부산항에서 부관훼리를 타고 저녁을 먹고 집회 후, 눈 한 번 부치고 나니 다다른 나라. 이렇게 코앞에 있는 일본, 시모노세키항에 닿았다. 


  세계 경제 강대국에다 청결하고 예의 바른 나라, 당장 눈앞이 아닌 100년을 내다보며 움직이는 나라, 무엇에든 철저하고 세심한 나라. 대형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울울창창한 산들이 장관이다. 우리 마음에 켜켜이 쌓인 앙금이 얼마나 많은데 하나님은 이 나라를 어찌 이리 축복하고 계시는지. 


  이번 WGN이 주관하는 순교지 탐방 지역은 큐슈 나가사키현이다. 400여 년 전 일어났던 기독교 박해와 무려 250년 동안 신앙전승을 해온 그리스도인들의 흔적을 만나러 간다. 그 시대 일본은 서양세력으로부터의 침략이 두려워 서양인을 배척했고, 서양인의 기독교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가사키는 선교사들에 의해 하나님을 알게 된 사람들이 모여든 곳이다. 특히 오무라, 히라도 같은 외진 지역에 많은 순교의 피가 뿌려졌다. 언젠가 카이로스에 이르면 오래전의 순교자들의 피가 온천수처럼 흘러 일본 땅을 적시리라 믿는다.   

‘호쿠루바 처형장에 도착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했다. 사진=양성태 목사


  첫날 오무라 시에서 스즈타 감옥, 처자이별바위, 호쿠루바 처형장, 몸﹡머리무덤을 탐방한다. 스즈타 감옥 앞에서 후미에를 체험한다. 나무 혹은 금속제로 만든 예수상을 밟으며 예수님을 부인하고 지나가면 통과다. 그렇지 않으면 박해가 가해지는 것이다. 감옥으로 가고 처형당하는 등 갖은 박해를 받는 것이다. 후미에 체험 현장에 서니 자신의 믿음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 평소에 지키고 행한 믿음이 단번에 드러나는 순간이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사는 귀로에서 그 시대 기리스탄들의 선택은 단호했다. 후미에 체험 후 스즈타 감옥 앞에 이른다. 6평 감옥 안에서 33명의 그리스도인이 옴짝달싹 못한 채 엉겨 화형을 기다리는 모습이 연상된다. 


  순교를 앞두고 처자(妻子)와의 이별을 위해 모인 장소인 처자이별바위 앞에서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는 말씀이 떠오른다. 이토록 구원과 영생을 위해서는 피붙이도 버려야 하는 처절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인가. 하나님 향한 갈망은 그 어떤 시험이라도 뛰어넘는 힘이다. 


  탐방단은 순교자들이 처자와 이별 후 끌려간 곳인 호쿠루바 처형장에 도착해 모두 무릎을 꿇는다. 그 날 그 상황에 닿은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한다. 어디선가 번뜩이는 칼날이 목을 내리칠 것만 같다. 두고 온 가족들, 그동안의 모든 허물과 죄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흰옷 입은 예수님의 팔에 안기는 상상을 한다. 순교자들의 부활이 두려워 몸과 머리를 각각 다른 곳에 묻었다는 박해자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가슴이 저민다. 무지가 죄다. 무슨 일을 저지르는지조차 모르는 그들의 어리석음이 곧 우리민족이나 우리 개개인에게도 마찬가지지 않나. 누가 이 죄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으랴. 

처자 이별바위 앞에서 사진=양성태 목사


  둘째 날 히라도 문화센터에서 <<하나님의 대사>>저자이자 주중대사와 통일부 장관을 지낸 김하중 장로님의 강의가 있다. 우리는 지금도 일본의 침략역사, 위안부 문제, 독도문제 앞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또 용서하기 힘든 뿌리 깊은 상처와 아픔이 있다. 하지만 이제 일본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용서를 해야 한다. 그리고 사랑해야 한다. 한일관계가 지난 과거의 아픔에 매이지 말고 EU처럼 자국의 발전과 국민 행복을 위해 연합과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신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수백 년 앞서 기독교를 알았던 나라다. 그 잔인한 박해에 의한 순교자들의 처참한 죽음이 오히려 세상을 이겼고 영원한 승리자가 되어 수백 년 흐른 지금 다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니 일본을 위해 기도하고 복음전하는 사명을 띠게 되었다. 물리적 거리로 가장 가까이 있는 나라, 마음엔 늘 먼 나라, 이 일본을 진정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되새긴다. 진정 일본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해야만 하는 한국 기독교인들. 결국 물고기 뱃속에서 나와서 니느웨로 가야 했던 요나처럼이라도 말이다. 


  순교란 진정 세상을 이기는 것이며 진정 성공자의 삶으로 거듭난다는 것을, 그 오래전 순교자들의 죽음은 죽음이 아닌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것을 김하중 장로님의 강의를 통해 다시 한 번 깨닫는 시간이다.


  셋째 날 히라도 시에 있는 자비에르 교회, 마츠라 사료관, 야이자 화형장을 탐방한다. 일본에 최초로 기독교를 알린 스페인 선교사 ‘프란체스코 자비에르’를 기념하는 교회의 십자가가 7월 한낮 태양 아래 태양보다 더욱 눈부시게 하늘로 향해 있다. 앞으로 일본에도 이 십자가가 셀 수 없이 서리라 믿는다. 이 지역의 영주였던 그리스도인 마츠라는 일본 외교무역을 가장 먼저 성공시킨 사람으로서 그의 집이 사료관으로 개장되어 있다. 사료관 안쪽 방에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크리스천 금제의정서 원본이 전시된 것을 본다. 탐방일정 끝으로 바다와 육지 어느 곳에서든 바라볼 수 있는 야이자 언덕으로 향한다. 카밀로 콘스탄치오 선교사가 화형된 순교기념비가 서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생각한 선교사가 불길에 휩싸인 채 환희에 찬 모습이 기념비에 새겨져 있다. 뜨거운 햇볕에도 아랑곳없이 탐방단의 찬양과 기도가 울려 퍼진다. 순교정신과 순교적 삶을 가슴에 품은 이 뜻 깊은 여정의 종점이다. 


  순교자들의 믿음과 행함이 여운으로만 남지 않길 바란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또 생각하며 하나님의 뜻을 되뇌어본다. 국민의 0.1%가 기독교인인 이 나라를 가슴에 품고 과연 이 땅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한다. 하나님 안에서 헛된 일은 없고 헛된 수고도 없으며 헛된 시간과 헛된 만남도 없으니 이번 탐방의 모든 일정을 심중에 녹여 신앙의 삶으로 풀어내고 싶다. 

 
  일본 역사에 흐르는 침략의 피가 아닌 순교의 피로 일본에 새바람이 불길 소망한다. 이제 가깝고도 먼 나라가 아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 이웃, 우리 형제나라로 돋움 되길 기도한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땅끝 나라, 어두운 등잔 밑 나라일지도 모를 이 땅에 하나님의 한없는 용서와 자비와 사랑이 부어지시길, 순교자들의 영원한 승리의 노래가 일본 전역에 울려 퍼지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큰 행진을 맡아 수고한 WGN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시길 원하며 모든 영광 하나님께!


수필가 설성제(북울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