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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특별기고

늘 깨어 있으라

 

  노아가 산속에서 방주를 지었던 시절에도 하늘이 이만큼 파랬을까요? 노아 홍수는 국지적인 사건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하늘의 창들이 열려서 홍수가 이 땅을 덮기 전에 믿음의 사람 노아를 통하여 한 방주를 예비하고 계셨습니다.  


  지금 세계는 홍수처럼 밀려온 코로나 19로 인해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방주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내가 선지자다. 내가 구원자다, 내가 방주다! 내가 해결자다!” 여기저기서 선지자들이 우후죽순처럼 현란한 혀 놀림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3장 21절)


  홍수를 피하려고 바닷가로, 강가로, 항구로 몰려들었을 노아 시대의 사람들처럼, 코로나 19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지만 역부족입니다. 말씀 앞에 선 기갈을 해결하기 전에는 어림도 없습니다.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아모스 8장 12~13절)


  행정당국의 거리 두기 정책으로 예배가 소홀해지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식당과 극장과 비교하여 차별정책이며 교회 말살 정책이라고도 합니다. 감독하기 위해. 찾아온 공무원은 잠재적 적대자가 되었습니다.


  공무원들과 맞서 싸운 이들은 영웅이 되어가고 있고, 영웅을 그리워하는 이들은 그들에게 함몰되어 갑니다. “가서 따지고 왔다느니, 야단쳐서 돌려보냈다느니…….” 스스로 작은 거인이 되어 영웅담을 담아내고 또 어떤 이들은 이것을 퍼 나릅니다.


  “백문일답.” 모든 문제의 해결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무기로 삼았던 다윗은 사울의 공격에 두려워 놉땅에서 “무기”를 찾습니다.


  “하나님을 무기로 삼은 다윗과 무기를 손에 든 다윗.” 누가 더 세 보이시나요?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습니다. 하나님 외에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은 이들은 용기가 많은 이들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충만한 자들입니다. 두려움에서 허세와 자랑거리와 작은 영웅담이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되었고…….” 약한 듯 보이는 어머니의 찬송 속에 담긴 기도가 공중권세 잡은 이를 사로잡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눈에 보이는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코로나 19로 교회에 사람들이 모여서 소리 내어 기도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아무도 나오기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목회자들이 홀로 광야에서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가야 할 시간입니다. 밤마다 강단으로(지성소) 나아가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야 할 때입니다.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장 7절)


  만군의 여호와를 무기로 삼고 사단의 권세를 사로잡아 십자가 앞에 끌고 와야 합니다. 어린양의 피 앞에서 사망의 구름이 넘어간 것처럼 열방과 이 민족 위에 불고 있는 사망의 바이러스와 분열과 더러움과 모든 추함이 소멸될 줄 믿습니다.


  “깨어 있으라!” 이 시대에 파수꾼들이 외쳐야 할 소리입니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