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열매를 감사로 하나님 앞에 드리고
연약한 자들을 돌아보는 맥추절
구약성경에서 ‘칠칠절’,
‘맥추의 초실절’, ‘오순절’ 등으로 불려
반년 동안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지켜나가길
맥추절은 유월절, 초막절과 함께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중요한 절기로 규정하신 3대 절기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구약성경에 보면 이 ‘맥추절’을 ‘칠칠절’(민 28:26), 혹은 ‘맥추의 초실절’(출 34:22), ‘오순절’이라고 부르고 있다. 히브리인들은 일 년에 두 번 추수를 한다. 봄에는 밀과 보리를 추수하고, 가을에는 포도와 무화과, 감람나무 열매 등을 추수한다. 보리를 추수해서 맥추절(麥秋節)이다. 맥추절은 첫 열매를 하나님 앞에 드리고, 아들과 딸, 남종과 여종, 레위 사람, 고아와 과부, 나그네들과 함께 열매를 나누면서 축제를 하는 절기이다. 여기에서 고아와 과부, 나그네는 구약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3대 약자들이다. 따라서 맥추절은 단순히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가난하고 연약한 사회적 약자들을 돌아보는 절기라고 할 것이다. ‘오순절’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역사적 사건과 관련한 명칭이라고 한다면, ‘맥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착한 가나안 농경문화와 관련한 명칭이다. 그런가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거둔 보리 열매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제사를 드린다는 점에서 ‘초실절’(初實節)이라고 부른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순절에 룻기를 읽는데, 그것은 룻기의 배경이 보리 수확 때인 맥추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맥추절과 오순절은 같은 날이다. 그런데 한국교회에서는 ‘오순절’을 예수님의 부활 후 50일째이자 승천 10일째 되는 날이라고 해서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맥추절은 7월 첫 번째 주일로 구별해서 지키고 있다. 그리고 맥추절에 ‘감사’라는 말을 붙여서 ‘맥추감사절’로 지키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에서는 첫 열매를 추수하면서 감사하며 맥추절을 ‘샤부옷’(Shavuot)이라는 이름으로 지키고 있다. 이때 그들은 좋은 옷을 입고, 장기 자랑을 하고, 우유를 발효시켜서 만든 치즈를 먹는다. 농산물과 과일과 꽃으로 집안을 장식하고, 춤을 추면서 샤부옷을 즐긴다. 룻기를 읽고, 첫날밤에는 회당에서 밤을 새우면서 철야기도를 한다. 다음 날 아침에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여 십계명을 공적으로 읽는다. 이날을 출애굽을 한 이후 50일째라고 믿기 때문에 이날을 율법을 부여한 날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출애굽기 19장-20장을 읽는다.
한편, 맥추감사절은 한국의 농경 사회에서 만들어진 전반기 농산물에 대한 감사의 절기다. 선교 초기 한국 국민들 대부분은 이모작을 하던 농경 사회에 살고 있었다. 당시 봄철의 주된 농산물은 보리였는데, 주로 6월 초순 혹은 중순에 수확을 했다. 그래서 수확을 끝내면서 7월 첫 주일에 맥추감사절로 지키며, 고대 이스라엘 사회처럼 하나님께 헌물을 드리는 절기로 삼았던 것이다. 그런데 1970년대 이후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어떤 의미에서는 절기의 성격을 생각할 때, 농촌 지역 외에는 이런 감사절의 의의가 퇴색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더구나 요즘 대부분의 농촌에서는 보리를 수확하지도 않는다. 때문에 어떤 교회들은 맥추감사절이 현대의 도시화된 사회에서는 맞지 않는다고 해서 맥추감사절 대신하여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 강림과 교회 시대의 시작이라는 새로운 사건을 기념해서 성령강림절을 지키기도 한다. 즉 성령강림절이 ‘교회의 탄생일’로 기념되고 있다는 점에서 성탄절, 부활절과 함께 3대 절기로 지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교회력도 성령강림절 이후부터 대림절 이전까지의 주일을 ‘오순절 후 ○번째 주일’로 표기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지키는 맥추감사절은 더 이상 필요 없는 절기인가? 꼭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 맥추감사절에는 반년 동안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감사절의 의미를 ‘감사’ 자체에 두어 지난 6개월을 돌아보면서 감사하는 기회로 삼는다면 성도들의 신앙에 큰 유익이 될 것이다. 더구나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기를 지키면서 사회 속의 약자들인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환대하는 절기로 지킨 정신(신 26:11)을 계승하여, 감사절을 단지 헌금을 강요하는 절기가 아니라 사회 속의 약자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기회로 삼는다면 감사절의 의의는 결코 퇴색되지 않을 것이다. 특별히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는 이때, 하나님 앞에 드리는 감사의 영성은 고난을 이기는 힘이요, 절망을 이기는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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